‘잠시만 빌리지’는 왜 외면을 받았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KBS2 예능 프로그램 <잠시만 빌리지>의 판타지, 즉 추구하는 재미는 명확하다. 얼마 전부터 트렌디한 여행법으로 떠오른 ‘잠시 살아보는 여행’을 내세운다. 3박 4일 수준으로 떠나는 여행이나 관광이 아니라 속세의 번뇌를 뒤로 하고 한 도시에서 느긋하게 머무는 ‘로컬 거주’ 여행을 통해 또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 그리고 여기에 ‘아이와 함께’라는 가족예능의 요소를 결합했다.

여행예능이 갖는 효용이자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판타지, 둘째는 접근가능성이다. 첫째의 대표적인 예는 <윤식당><커피프렌즈> 등 나영석 사단 스타일의 예능이 되겠다. 현실성보다는 일상을 벗어난 동화 같은 이야기들을 통해 로망을 만들어낸다. 두 번째는 연예인들의 여행을 통해 대리만족과 정보전달을 하는 <짠내투어><배틀트립> 등의 프로그램이다. 여행예능은 양자택일을 하거나 나름의 레시피로 접근가능성과 로망을 배합한다.

‘여행지에서 한 달 간 생활하기’를 차용한 <잠시만 빌리지>의 로컬 거주 여행은 판타지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흥미로운 소재다. 머무는 동안 일체의 경제적 행위와 속박에서 벗어나 일상의 소중함을 즐기고, 며칠 머물러서는 볼 수 없는 일상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연예인 가족이 이 로망을 대리하는 순간부터 판타지는 소멸하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우리 대신 수영장 딸린 집에서 하루 종일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고, 블레드 호수를 바라보는 집에 머물며 좋은 인연을 맺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아이와 함께 찾은 크리스마스 마을을 보는 것만으로 판타지를 느낄 순 없다. 오히려 연예인 가족이기에 부러움은 냉소에 가깝게 가라앉는다.



아빠와 아들이 발리에서 머물며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고, 엄마와 딸이 헬싱키의 북유럽 디자인 중고 상점과 아침 시장을 찾는 이야기가 판타지가 되기 위해서는 일상을 벗어나는 설정과 부러움을 넘어서서 몰입하게 만들어줄 스토리 혹은 흥미로운 삶의 궤적이나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 다른 설명 없이 연예인 가족을 끼워 넣으니 그들은 왜 떠났고, 우린 왜 지켜봐야 하는지 정서적인 설득이 불가능해졌다. 경제적 고민을 접어두고 누리는 멋진 풍광과 유유자적함이 이 판타지의 핵심인데, 연예인 가족의 등장은 판타지가 생성된 현실의 토대를 생략하게 만드는 어울리지 않는 블록 조각이다. 거부감을 타파하기 위해 시청자 이벤트를 통해 여행을 보내주곤 있지만 이는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설명하기 위한 행위이지 프로그램의 내용, 재미와는 상관이 없다.

게다가 오래 머무르는 콘셉트와 달리 결국 관광객의 시선으로 머문 점도 아쉽다. 연예인 가족이라도 이 프로젝트에 목을 말라했거나 스스로 기획했다면 뭔가 다른 볼거리가 나왔을 텐데 그저 주어진 방송 안에서 별다른 고민 없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려고 하니 피상적으로만 느껴진다. 그래서 오래 머문다는 것이 콘셉트지만 기존 방송 콘텐츠에서 접했던 수준을 넘어선 정보나 로컬처럼 생활하기 같은 새로운 볼거리가 없다. 그 동네 일상이나 문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정도는 기존에 봐왔던 여행예능이나 다큐 수준보다도 얕다. 발리에서 블루버드 택시를 타라, 빨래방을 이용하라는 정보는 관광객들도 다 아는 평이한 수준이고, 블레드 섬 이야기는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훨씬 더 자세히 다룬 바 있다. 차라리 방송에 노출되는 연예인 2세들이 대부분 어려서부터 해외 유학 생활을 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런 생활상을 조명하는 편이 진정성 면에서도 그렇고 시청자들의 자극과 관심을 끌 수 있는 볼거리라 본다.



<잠시만 빌리지>의 제작진은 머무는 여행이 품은 판타지는 잘 알면서, <카모메 식당>, <안경>, <윤식당>, <리틀 포레스트> 등의 콘텐츠가 왜 인기를 얻었는지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제안하는 콘텐츠들은 기본적으로 ‘리셋’의 욕망이 있다. 그런데 연예인 가족이란 블록을 그 자리에 끼워 넣으니 판타지에 불이 붙지 않는다. 결국 여행 예능이 시청자들에게 건네는 두 가지 재미 요소라 할 수 있는 로망과 접근 가능성 그 어느 쪽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잠시만 빌리지>는 라이프스타일 차원의 여행예능과 따뜻함,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가족예능을 잘못 조립한 블록 장난감 같다. 시대적 흐름에 알맞은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이고 꽤나 공들여 촬영한 아름다운 장면이 많은데 감정이입의 통로가 처음부터 막혀 있어 아쉽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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