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권의 비선실세, ‘왕이 된 남자’가 새롭게 보이네

[엔터미디어=정덕현] “이놈! 제대로 놀지 못하겠느냐?” 폭군 이헌(여진구)이 내리는 불호령에 광대 하선(여진구)은 마치 진짜 왕이 된 듯한 목소리로 “이놈! 제대로 놀지 못하겠느냐?”라고 똑같이 외친다. 그 순간 이헌은 광기와 희열이 교차하는 웃음을 터트린다. 마치 거울을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똑같은 얼굴을 한 두 사람. 하지만 둘의 표정은 사뭇 다르다. 하나는 웃고 있지만 다른 하나는 당혹스런 얼굴이다.

이 한 장면은 tvN 새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를 압축해 보여준다. 자객의 습격으로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채 용상을 지키고 있는 이헌은 도승지 이규(김상경)에게 자신이 살 방도를 찾아 달라 요청하고, 이규는 우연히 마주하게 된 하선을 통해 그 방도를 찾는다. 이헌의 대역으로 하선을 세우는 것.



저잣거리에서 탈을 쓰고 왕을 풍자하며 한바탕 광대놀음을 하며 살아온 하선은 진짜 왕의 대역을 맡게 됨으로써 일생일대의 광대놀음을 하게 됐다. 어차피 살 판 아니면 죽을 판이라며 위험할 수 있는 나라님을 갖고 놀기도 했던 하선이었다. 만석꾼 김진사(유형관)네 집에서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게 됐던 것도 나라님을 갖고 놀았다는 사실이 빌미를 줘서다.

하지만 하선은 그렇게 쫓겨나면서도 다시 담장을 넘어 들어가 김진사의 장독을 모두 깨고 보리굴비를 훔쳐 달아날 정도로 자유분방한 인물이다. 이제 어디서도 광대놀음을 할 수 없게 된 그들에게 하선은 차라리 큰 판 한양으로 가자 제안한다. 어차피 인생사 살 판 아니면 죽을 판 아니냐며.



우리에게 <왕이 된 남자>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익숙한 이야기다. 이 리메이크 드라마가 굳이 ‘광해’라는 실제 역사 속 왕의 이름을 지워버린 건, 역사적 사실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자유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려는 뜻일 게다. 2012년 개봉해 1200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일찌감치 충분히 드라마화 될 수도 있는 작품이었지만, 지난 정권에서는 이 영화가 곱게 보이지 못했던 모양이다. CJ가 그 박근혜 정권 시절 유독 힘들었던 이유로 이 영화가 지목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지금 <왕이 된 남자>가 다시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건 그래서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비선실세니 꼭두각시니 하는 이야기들이 나왔던 지난 정권은 <왕이 된 남자>의 이야기를 또다시 새롭게 다가오게 만든다. 과연 <왕이 된 남자>는 지난 정권을 지났던 우리의 경험들을 더해 영화와는 또 다른 감흥을 우리에게 전해줄 것인가. 물론 이 왕을 대역한다는 소재 자체가 이미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지만.



이 작품에서 1인2역을 맡게 된 여진구는 아마도 그의 인생캐릭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1인2역의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작품이 갖고 있는 한바탕 ‘광대놀음’의 이야기는 그에게 연기자로서의 남다른 의미를 전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한 그의 신명나는 ‘왕 놀음’을 기대하게 하는 건, 지난 정권 동안 블랙리스트로 분류될 정도로 억눌려 오며 표현에 자유롭지 못했던 그 시대의 어둠을 벗어나 이 작품이 맘껏 놀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놈! 제대로 놀지 못하겠느냐?” 왕의 으름장과 거기에 맞춰 제대로 왕이 된 양, 그 말을 외치는 광대의 그 장면은 이런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의미심장하기 이를 데 없다. 권력과 예술 사이에 기묘한 긴장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왕과 광대를 마음대로 바꿔 한 바탕 놀아보는 이 드라마의 거침없는 행보와 연기인생의 새 전환점을 맞게 될 여진구를 기대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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