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성추행을 장난으로 포장하는 남편 너무하다

[엔터미디어=정덕현] 과한 장난이라고 했지만, 결코 그 행동은 장난으로 보기 어려웠다. 5살 아들과 3살 딸이 있는 가족. 남편은 자신이 입었던 팬티를 아들 얼굴에 뒤집어씌우고, 퇴근 후 양말을 벗어 딸의 얼굴에 비비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수심 깊은 수영장에 아이들을 던져놓고 재밌다고 웃었다고 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건 아이와 아내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스킨십이었다. 그것은 강압에 의한 것이고, 장난의 수준을 넘어서는 성추행과 다를 바 없는 짓이었다.

KBS <안녕하세요>는 ‘전국고민자랑’이라는 콘셉트로 고민거리를 토로하는 사연자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그 사연을 보다보면 이걸 과연 예능 프로그램에서 수용할 수 있는 것일까 의구심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실로 범죄에 가까운 심각한 사안이지만 가볍게 담는 경향이 생기고, 그것은 자칫 그런 범죄에 가까운 문제들이 그리 심각하지 않은 일처럼 오인되게 만들 수도 있어서다.

‘가족의 고통을 즐기는 남편’의 사연은 그 상황이 너무나 과해 예능 프로그램이 담아내기에는 문제들이 있어 보였다. 아들의 ‘고추’에 뽀뽀를 한다는 아내의 토로를 들어보면 그건 말 그대로 강압적인 성추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두 팔을 한 손으로 잡고 발로 배를 눌러 꼼짝 못하게 한 후 온 몸에 뽀뽀를 해댄다는 건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장난’으로 치부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 남편은 집에서만이 아니라 밖에 나와서도 아이를 그렇게 욕보였다. 시댁과 친정에 가서도 아이의 바지를 내리고 “우리 아들 자랑해야지”라고 했다는 것. 아이가 느꼈을 굴욕감과 모욕감을 이 남편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과거 할아버지들이 지나는 아이들에게 “고추 한 번 만져보자”고 했던 그 일들은 지금이라면 당장 ‘성 추행범’이 될 수 있는 일이다. 그걸 다른 이도 아니고 아빠가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남편의 스킨십은 아이에게만 지나친 게 아니었다. 아내는 남편의 스킨십이 과하다며 설거지할 때 가슴을 만지고 저 혼자 흥분해 방에 들어가자고 하기도 한다고 했다. 부부 사이에도 지켜야할 선이 있는데, 남편은 마치 결혼했기 때문에 아내를 자신이 원하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동물원에 가서도 아내의 가슴을 손으로 툭 치며 장난스런 말을 던지기도 하고, 심지어 아내 앞에서 엄마의 가슴을 만진다는 건 그 자리에 있는 출연자들과 관객들까지 모두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남편은 이 모든 게 ‘사랑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아내를 사랑한다는 이 남편은 아내가 겪은 힘겨운 육아는 제대로 도와준 적이 없었다. 도와달라고 했을 때 심지어 “나도 힘들어. 네가 나가서 돈 벌어와.”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 임신 중 조산의 위험 때문에 한 달 가까이 치료를 받았지만 남편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눈물을 흘리는 아내는 지금 현재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정신과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도 남편은 그걸 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였다.



남편은 “아무 생각 없이 행동했다”며 자신이 고쳐나가겠다고 했다. 이영자는 그 말을 그대로 가져와 “남편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그 생각 없이 행동한다”는 거라고 일갈했다. 가족이라서, 사랑이니까 언제든 어떤 스킨십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 성추행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사랑한다면 들여다봤어야 할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남편은 여전히 장난으로 포장된 행동들을 하고 있었다.

이날 방청석을 찾은 <안녕하세요> 애청자라는 싱가포르 선임 국무장관은 이 문제를 싱가포르에서는 어떻게 하냐고 묻는 신동엽에게 ‘경계’와 ‘존중’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교육과 법을 통해 가족이라도 서로 지켜야할 경계가 있다고 했고, 그걸 존중해나갈 수 있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녕하세요>는 물론 이 소재가 꽤 높은 수위를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게다. 그래서 자막이나 편집을 통해 기가 막히는 남편의 말과 행동들이 폭로될 때 MC들과 관객들이 놀라고 어이없어하는 모습들을 리액션으로 보여줬다. 또 남편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MC들의 멘트들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소재를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틀에서 ‘놀람’과 ‘웃음’으로 소개한다는 건 그 문제가 별거 아닌 것 같은 뉘앙스를 준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전국고민자랑’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지만 결코 자랑하듯 말하거나 들을 수 없는 심각한 고민도 있는 법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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