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스타’ 600회 중 최저 시청률 기록했다는 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의 대표 장수 예능 <라디오 스타>가 지난 16일 600회를 맞았다. 햇수로 12년째 수요일 밤을 지켜오며 쌓은 역사적인 기록이지만 지난 500회와 달리 특별한 잔치도, 별다른 뉴스도 없었다. ‘갑자기 분위기 600회 특집’이란 이름으로 대기록을 기념하는 특집을 진행했으나 이슈조차 되지 못했다. 같은 시간, 대부분의 손님들이 피자집과 고로케집으로 몰려간 탓이다.

‘포방터 시장’ 이후 지난 12년간 수요일 밤의 전세는 완전히 역전됐다. 시청률로만 따져도 이제 그 격차는 최소 2배에 이른다. 그렇다고 2등도 아니다. JTBC <한끼줍쇼>에게 한때 당했듯이, 지금은 예능 불모지로 여기던 TV조선의 ‘맛 시리즈’에게도 추월당했다. <라스>의 600회 특집 방송은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그나마 <골목식당>의 절반에 이르는 4%대를 수성했지만 또 다른 시청률 조사기관 TNMS의 자료에서는 1부 2.6%, 2부 2.7%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는 <라스> 600회 중 최저치다. 화제성 면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과거에는 <라스>에서 빛을 본 게스트들이 타 예능에서 활약하는 반짝 스타로 큰 경우도 많았지만, 지난해 10월 있었던 빅데이터 조사에 따르면 부정적인 키워드가 압도적이다.



지난 17일 MBC 표준FM <박경의 꿈꾸는 라디오>에 출연한 <라스>의 한영롱 PD는 <라스>를 흔히들 토크쇼로 생각하지만 그보다 인물의 매력을 기반으로 하는 캐릭터쇼에 가깝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매주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4명의 게스트를 섭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라 언급하며, 장수하고 있는 이유로는 ‘보장된 재미’를 꼽았다. 캐릭터쇼는 게스트와 MC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로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할 수 있도록 언제 어떤 상황에서나 4명의 MC가 티키타카를 주고받으며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뽑아내준다는 의미다. 이 안정적인 활약을 바탕으로 <라스>는 어머니도, 아들도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누구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예능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지만, <라스>를 매주 찾아볼 이유가 점점 줄어들고 1시간 반 동안 집중하기 힘들어지는 이유 또한 모두 저 말 속에 있다. <라스>의 출발과 정체성은 다른 토크쇼와 달리 방송을 위한 가식과 포장보다는 솔직함, 게스트와 상관없이 MC들끼리 만들어내는 웃음의 순도가 높은 캐릭터플레이를 기반으로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각자의 캐릭터가 무뎌진데다 관계는 고착화됐고, 새로 들어온 차태현은 기대와 달리 관계망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토크쇼라기보다 캐릭터쇼라는 연출자의 분석은 매우 타당하고 흥미로운 발언이었지만 정작 방송은 캐릭터플레이가 활발한 쇼가 아니라 <해피투게더>와 점점 더 비슷하게 흘러간다.



다양한 시청자들을 아우르려다보니 특유의 뾰쪽했던 정서는 뭉뚝해졌다. 사실상 <해피투게더>와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을 정도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휘발성 웃음들 이외에 남는 게 없다. 몇몇 재치 있는 입담을 윤활유 삼을 뿐 뻔한 패턴이 반복되는 토크와 에피소드 나열, 개인기, 게임, 홍보 등등으로 1시간 반을 버티는 특유의 나이브한 공중파 예능 토크쇼 전형에 가깝다.

그러면서 <라스>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 볼거리가 사라졌다. <라스>를 본진으로 삼던 MC들은 다른 쇼에서 하는 활동과 <라스>에서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 웃음을 만드는 패턴도 비슷하다. 게스트가 누가 나오든, 김구라의 이혼이나 자기자랑이 웃음의 소재가 되고, 김국진과 차태현의 역할은 축소되면서 4명의 MC 사이에도 불균형 또한 심화됐다.



게스트들이 인사치례로 하는 <라스>의 독함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여기서 말하는 독함은 공격적인 질문과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이란 껍질, 가식을 깬 요즘 이른바 일컬어지는 일상성, 리얼리티다. 이것이 <라스>를 지금까지 있게 해준 정체성이다. 사전 조율된 대본에 감정을 넣어 연기하듯 문답을 주고받던 기존 토크쇼의 세계를 갈아엎은 것이 <라스>의 신선한 매력이었다. 허나 지금은, 오래된 멤버들끼리 함께하기에 느껴지는 따뜻함, 늘 그 자리에 있는 익숙함이 가장 큰 매력이다.

앞서 연출자가 언급했듯이 여전히 <라스>에는 보장된 재미가 분명 있다. 그런데 살짝만 뒤집으면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볼거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매주 딱 그만큼이다. 한주 놓쳤다고 궁금해지고, 다음 주를 기다리는 방송과는 멀어지고 있다. 섭외 프로그램이라 평가할 만큼 사람이 중요하지만 최근 <라스>를 통해서 누군가의 매력이 드러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차라리 그 방면으로는 <한끼줍쇼>와 <아내의 맛>이 더 나은 무대고, 리얼리티와 인물과 인물 사이의 긴장은 <골목식당>을 따라갈 수가 없다. 게스트의 인지도에 따라 작은 요동이 있을 뿐, 어느덧 고요한 프로그램이 되고 말았다. 캐릭터쇼임에도 사람이 돋보이지 않는 공허는 600회를 맞은 <라스>의 현재가 빛나지 않는 이유다. 600회를 맞은 <라스>는 익숙함과 진부함 사이에서 변화를 고민하기보다 합리화와 안주를 택하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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