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 M. 나잇 샤말란 감독을 위한 변명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도대체 누가 M. 나잇 샤말란에게 계속 영화 제작비를 주는 거지?” 영화 <글래스>가 맘에 들지 않은 SNS의 누군가가 말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M. 나잇 샤말란”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샤말란은 자기 영화 제작비를 직접 조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이런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영화들이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호평을 듣는다고 할 수 없는 <글래스>도 마찬가지다.

계속 반복되는 일들에는 다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렇게 공을 들여 아날로그 효과를 고집하는 걸 놀려대는데, 그가 그럴 수 있는 건 말 그대로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놀란은 언제나 제작비 안에서 기한 내에 영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건 그의 아날로그 효과가 경제성이 있고 작업 속도도 그렇게 느리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흥행성적은 언제나 좋았고. 그렇다면 하고 싶어하는 걸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샤말란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걸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일급 배우들을 기용해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놀란보다는 훨씬 작은 스케일이긴 하지만.



샤말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종종 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그가 영화를 무척 잘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샤말란은 영화라는 도구를 아주 능숙하게 다루고, 최소한의 것들로 서스펜스를 창출해내는 멋진 재능을 가졌고, 공감 가는 3차원적 깊이 있는 인물을 만들어낼 줄 알며, 대사와 멜로드라마의 작법도 뛰어나다. 배우들을 잘 다루는 건 말할 나위도 없고. 그의 최대 성공작 <식스 센스> 때도 그랬지만 그 이후 나온 ‘망작들’도 영화적으로 심심한 적은 없었다. 아무리 영화가 심심해도 건질 것이 반드시 하나 이상은 있었다.

단지 그에겐 아주 훌륭한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건 이야기에 대한 그의 선호도, 즉 그의 개성과 관련 있다. 샤말란은 20년 넘게 샤말란스러운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다. 필라델피아나 그 근방에 사는 중산층의 예의바른 사람들이 주인공인 그 이야기는 독특하게 음산하고 매력적이지만 샤말란 고유 개성의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왠지 모르게 나사 빠진 것처럼 어색하고 김빠져 보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식스 센스>가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 작품의 아이디어가 가장 덜 샤말란스러운 아이디어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기반이 되는 “내 눈에는 죽은 사람이 보여요”와 마지막의 “아무개는 아무개다”의 반전은 사실 유령 이야기의 세계에 흔해 빠졌다. 이 흔해 빠진 이야기의 구조가 샤말란의 터치가 꽃피는 동안에도 샤말란식 김빠지는 결말로 붕괴되는 걸 막아준 것이다.

<글래스>에서도 샤말란은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샤말란스러운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그가 거의 20년 전에 만든 <언브레이커블>에서 했던 이야기를 확장한 것이다. 미국 슈퍼히어로 코믹북의 서사가 보다 평범하지만 그래도 우리보다 훨씬 비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 단지 주인공의 설정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들이 겪게 되는 운명 역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이야기꾼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 우리가 아는 유명한 동화들 상당수가 훨씬 음침하고 현실적인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를 마치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진지하게 풀기 시작하면 영화가 끝날 무렵엔 막힐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브레이커블>은 좋은 영화였다. 슈퍼 히어로 이야기를 재해석하는 작업 자체의 매력 때문이 아니라, 다소 어처구니없는 아이디어 속에서도 꿋꿋하게 슈퍼 히어로의 길을 걷는 주인공을 따라가는 드라마의 힘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메타 슈퍼 히어로의 영화를 지탱하는 건 슈퍼 히어로 이야기의 전통서사였고 이게 메타로 넘어가는 결말에서 영화는 맥이 빠져 버렸다. 그런데 그 약점을 오히려 전면으로 끄집어낸 영화를 만든다?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슈퍼 히어로 이야기가 과잉인 시대엔 한 번쯤 해볼 시도일 수도 있다.

결과는 어땠느냐. <언브레이커블>이 더 좋은 영화였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21 아이덴티티>도 아마 <글래스>보다는 좋은 영화였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샤말란이 만들어낸 메타 코믹북 세계는 전혀 믿음이 안 갔고 이미 <언브레이커블>에서 밑천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증거로 들이미는 코믹북 사례들도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래스>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완성도와는 상관없는 이유로 이 영화를 싫어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글래스>는 코믹북이라는 매체를 존중한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짠 이야기를 영화화할 때는 요새 몇 달마다 하나씩 쏟아져 나오는 주류 슈퍼히어로 영화와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가장 눈에 뜨이는 건 액션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이다. 보통 슈퍼히어로 영화는 액션을 최대한 거창하고 화려하게 그린다. 하지만 <글래스>는 배경에서부터 액션까지 최대한 초라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이는 “너네들이 지금까지 좋아하고 열광했던 건 모두 가짜이고 이게 진짜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글래스>는 코믹북은 찬양하지만 코믹북 영화에는 냉소적인 오묘한 지점에 서 있으며 영화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이 오묘한 지점을 들여다보는 건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이다.

앞으로 샤말란의 영화는 어디로 갈까. 일단 그는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다. 평론가들과 관객들이 뭐라고 하건 <글래스>의 이번 흥행성적은 꽤 좋았고 결국 본전을 뽑을 것이기에. 아마 그는 계속 샤말란 영화를 만들 것이고 그 작품들은 한동안 오묘하게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그가 보다 전통적이고 안정적인 주제를 갖고 훌륭한 영화를 만들면 좋을 거 같긴 한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우리가 굳이 막을 필요가 있을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글래스><식스 센스><언브레이커블>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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