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폐 속 쌓인 미세먼지가 다 배출되는 느낌이라는 건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극한직업>이 개봉 첫 주 만에 400만 관객을 가볍게 넘어섰다. 개봉 직후부터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돌았는데, 과연 영화는 한 장면도 쉴 새 없이 웃음을 터트린다. 큰 소리로 웃다보면 폐 속에 쌓인 미세먼지가 다 배출되는 느낌이다. 웃음의 뒤끝도 나쁘지 않다. 영화는 그동안 한국 코미디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웃기다 울리겠다는 휴먼 강박도 없고, 가학적이고 혐오성 짙은 유머로 관객을 불편하게 하지도 않는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얹힌 “대한민국 소상공인들, 다 목숨 걸고 해”라는 짠 내 나는 대사는 묘한 공감을 자아낸다.



◆ 보편성과 친근성의 상징, 치킨

전공과 전직이 무엇이든 결국은 닭을 튀기게 되어 있다는 한국인의 회로도를 본 적이 있는가. 누구나 닭을 튀기고, 닭을 시키고, 닭을 먹는다. 그런 의미에서 치킨은 명절, 코미디만큼이나 보편적인 키워드이다.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은 이처럼 친근한 키워드들을 접목하여, 마치 우리 무의식에서 뽑아낸 듯한 순도 높은 오락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단지 대중성 높은 아이디어만으로 승부를 건 얄팍한 기획이 아니며, 세공술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체 위기에 놓인 마약반 형사들이 잠복 수사를 위해 치킨 집을 인수했는데, 그만 대박이 나버린다는 설정은 <개그콘서트>의 코너처럼 간략한 상상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상상에 탄탄한 디테일을 채워 넣는다. 각각의 인물에 개성을 불어넣고, 맛깔 나는 대사와 호쾌한 액션으로 쾌감을 덧입힌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마작을 하는 범인들이 “폐가망신이 아니라 폐질환으로 죽는다”는 범상치 않은 말장난을 보여주며, ‘말맛이 살아 있는 코미디’ 임을 주지시킨다. 그리곤 창문에 매달린 형사들의 버둥거림을 통해, 이들이 통상 영화에서 보았던 멋진 형사들과 매우 다르게 움직일 것임을 예고한다. 이처럼 영화는 아주 간단한 장면에서도 디테일한 슬립스틱의 리듬을 살리고, 인물들의 지질한 행동을 통해 재미를 불어넣는다.



가령 큰 사고의 문책을 받는 와중에 아반떼 보험사기에 열을 올리는 한심함을 몇 번의 튕김을 통해 점증시키고, 쇠고기 먹으러 따라 가는 장면에서 한 템포를 쉬어감으로써 리듬감을 살린다. 또 “동생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며 냉큼 받는 비굴함이나 시내버스니 마을버스니 입씨름을 하고는 그걸 마지막에 스쿨버스로 한 번 더 받는 것도 완성도가 있다. 이런 것들은 사소해보일지라도, 유머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구사하기 힘든 솜씨이다.

영화는 연쇄추돌사고와 스토킹 등 갖가지 악재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이들이 닭 집을 인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최대한 성의 있게 납득시킨다. 닭 집을 인수한 이후에도 처음부터 닭을 튀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쩔 수 없는 우여곡절을 거쳐 닭을 튀기게 되는 상황까지 나름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또한 닭 집이 대박 나는 상황에서 이들의 정체성이 유동적으로 변해가는 과정도 상당히 정성스럽게 그린다. 여느 영화였다면, 이런 디테일한 과정 없이 그냥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고 곧바로 닭을 튀기는 장면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치킨에도 튀기기 전의 염지와 밑간과 예열이 중요하듯이, 디테일하게 유머를 쌓아가는 남다른 노력이 큰 웃음을 폭발시켰다.



◆ 익숙하지만 공들인 유머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라고 고반장이 수십 번 되뇌었지만, 사실 지금까지 없던 맛은 아니다. 치킨 맛이 ‘수원 왕갈비 양념’의 응용이듯, 이 코미디도 익숙하고 친근한 맛의 변주된 응용이다.

이병헌 감독은 <과속 스캔들>과 <써니>의 각색으로 솜씨를 인정받은 시나리오 작가로, 2012년에 자신을 찍은 다큐멘터리 <힘내세요, 병헌씨>로 감독 데뷔했다. 이후 청춘 코미디 <스물>로 아무도 예상치 못한 흥행을 터뜨렸는데, 알다시피 <스물>은 순전히 말발로 승부를 건 ‘병맛’ 코미디였다. 이병헌 감독 특유의 말맛이 살아있는 코미디에 <완벽한 타인>의 각본을 썼던 배세영 작가가 가세했다. 영화 속 화려한 말발은 우연히 얻어걸린 것이 아니다.



<극한직업>의 유머는 웃음이 터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강점을 지닌다. 매 장면 1-2분 단위로 깨알 같은 웃음이 터진다. 이런 속도감은 인터넷 ‘짤방’이나 유튜브에 익숙해진 관객들의 감각에 맞는다. 최근 <개그콘서트>등이 전혀 인기를 얻지 못하는 까닭 중에는 웃음이 터지는 속도가 인터넷 ‘짤방’의 에서 속도감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한 몫 한다. 그런데 장편 영화의 러닝타임을 단기적인 웃음만으로 채우기는 힘들다. 영화는 대단히 영리하게 단파, 중파, 장파의 유머를 적절하게 안배한다.

티격태격 말장난을 주고받는 자잘한 유머들이 1분단위의 단파 웃음을 책임지고, 어이없는 상황들의 묘사가 그보다 긴 호흡의 웃음을 책임진다. 가령 도청을 라디오 중계처럼 들으며 응원과 환호를 보내는 장면이나, 기껏 목표 건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막 이사를 나간 것을 알게 되거나, “퇴직금이 있잖아”라는 아내의 말에 껴안고 꺼이꺼이 통곡을 하거나, 중국어를 알아듣는 것을 티 내어 잡히거나, 마약 때문에 신참형사가 날뛰거나, 둘이 정말로 연인이 되는 상황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단파의 말맛 유머들은 영화를 보고나면 금방 휘발되어 잊히는 반면, 이런 구체적인 상황에서 나온 중파 유머는 영화를 떠올릴 때 빙긋이 웃게 한다.



◆ 웃다가 짠해 지는 페이소스

그보다 긴 호흡의 장파 유머는 은근한 아이러니와 페이소스를 지닌다. 가령 어차피 퇴직하면 닭을 튀겨야 하는데, 몇 달 더 빨리 시작하는 것뿐이라는 고반장의 생각은 짠한 마음이 들게 하고, ‘치킨을 이용한 마약의 대중화’를 생각해낼 수 있게 한 떴다방 식의 음식 프렌차이즈 산업의 실태가 씁쓸함을 안긴다. 영화가 가장 비장하게 숨겨두었던 장파 유머는 오합지졸처럼 보였던 이들이 사실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고수라는 점이다.

영화는 이들의 특별한 능력을 절묘한 편집을 통해 알려준다. 그중 최고치는 역시 “고반장 좀비설” 이다. 영화는 마지막 대결을 앞두고 고반장이 진짜로 배 위로 쓰윽 지나가는 장면을 필두로, 마지막의 물어뜯는 장면까지 그의 좀비적인 특징들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는 “맷집이 늘 수밖에 없는 슬픈 야구부”와 더불어, 진정한 강함은 “죽어도 죽지 않는 좀비 같은 생명력”에 있다는 기묘한 울림을 남긴다. 12번의 칼침과 총을 맞고도 죽지 않는 고반장의 좀비성은 “대한민국 소상공인들, 전부 목숨 걸고 해”라는 찡한 대사와 조응하며, 각별한 애잔함을 남긴다.



이러한 장점과 더불어 영화의 유머가 불편한 지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도 언급할만하다. 젠더적인 관점에서 고반장의 아내 캐릭터를 제외하고 두 명의 여자 캐릭터의 쓰임새는 진부하지 않다. 이들의 몸싸움 대결도 호쾌하고 깔끔하다. 또한 두 명의 악당 캐릭터가 의외로 중성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것도 나름 신선하다.

<극한직업>은 ‘병맛’ 유머가 어쩌다 운이 좋아 흥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코미디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닌 감독이 공들여 만든 작품이기에 관객이 손맛에 반응하는 것이다. <극한직업>의 성공은 웃음을 위해 가학적이고 혐오적인 요소를 넣었다는 말들도 코미디를 ‘1도 모르는’ 자들의 빈말임을 방증한다. <골목식당>의 교훈이 ‘음식장사 쉽게 보지 말라’ 이듯, <극한 직업>의 교훈도 ‘코미디를 쉽게 보지 말라’ 이다. 소비자가 맛과 위생의 기본을 지킨 외식을 먹을 권리가 있듯이, 관객은 만듦새와 윤리의 기본을 지킨 코미디를 볼 권리를 지닌다. 코미디는 웃기는 장르이지 결코 우스운 장르가 아니다. 무릇 코미디를 우습게보지 말지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극한직업>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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