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Y 캐슬’ 유현미 작가와 시청자들의 간극 점점 더 멀어진 까닭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장안의 화제를 몰고온 드라마 JTBC 드라마 ‘SKY 캐슬’의 마지막회는 초현실적이었다. 마지막회는 너무나도 한심하게 쓰여진 각본이라 과연 같은 작가가 진지하게 쓴 게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 드라마는 단 한 번도 완벽한 적이 없었고 늘 불안하게 덜컹거렸지만 이렇게까지 지루하고 끔찍한 적은 없었다. 과연 같은 작가가 쓴 것이 맞는가? 이 결말에 이르는 동안 어떤 압력이 있었던 게 아닌가? 혹시 작가가 일부러 조악한 결말을 내어 시청자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심지어 이 드라마의 악역인 김주영 선생(a.k.a. 쓰앵님)은 원수의 집 아들들로 태어나 장원급제 해서 집에 돌아온 날 죽어 원수의 심장에 못을 박은 복수자들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하지만 암만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해도 나는 유현미 작가에게 그렇게 심하게 나쁜 짓을 저지른 적이 없다. 여러분은 어땠나?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 각본은 의외로 논리적이었다. 모든 면에서 끔찍한 결말이었지만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끌어온 각본가의 태도를 돌이켜보면 우린 이 파국을 예상했어야 했다. ‘SKY 캐슬’은 주제를 다룰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여러 겹의 우연이 겹쳐 능력 이상으로 좋은 드라마를 만들어내다가 자빠진 결과였다. 저들의 눈에는 이게 맞는 결말처럼 보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저 이야기를 하려고 그 먼 길을 걸어왔다.



‘SKY 캐슬’은 사회비판물로 시작했다. 대한민국 부유층 가족의 극단적인 교육열과 그를 통한 계급 되물림을 풍자하고 비판한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1차 목표이다. 작가는 그 동안 방대한 자료 조사를 했을 것이고 그 중 상당수가 직접적으로 스토리와 캐릭터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아마 일반 시청자들 눈에 가장 말도 안 되는 설정으로 보이는 것 중 상당수는 의외로 현실과 일치할 것이다. 여긴 한국이니까. 여전히 사실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내 의사 지인들은 이 드라마의 병원 묘사에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직업 묘사의 사실성을 따지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좋은 의도가 좋은 결말을 맺으려면 두 개가 필요하다. 그 의도를 지탱하고 유지시켜줄 수 있는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좋은 스토리다. ‘SKY 캐슬’은 유감스럽게도 전자는 거의 갖추지 못했고 후자는 갖고 있는 것처럼만 보였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재미있어지는데, 시청자들이 집중하며 보았던 드라마와 작가가 쓴 드라마는 일치하지 않았다.



이는 흔한 일이다. 열광적인 한국 드라마의 시청자들이 막판에 분노한다면 건 그들이 보는 드라마와 작가가 쓴 드라마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그게 당연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드라마를 볼 때 유사 동성애 관계에만 집중적으로 착즙하는 시청자들이 있는데 (‘SKY 캐슬’에서도 엄청나게 많았다) 당연히 작가의 의도와는 별 상관이 없고 아주 눈이 멀지 않는 한 시청자들도 안다. 하지만 ‘SKY 캐슬’의 경우 그 차이는 보다 근본적이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이수임 캐릭터에 대한 반응이다. 유현미 작가는 스카이 캐슬에 의사인 남편을 따라 새로 입주한 작가인 이수임을 자신을 반영한 캐릭터로 설정했고, 과열 입시의 함정에 빠진 SKY캐슬 사람들을 폭로하고 비판하고 교화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그러니까 작가 그리고 이 드라마를 만든 사람들에게 이수임은 ‘사이다’여야했다. 이건 내 짐작이 아니다. 방송국이 뿌린 보도자료의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SKY 캐슬’에서 이수임은 긍정적인 인물이고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작 이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시청자들은 이수임이 민폐이고 오지랖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작가가 최악의 엄마로 설정한 한서진에게 공감했다. 그건 시청자가 속물이어서인가? 자신에 대한 비판을 듣기 싫어서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수임 캐릭터가 기본적으로 얄팍한 인물이었고 이를 통해 전달되는 작가의 메시지 역시 허약했기 때문이다. 이수임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발은 양측의 의견 불일치를 보여주었고 결국 마지막의 파국을 예언했다.

이수임 관점, 그러니까 유현미 작가 관점의 가장 큰 문제점은 현상의 표면만을 본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드라마는 대치동 전업주부 입시맘들에 대한 혐오 선동이다. 내가 이들을 굳이 좋아하거나 옹호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입시맘들은 기껏해야 최전방에서 뛰는 보병이다. 그 위에는 장교와 장군들이 있고 그 위에는 정치가가 있으며 그 위에는 그들을 버티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시스템이 있다. 좋은 비판물은 이 모두를 관통해야 한다. 하지만 유현미 작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입시맘들에 대한 증오로 눈이 멀어 그들 너머로 들어가지 못한다.



아, 물론 입시맘들 위에는 남편들이 있다. 그들은 여자들보다 시스템의 중심에 조금 더 가까이 가 있다. 유현미 작가는 이들 대부분을 혐오스럽게 그리고 시청자들은 그 자극에 반응했다. 하지만 유현미 작가가 보는 남편과 시청자들이 보는 남편 사이엔 차이가 있었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시청자들이 이들의 처참한 죽음을 원했다. 1회의 묘사만 봐도 이들은 교화의 자격도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유현미 작가는 징그러울 정도로 이들에게 관대했다.

특히 한수진의 남편 강준상은 심했다. 20회가 방영되기 전엔 가장 한심했던 18회에서 강준상은 자신이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혜나가 자기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징징거리고 주변 모든 여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다가 샤워하고 면도를 하더니 모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작가라면 이걸 혐오스러운 코미디로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현미 작가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날 트위터에서는 강준상의 별명 ‘노콘준상’이 전세계 실시간 트렌드가 되었다. 그 전까지 가장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건 소위 ‘영재 애비’였는데, 뻔뻔스러운 가정폭력범이었던 인간이 몇 번 징징거리다가 역시 모두를 가르치려 할 때 시청자들을 얼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가정폭력범 남자들에 대한 이 드라마의 관대함은 범죄수준이다.



‘SKY 캐슬’은 극단적인 여성 혐오를 통해 진행되는 드라마였다. 여성작가가 썼다는 건 이 사실과 별 상관이 없다. 여성 혐오적 사고방식은 한국 드라마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시스템에 안착한 작가들은 여자건 남자건 이를 체화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 결과 유현미 작는 거의 캐리커처화 된 시어머니의 관점에서 SKY캐슬의 세계를 내려다본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이 드라마가 여성 청소년과 남성 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SKY 캐슬’에 나오는 모든 여성 청소년들은 다양한 결점을 갖고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 받고 심지어 한 명은 살해당하지만 남자 아이들 네 명은 모두 두리뭉실 예쁘장하게 그려지며 별다른 단점도 없다. 저 나이 또래 남자애가 네 명이나 나오는데, 이들이 모두 엄마 말 잘 듣는 순둥이들이라면 작가가 실제 남자 아이들을 그릴 생각이 없으며 그들을 똑바로 볼 의지도 용기도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드라마가 그리는 아이들의 세계는 엉망이다.



그 결과 ‘SKY 캐슬’은 시어머니 판타지로 끝이 난다. 이미 살해당한 혜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중상층 계급 가부장 가족의 틀 안에 허겁지겁 들어가 행복하게 안주하는 것이다. 혜나는? 뒤늦게 부계성을 붙여준다. 혜나 살인혐의로 잡혀갔다가 풀려난 우주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외치더니 학교를 자퇴하고 엄마 아빠 돈으로 해외여행을 갔다가 아이돌이 된다. (잠시 이 칼럼에서는 쓸 수 없는 욕을 좀 하고 오겠다.)

이렇게 써놓으니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하지만 왜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좋아하고 재미있어했던 것일까? 그건 유현미 작가가 막장극의 기본 매커니즘에 능숙했고 이것이 (종종 작가 능력 이상으로) 드라마에 효율적으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말려들었던 건 사회비판의 메시지가 아니라 폭풍처럼 몰아치는 막장극의 서사였다.



여기서부터는 배우들 이야기를 해야 한다. ‘SKY 캐슬’의 캐릭터들은 작가 의도와 설정만 따진다면 모두 진부하다. 한서진은 이기적인 엄마다. 혜나는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딸이다. 노승예는 고상하고 착하다. 진진희는 코미디언이다. 어른 남자들은 혐오스럽고 청소년 남자들은 납작하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스스로 작동하지 못한다. 종종 인터뷰를 읽어보면 배우들이 작가의 캐릭터 설정을 이해하지 못해 난처해했다는 걸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혜나 역의 김보라는 혜나가 자기를 버린 아버지를 증오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수많은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유현미는 버려진 딸이 아버지를 증오할 수 있다는 기초적인 심리도 이해를 못하는 작가였다. 드라마 관습에 적응하는 게 이렇게 위험하다.

‘SKY 캐슬’은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지 않고, 배우들의 자기 해석 비중이 높을 때 좋다. 이수임이 설교를 할 때는 지겹고, 강준상이 작가 입을 빌어 주변 모든 여자탓을 할 때는 하찮고 혐오스럽다. (이 인간은 자기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일차 원흉인 병원장에겐 편리하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하지만 의도를 감추고 있는 김주영 선생이 한서진과 맞붙는, 거의 성적 긴장감이 넘치는 모든 장면들은 좋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숨겨놓은 딸이라는 지루한 설정을 넘어서 배우가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혜나는 아름답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고 뒷이야기가 밝혀지기 시작하면 배우들도 어쩔 수 없다. 김주영 캐릭터가 막판에 얼마나 처절하게 붕괴되었는지 보라. 나는 혜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드라마 결말을 보면 일찍 죽은 게 다행인 거 같기도 하다. 혜나가 아빠 성을 받고 화기애애하는 꼴을 어떻게 보나.



잘 나가던 ‘SKY 캐슬’은 20회로 완전히 망한 드라마가 되었다. 작가 의도라면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시청자 상당수가 자기만의 20회를 꿈꾸고 있을 것이고 그 대부분은 실제 20회보다 나을 것이다. 나는 <오류가 발생했습니다>의 저자 이산화 작가를 포함한 몇몇 분들이 트위터에서 제시한, 살아남은 여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불타는 캐슬에서 빠져나오는 결말이 가장 정상적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제목에 성이 들어가는 드라마는 성이 불타면서 끝나는 것이 의무이거늘. 수백 년의 고딕 서사 전통이 가르쳐 온 진리인데 왜 다들 이걸 모르는 것인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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