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명품 다큐의 전설이 귀환을 열렬히 환영하며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명품 다큐의 전설이 귀환했다. 2009년 <아마존의 눈물>을 시작으로 <남극의 눈물>, <곤충, 위대한 본능> 등의 많은 명품 다큐멘터리들을 선사한 김진만 PD 사단의 신작, 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곰>이 드디어 본편 방영을 시작했다. 총 제작비 15억, 장장 2년에 걸친 촬영 기간, 북극에서부터 러시아 캄차카까지 세계 12개 지역을 넘나드는 이야기 등 스케일부터 남다르다. 국내 자연 다큐멘터리 최초 HDR 제작으로 한층 황홀해진 영상미도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지난 연말 프롤로그를 방송한 뒤로 거의 두 달 만에 본편으로 돌아온 이 명품 다큐를,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가 입을 모아 열렬히 환영했다.



◆ 목 늘이고 기다린 보람이 있다

MBC 다큐멘터리 <곰>. 2016년 <무한도전> ‘북극곰의 눈물’ 당시 정준하·박명수가 제작을 위해 현지에 와있는 김진만 PD 등을 만나는 장면이 나왔었는데 2년 여의 시간이 흘러 비로소 공개됐다. MBC 다큐멘터리 제작진으로 말하자면 그간 고생을 사서 해온, 한 마디로 다큐에 미친 사람들이 아닌가. 지난해 12월 3일 방송된 <곰> ‘프롤로그’의 긴장감 넘치는 화면과 마주하니 이번에도 어떤 숱한 고난과 역경이 있었을지 익히 짐작이 간다. 아쉬운 건 프롤로그 방송 후 1화까지 공백이 지나치다는 것. 왜 두 달 가까이, 해를 넘기며 기다려야 하는지 별다른 설명이 없지 뭔가.



어쨌거나 목 늘이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1월 28일 1화 ‘곰의 땅’을 만날 수 있었다. 역시 MBC 다큐멘터리! 명불허전, 토를 달 일이 없다. <곰>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곰의 이야기다. 1화는 특히 신비로운 지연 착상으로 동면 중에 출산하는 과정부터 새끼들이 독립할 때까지 지성으로 돌보는 어미 곰의 모성애에 집중한다. 곰 얘기일 뿐인데 스스로 피라미드의 꼭짓점으로, 최상위로 여기는 인간의 착각을 돌아보게 된다. 더 나아가 최근 불거진 유기동물 안락사 논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고. 인간이 다른 동물의 삶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있을까? 혹여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봐 몇 번이나 다시 봤는데 돌 지난 손녀가 눈도 깜빡 않고 몰입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올무에 걸려 앞발을 잃은 반달곰이 두 마리의 새끼를 얻어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다른 방송에서도 접한 적이 있지만 <곰>을 통해 보고 들으니 더 깊이 있게 다가왔다. 정해인의 내레이션 덕인지도 모르겠다. <곰> 영상집이 판매된다면 꼭 소장하련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스토리텔링 다큐의 전설답다

기다림이 길었다. 지난 연말 방송된 <곰> 프롤로그를 보고 제일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러시아 캄차카반도 쿠릴호수의 무법자 곰과 어미 곰의 뒷이야기였다. 어미 곰이 새끼들을 위해 공들여 사냥한 연어들을 몇 번이고 무법자 곰에게 뺏기는 모습을 담아낸 뒤 “엄마와 아기의 운명은 어찌될까요?”라고 끝을 맺으니, 다음 편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마침내 지난달 28일 방송된 1부 ‘곰의 땅’에서 덩치가 훨씬 큰 무법자 곰에게 맞선 어미 곰의 당당한 위용을 확인하고는 안도와 함께 박수가 다 나왔다. 그렇게 얄미웠던 무법자 곰이 또 다른 장면에서 신흥 세력에게 초라하게 밀려나는 모습을 보면서는 연민이 들기도 했다. 영상미도 영상미인데, 역시 가장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곰들이 주인공인 원초적 대서사시다. 과연, 스토리텔링 다큐의 신기원을 연 ‘지구의 눈물’ 시리즈 제작진의 신작답다.



사실 프롤로그와 1부는 이 야심 찬 다큐멘터리가 담아내고자 하는 이야기의 서막에 불과하다. 지리산 올무곰 가족이 보여주는 기적의 이야기, 지리산 서식지를 자꾸만 탈출하는 빠삐용 곰의 미스터리 추적극, 캄차카반도의 약육강식 서바이벌 스토리, 중국 사천 판다들의 성장기, 북금곰들에게 닥친 환경재난, 사육곰들의 실태를 다룬 사회고발물까지, 다큐 <곰>이 앞으로 수많은 장르를 넘나들며 이어갈 이야기는 결국 세상의 모든 이야기다. 보다 보면, ‘곰의 땅’이 저 멀리 대상화된 자연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더 나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 다큐멘터리의 지향점이 ‘곰과 인간의 공존’에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점이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압도적이다

가끔 글을 길게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은 프로그램들이 있다. MBC 창사특집 다큐 <곰>이 그렇다. 지난해 말 프롤로그 ‘곰의 세상으로’가 공개되고, 지난달 28일 1부 ‘곰의 땅’이 공개되었으니 이제 겨우 2/5 지점을 통과했을 뿐인데, <곰>은 압도적인 화면과 스토리텔링으로 글 쓰는 사람의 언변을 무색하게 만든다. UHD 화질로 촬영한 곰들의 이미지는 시종일관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곰의 육체가 약동하는 모습은 털가죽 아래 근육들이 꿈틀대며 움직이는 것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생생하다. UHD 화질로 만나는 곰은, 아름답고 무서우며 경이로운 단독자다.



야생에서 새끼를 양육하고 생존을 도모하는 곰의 생태를 지켜보는 것 또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체험이다. 자식을 먹일 연어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더 큰 구역의 대장곰과 싸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던 캄차카반도의 어미 불곰은, 자식들을 독립시켜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자 누구보다 더 매몰차게 새끼들을 떼어내고 연어를 독차지한다. 더 이상 어미에게 기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불곰의 생태 앞에서, 막연하게 인간 중심적인 시선으로 ‘헌신적인 어미와 귀여운 새끼들’이라는 그림을 그리며 흐뭇해하던 시청자는 충격을 받는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조금만 벗어나면, 자연은 언제나 제 나름의 법칙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자연스레 작품의 핵심 메시지로 이어진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에 얼음이 어는 날들이 줄어든 탓에 먹이를 구하지 못해 인간의 마을로 내려와 먹을 것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북극곰들의 모습이나, 올무에 앞발이 걸려 한쪽 앞발을 잘라내야 했던 지리산 올무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자연에 끼친 해악이 얼마나 큰지 겸허한 자세로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본격적으로 인간이 곰을 착취하고 학대한 역사를 다룰 2부 ‘왕의 몰락’의 방영을 앞둔 지금, 이 글을 읽을 모든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지금 다시보기로 <곰>의 지난 방영분들을 미리 예습해 두시라고.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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