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닿다’, 유인나의 하드캐리 어째서 안쓰러울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연기 못하는 우주여신은 어딘가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전지현)를 닮았다. 하지만 tvN 수목드라마 <진심이 닿다>의 오윤서(유인나)는 천송이처럼 빛나는 느낌이 없다. ‘우주여신’이라 스스로 자칭하지만 보기에도 너무 어색해 소름이 돋는 ‘발연기’를 연기하는 장면에서 웃음이 터져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웃기기보다는 안쓰러워 보인다. 하고 싶은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로펌에 ‘위장취업(?)’해 권정록(이동욱)의 비서로 3개월 간 생활한다는 그 설정은 코미디라도 어딘가 과장되어 보이고, 초미니로 한껏 연예인티를 내며 출근한 오윤서가 옷차림 때문에 떨어뜨린 A4 용지조차 줍지 못하는 장면은 우습긴 하지만 빵빵 터지진 않는다.

자신을 못 알아보는 권정록 앞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노트북에 소파, 소주 CF를 재연해 보이는 장면도 그렇다. 과거 우리가 한번쯤 봤을 CF들을 패러디한 그 장면들은 그런 설정 자체가 새로운 코미디가 아니기 때문에 큰 재미를 주지 못한다. 게다가 드라마는 흔하고 뻔한 로맨틱 코미디의 설정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반복한다. 대표적인 게 환영회로 열린 술자리에서 만취해 혀 꼬부러진 소리를 내며 남자 주인공에게 달려드는 여자주인공의 상황 같은 것이다.



물론 이런 망가지고 넘어지고 자아도취에 발연기를 하는 오윤서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유인나는 말 그대로 ‘하드캐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워낙 이야기가 진부한데다 어디선가 봤던 장면들을 그대로 가져온 ‘불성실함’이 유인나의 하드캐리를 재밌기보다는 안쓰럽게 만든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를 통해 사랑받았던 유인나와 이동욱의 재회는 대본의 진부함으로 퇴색되어버렸다.

<진심이 닿다>가 하려는 이야기는 제목에 담긴 것처럼 ‘진심’에 대한 것이다. 연기에 진심이 없다는 오윤서라는 배우는 늘 자아도취에 오버하는 듯한 모습으로 일상에서도 진심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가 비서로 일하게 됐다는 사실을 권정록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비서로 일한다는 사실 그 자체도 진심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연히 슬쩍 보게 된 오윤서에게 숨겨진 진심이 있다는 걸 권정록은 알게 된다. 로펌 직원들이 스캔들 이야기로 수군거려도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한 때는 잘 나가던 소주 광고 모델이었지만 지금은 후배들에게 밀려 광고 포스터를 바꿔 붙이는 그 상황에서도 그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어 보인다. 그런 대목에서 권정록은 오윤서가 진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내보이지 않는데 익숙해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비서와 변호사 사이가 되고 그 관계가 멜로로 발전해 나갈 것이며 그래서 연기에 있어서도 진심을 찾게 될 거라는 건 누구나 다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일 게다.

메시지가 또렷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너무 진부한 상황설정들로 채워짐으로써 신선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노력 없이 어디선가 가져온 클리셰들로 채워지는 대본에서 진심을 느끼기는 어려워진다. 당연히 유인나의 고군분투가 빛날 수가 없다.



최근 비서가 등장해 보스(?)와 관계가 맺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나 <저글러스> 같은 드라마가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런 비서와 보스 설정의 멜로는 요즘처럼 젠더 감수성이 달라진 시대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소재다. 만일 새로운 게 없거나 혹은 멜로 그 이상의 특별한 메시지가 담기지 않게 되면 자칫 젠더 의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비서 판타지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심이 닿다>가 제목처럼 멜로 그 이상의 관계의 ‘진심’을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하게 되면 생겨날 수 있는 문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