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생각거리 던지는 제작비 1700억 대작 ‘알리타’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알리타 : 배틀 엔젤>은 키시로 유키토의 만화 <총몽>을 원작으로 삼는다. 1990~1995년에 슈에이샤의 비즈니스 점프에 연재되었던 만화 <총몽>은 <공각기동대>와 더불어 1990년대 인기가 높았던 일본 SF만화로 꼽힌다. 1993년에 오시이 마모루가 연출한 애니메이션 <총몽>이 제작되었으며, 이후 2001년 후속편인 <총몽 : 라스트 오더>가 나오고, 프리퀄 격에 해당되는 <총몽 : 화성전기>는 아직도 연재 중이다.

원작의 매력이라 할 수 있는 ‘대추락’ 이후의 지구라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과 여전사의 강한 액션이 일찍부터 할리우드 제작사들의 관심을 끌었다. 원래는 제임스 카메론이 직접 영화를 연출할 계획이었으나, <아바타>가 너무 대박을 터뜨리는 바람에 제임스 카메룬은 제작만 맡고 연출은 <씬시티> 등을 찍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에게로 넘어갔다.

드디어 제작비 1700억 원을 들인 블록버스터 영화가 베일을 벗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다. 특히 <인랑> <공각기동대> 등 일본 만화를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었을 때 어떤 패착에 빠지는지를 보여주었던 작품들에 비해 한결 만듦새가 산뜻하다. 영화는 원작의 세계관을 가져오되,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했을 때, 치중했던 사이보그의 실존적인 고민과 음울한 분위기를 대폭 덜어냈다. 그 대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인 액션과 속도감에 비중을 실었다. 여기에 정교하고 화려한 CG 기술을 얹어 굉장한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과연 그 자리에 있는 듯한 현전감이 제대로 느껴진다. 특히 기계와 인간의 특징이 결합된 주인공의 육체는 볼수록 신기하다. 배우가 1차 연기를 하고 CG로 입힌 것이지만, 어색함이 없다. 특히 재조립 후 처음 눈을 뜨는 장면의 자연스러움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또한 주인공이 전사로서 자신의 능력을 알아가고 날렵하게 몸을 날려 무술 액션을 펼치는 장면은 호쾌함을 안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모터볼 경기이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헌터 워리어를 거쳐 모터볼 선수가 되지만, 영화에서는 모터볼 경기를 서사의 앞부분으로 당겨 몰입을 극대화했다. 금속성의 굉음을 내며 시속 160km로 질주하는 롤러 블레이드의 물성과, 위험한 격투를 통해 상대방의 신체가 절단되고 박살나는 타격감은 액션영화로서 충실한 쾌감을 준다. 특히 3D, 4D로 감상할 때 박진감이 배가된다.



◆ 식민 혹은 난민

영화 <알리타 : 배틀 엔젤>은 26세기 공중도시와 고철도시로 양분된 세계를 보여준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지구인들은 환경오염이 심각한 지구를 두고 공중에 쾌적한 신도시를 건설했다. 공중 신도시는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제어되는 환경을 지니고, 그 아래 지구는 황폐화된다. 공중 도시에 필요한 물자는 지구 위의 공장과 농장에서 만들어내며, 생산된 물자만 공중 도시로 올려 보낸다. 공중 도시는 쓰레기를 지구 위로 쏟아낸다. 그 결과 지구 위는 쓰레기와 고철 더미로 가득하다. 300년 전에는 더 많은 공중 도시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외계로부터 침공을 받은 공중 도시들이 추락해버렸고 한 곳만이 남아 있다. 고대 유적지처럼 변해버린 고철도시에는 공중도시의 잔해와 쓰레기 더미에서 건진 물건들을 재활용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영화가 보여주는 26세기 지구의 모습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황당한 설정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지구 질서에 대한 유비에 가깝다. 공중도시와 고철도시의 관계는 도시와 농촌, 제국과 식민지, 제1세계와 제3세계의 관계와 흡사하다. 가령 서울과 지방, 유럽과 아프리카 등의 관계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지방에는 도시에 물자를 공급하기 위한 농장과 공장은 물론이고, 쓰레기처리 시설 등 온갖 혐오시설이 들어선다. 선진국은 후진국으로 쓰레기를 재활용의 자원으로 팔아치운다. 실제로 영화 속 고철도시의 광경은 카이로나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도시의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고철도시는 치안이 좋지 않다. 납치와 살인이 번번이 일어나고, 사이보그들의 장기와 사지를 분해해서 파는 일당들도 있다. 치안을 담당하는 센추리온이 위압적인 속도로 거리를 활보하고, 현상금 사냥꾼인 헌터 워리어들이 큰 칼을 차고 돌아다니며 명단에 등록된 수배자들을 찾아내 즉결 처분한다. 누가 수배자인지는 공중도시에서 결정한다. 공중도시는 감시를 통해 고철도시를 지배한다.

고철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공중도시를 보며, 그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 한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은 완전히 막혀있다. 갈 수 없는 곳일수록 그곳에 가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해진다. 알리타의 남자친구는 공중도시에 가고 싶다는 열망을 불태운다. 그의 열망은 지배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권력자에 의해 이용당한다. 권력자에게 속아 수배자가 된 그가 마지막에 공중도시로 가는 수송통로를 기어오르는 모습은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밀입국하는 난민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또한 공중도시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모터볼 경기 우승밖에 없다는 것은 카메룬에서 유럽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축구선수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 사이보그인 게 어때서?

사이보그 여전사의 존재는 새롭지 않다. <메트로폴리스>나 <공각기동대> <엑스 마키나> 등에서도 많이 보았으니까. 하지만 <알리타 : 배틀 엔젤>이 사이보그를 대하는 방식은 다소 신선하다.

기억을 잃고 쓰레기 더미에서 머리와 가슴만 남은 채로 발견된 사이보그가 도어 박사에 의해 기계 몸체와 결합된 뒤 깨어난다. 알리타란 이름을 얻은 소녀는 문밖으로 나와 낯선 세계를 경험한다. 여기서 알리타가 사이보그라는 점은 알리타에게 특별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는 인간과 사이보그 사이에 존재론적인 갈림길이 있는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 이러한 묘사는 문명사적인 변화를 반영한다. 이미 인류는 재질이나 작동방식이 인간과 다소 다르다하더라도, 인간과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 사이에 용량과 속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작동방식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신체의 일부를 인공물로 대체하거나 보조적인 장치를 덧대는 일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영화는 이점을 아주 쿨 하게 보여준다. 알리타는 도어 박사가 선물한 신체로 새롭게 깨어난 자신에 대해 혼란과 회의를 느끼기보다 고급한 재질과 디자인에 흡족해한다. 영화는 간호사의 팔이 다른 재질로 되어 있는 것도 휙 보여주며 넘어간다. 알리타가 새로운 신체로 바뀌는 것도 기능이 업그레이드되는 것으로 그릴 뿐, 복잡한 실존적인 고민은 생략한다. 발에 롤러 블레이드를 장착하듯이, 신체를 탈착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로 그리는 것이다.



알리타가 사이보그인 것은 휴고와의 로맨스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알리타는 휴고에게 사이보그와 사랑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지 묻는다. 휴고에게 알리타가 사이보그인 것은 사랑을 느낄 수 없는 대상이라는 의미로 작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죄의식을 환기시키는 존재라는 점이 문제가 된다. 이는 휴고가 사이보그를 납치해 장기를 탈취하고 부품을 분해하는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즉 사이보그는 고철도시 안에서도 인간에게 착취를 당하는 사회적 약자에 가까우며, 사이보그를 사랑한다면 그런 착취를 계속할 수 없도록 만드는 인종적인 집단에 해당된다.

가령 외국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하던 청년이 한 외국인 여성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을 때, 죄책감이 느껴져 그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는 그동안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기에 상대가 당하는 고통에 대해 무관심했던 사람이 상대를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요컨대 이 영화에서 사이보그는 자아의 실존적 고뇌를 불러일으키는 설정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약자의 비유로 읽힌다.



◆ 뒤집힌 젠더관계

알리타와 휴고의 로맨스는 신선한 측면이 있다. 초반의 알리타와 휴고의 관계는 기존의 성역할을 답습한다. 휴고가 알리타에게 고철도시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주는 모습이나, 알리타가 휴고의 오토바이 뒷자석에 타고 달리는 모습은 여느 청춘 로맨스의 풍경과 같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곧 역전된다. 기억은 사라졌지만 알리타가 공중도시에서 온 존재이고, 그가 놀라운 신체 능력을 가졌다는 점은 휴고를 매료시키거나 압도한다. 하지만 휴고는 알리타를 위험에 빠뜨리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구도는 기존의 로맨스와 매우 다르다. 월등한 능력을 지닌 여주인공이 세계의 악과 맞설 수 있는 영웅으로 점점 자라는 동안, 지질한 남자는 혼자서 죄의식에 빠지다가 악당에 의해 미끼처럼 이용당하고, 급기야 여자 친구에게 살려달라고 전화한다. 애초 함정이었던 모터볼 경기장에서도 멋진 경기를 펼치던 알리타는 휴고의 구조요청에 달려온다. 알리타는 휴고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권능의 위치에 놓인다. 알리타의 주체적인 행동으로 휴고는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하지만 결국 무모한 행동으로 죽고 마는데, 그의 죽음은 알리타에게 분노와 성숙의 재료가 된다.



이런 상황은 과거 많은 로맨스 영화에서 젠더가 뒤바뀐 채 여러 번 반복되었다. 얼마나 많은 영화에서 남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여자, 악당에게 속아 이용당하는 여자, 결정적인 순간에 남자에게 살려달라고 연락하는 여자, 남자로 인해 겨우 구출되는 여자, 감정적으로 행동하다가 위험에 빠지는 여자, 남자가 뻗은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떨어져 죽는 여자, 죽음으로써 남자를 각성시키는 여자 등이 등장했던가.

사이보그임을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 여전사의 뒤집힌 로맨스는 그동안 얼마나 판에 박힌 SF와 로맨스를 상상해 왔는지를 역으로 비추어준다. 굉장한 볼거리에 더불어, 식민 혹은 난민의 문제와 젠더 문제에 대해 다채로운 생각거리를 던지는 흥미로운 영화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알리타 : 배틀 엔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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