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된 남자’ 여진구, 연기가 숨겨진 힘일 줄이야

[엔터미디어=정덕현] “오냐. 내가 바로 그 때 개 값 두 냥이다!” 정체가 탄로 난 하선(여진구)은 신치수(권해효)에게 오히려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껄껄 웃는 신치수에게 하선은 자신의 누이 달래(신수연)의 손 끝 하나라도 다치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자 신치수는 말한다. “네 놈이 아주 잘 노는구나. 응? 알고 보는데도 순간 전하인 줄 알았다.”

tvN 월화드라마 <왕이 된 남자>에서 신치수의 이 말은 왕 노릇을 하는 광대 하선이 가진 숨겨진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그것은 바로 그의 연기에서 비롯된다. 그는 도승지 이규(김상경)에 의해 왕의 역할을 하게 되었지만 그저 흉내 내는 꼭두각시에 머물지 않았다. 진짜 왕인 양 스스로 판단해 백성들을 위한 정치행보를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중전 소운(이세영)에 대한 마음은 진짜였다.

그의 숨겨진 힘이 연기라는 건 이렇게 으름장을 놓으며 달래를 친국하는 자리를 만들라는 신치수의 요구에 진짜로 굴복하는 듯 무릎을 꿇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그 친국에서 신치수는 도승지 이규의 ‘국정농단’을 폭로하려 했지만, 하선은 그 곳을 신치수의 친국장으로 바꿔놓는다. 그 앞에서 무릎까지 꿇으며 달래를 살려 달라 했던 모습은 그의 연기였던 셈이다.



친국장은 그 순간부터 하선의 ‘한 판 제대로 노는 판’이 되어버린다. 그는 광대놀음을 할 때 했던 대사들을 가져와 그를 가짜로 폭로하는 신치수를 오히려 역적으로 몰아세운다. 신하들이 보고 있는 와중에 왕을 능멸하는 언사를 신치수가 하게 된 건, 다름 아닌 하선의 광대놀음에 제대로 그가 격분하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신치수는 고신을 당한 후 투옥된다.

이 놀라운 뒤집기 한 판이 보여주는 건 그저 힘없는 광대로만 알았던 하선이 만만찮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정치판에서는 신치수가 제대로 노는(?) 권력자였지만, 하선이 깔아놓은 광대놀음 한 판 위에서는 무력한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 곳은 하선에게 더 익숙하고 그가 더 잘 놀 수 있는 판이었기 때문이다.

<왕이 된 남자>의 이런 부분은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드라마의 성공적인 변용이다. 드라마로 리메이크된 <왕이 된 남자>는 ‘광대’라는 직업이 가진 숨겨진 힘을 좀 더 전면에 내세웠다. 그리고 연기라는 것이 흉내의 차원이 아니며, 진짜로 그가 되어가는 과정이고, 그렇게 됐을 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걸 하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담아낸다.



그래서 <왕이 된 남자>는 하선이 연기를 통해 진짜 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는다. 진심이 더해지는 그 연기는 사실을 알게 된 중전의 마음까지 되돌리지 않았던가. 사극의 틀을 갖고 있지만 <왕이 된 남자>가 마치 여진구라는 배우가 연기로 들려주는 연기론 같은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여진구라는 배우도 왕이 되어간다. 과거의 역할들이 지워지고 광대였던 그는 왕으로 거듭난다. 이 작품이 어째서 배우 여진구에게 중대한 이정표가 될 수 있는가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연기의 힘이 무엇인가를 감지해가고 있고 그럼으로써 ‘연기의 왕’을 꿈꾸게 되었다. 잘되면 살판이지만 잘못되면 죽을 판일 수 있는 연기의 세계에서.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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