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정, 덧씌워진 불성실 이미지부터 훌훌 털어내야

[엔터미디어=정덕현] 사실 KBS 월화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2>는 배우 고현정에게는 중요한 기회가 되는 작품이었다. 지난해 SBS 드라마 <리턴>에서 ‘중도하차’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바 있고, 그로 인해 생겨난 ‘성실성 논란’이 꼬리표로 달리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여러 매체들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현장에 늦는 일이 잦아 다른 배우들과 스텝들이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고 했다. 현장 스텝의 증언 중에는 “얼굴이 부어서 안 나오고 기분이 별로여서 안 나오는” 일들도 있었다고 했다.

물론 이런 증언들을 100% 신뢰할 수는 없을 게다. 배우와 스텝들이 한 자리에서 부딪치는 현장은 저마다의 사유 하나쯤은 다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드라마 방영 도중 ‘중도하차’가 실제로 벌어졌고 그 역할을 박진희가 대신 하게 되는, 시청자들로서는 믿기 힘든 일이 생긴 건 사실이다. 제아무리 사유가 있다고 해도 배역을 포기했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이해받기가 어렵다. 그 자체가 ‘불성실’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꽤 긴 휴지기가 필요할 것이라 여겨졌지만 고현정은 1년도 되지 않아 <동네변호사 조들호2>로 복귀했다. 이런 결정에는 아마도 시즌1이 가졌던 호평과 박신양이 함께 한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가 하는 역할이 ‘사연 있는 악역’이라는 점은 좀 더 임팩트 있게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세울 수 있는 이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드라마 시작과 함께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 드라마는 엉뚱하게도 그 특유의 이야기로 승부하기보다는 고현정과 박신양이 보여주는 다소 과한 장면들로 시선을 먼저 끌려했다. 박신양은 과거 <쩐의 전쟁>에서부터 자주 보여지곤 했던 길바닥을 뒹구는 장면들을 계속 보여줬고, 고현정은 악역으로서의 살벌한 이미지를 강조하겠다는 듯 머리로 잔뜩 얼굴을 가린 채 다소 나른한 눈빛으로 냉혹한 대사들을 던지는 장면들을 보여줬다.

캐릭터가 보여야 하는데 연기자들이 먼저 보였고, 그것도 이전에 어디선가 이 배우들이 했던 연기가 덧씌워졌다. 다소 과장되고 나른한 눈빛과 웅얼거리는 듯한 말투는 고현정의 의도된 연기일 수 있었지만, 캐릭터에 몰입되지 못한 시청자들에게는 어색한 연기로 비춰졌다. 무려 30년에 달하는 연기경력의 연기자가 심지어 ‘연기력 논란’까지 만들어지게 된 이유였다.

캐릭터가 강렬하게 남아서 <리턴> 이후 고현정에게 덧씌워져 있던 ‘불성실’의 이미지를 지워내야 하는데, 캐릭터가 주목되지 않으니 오히려 고현정이 더 보이게 되었고, 여전히 시청자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는 심지어 그 연기마저 어색하게 보이게 했던 것. 물론 중반부로 오면서 고현정의 연기는 조금씩 안정되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 이미지를 깨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고현정은 1995년 방영됐던 SBS 드라마 <모래시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대중들의 호감을 사기 시작했다. 당시의 증언들을 들어보면 고현정의 대본은 하도 많이 읽고 또 읽어 너덜너덜했다고 한다. 그 후로도 <봄날>, <여우야 뭐하니> 같은 멜로는 물론이고 <선덕여왕>에서의 미실이나 <대물>의 여성 대통령 역할 같은 굵직한 캐릭터도 소화할 정도로 연기 내공을 넓혀갔다. 2016년 방영됐던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는 연기 베테랑들 속에서 그들과 잘 어우러지는 연기로 정점에 오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쌓아올린 연기의 공든 탑은 연기자로서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불성실’ 논란으로 흔들리더니 결국 무너져버렸다. 새로운 캐릭터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연기자라는 직업은, 배우에게 어떤 선입견이 씌워지는 순간부터 난항을 겪기 마련이다. 그래서 고현정에게 먼저 필요했던 건 연기로의 빠른 복귀보다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그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한 진정성 있는 어떤 행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게 전제되어야 향후 그에게 주어질 어떤 역할도 선입견 없이 보여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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