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된 남자’가 원작 탈피하자, 여진구도 펄펄 날았다

[엔터미디어=정덕현] 얼마 전 SBS <해치>와 MBC <아이템>이 시작되면서 그간 월화의 밤을 장악하고 있던 tvN <왕이 된 남자>는 살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새해 지상파들의 출사표와 같은 두 드라마의 공세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치>는 우리에게 <이산>, <동이>, <마의> 등으로 잘 알려진 김이영 작가의 사극이었고, <아이템>은 지상파에서는 좀체 다뤄지지 않았던 초능력 판타지가 담겨진 장르물이었다. 기획만으로도 신선하게 다가오는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왕이 된 남자>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아이템> 2~3%대 소소한 시청률에 머물고 있고 <해치>도 6%선을 오가며 횡보 중이다. <왕이 된 남자>는 살짝 경쟁작들의 영향을 받는 듯도 했지만 26일 시청률은 9.4%까지 치솟았다. 사실상 지상파와의 월화극 드라마 대결에서 <왕이 된 남자>가 왕좌에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 도대체 무엇이 <왕이 된 남자>의 시청률과 화제를 이끌어내게 만든 것일까.

본래 리메이크작품들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원작이 잘 알려진 작품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왕이 된 남자>는 무려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광해>의 리메이크이면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요인은, 원작의 무게를 온전히 이겨내고 그 이야기 틀에서 탈피하는 드라마적 변용을 잘 해냈다는 점이다.



원작에서는 얼굴이 똑 닮은 광대가 결국 내쳐지고 광해가 본 자리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담지만, <왕이 된 남자>는 과감하게 왕을 독살하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흉폭한 폭군으로 폭주하던 이헌(여진구)을 도승지 이규(김상경)가 독살하는 것. 그는 대신 광대 하선(여진구)을 그 자리에 앉히고 하려던 민생을 위한 정치 행보를 시작한다.

이게 가능해진 건 ‘광해’라는 실존 임금의 무게를 드라마가 떼어냈기 때문이다. 진짜 왕이 죽게 되면서 이야기는 <광해>와는 달라진다. 민생 정치나 새로운 리더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담기지만, 드라마에서 더 힘을 발휘하기 마련인 ‘정체의 발각’이라는 코드가 더 전면에 드러난다. 광대인 하선이 대신 왕 역할을 하니, 정적인 신치수(권해효)로부터 정체가 발각될 위기에 처하고, 나아가 점점 무르익어가는 중전 유소운(이세영)과의 멜로도 애틋해지면서 동시에 발각의 긴장감도 커진다.

‘정체의 발각’이라는 코드는 그래서 마치 ‘출생의 비밀’ 코드처럼 강력해진다. 결국 하선의 정체가 중전에게 발각되는 순간에 시청자들이 가장 긴장하고 몰입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코드를 적절히 활용한 덕분이다. 게다가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하선의 복수 코드 또한 집어넣었다. 동생을 겁탈한 신치수의 아들 신이겸(최규진)에 대한 복수는 그래서 그가 저지르고 있는 부정들을 처단하고 국정을 제대로 잡아 민생정치를 하는 과정과 이어진다.



결국 <왕이 된 남자>가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드라마가 갖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제작에서 비롯된 일이다. 드라마적 극성을 높이고 이를 유려한 연출로 균형을 맞춤으로써 극적이면서도 사극이 갖는 우아함을 잃지 않게 한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역시 칭찬이 아깝지 않은 건 여진구의 연기다. 1인2역이라는 캐릭터 설정 자체가 그렇긴 하지만 여진구는 이헌과 하선이라는 완전히 상반된 두 인물을 진짜 다른 사람처럼 연기해 보여준다. 여기에 이 작품은 그의 멜로 연기까지 끌어냄으로써 성인역으로서 훌쩍 성장한 여진구를 실감하게 해준다. 생각해보라. 이병헌의 그림자가 전혀 느껴지지 않지 않은가. <왕이 된 남자>의 여진구는 원작을 지워버릴 정도로 자신만의 연기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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