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사제’ 돌풍 속 빛과 그림자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박재범 작가가 KBS <김과장>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신작 <열혈사제>의 상승세가 무섭다. 최고 시청률 20%를 넘나들며 주목받고 있는 것. 국정원 요원 출신의 다혈질 가톨릭 사제와 부패한 절대권력 카르텔의 대결을 통해 사회비판적 메시지와 코믹 수사극의 장르적 재미를 잘 조화시켰다는 평가다. 김남길, 이하늬, 김성균 등 주연진을 위시한 배우들의 호흡도 호평을 얻고 있다. 지상파 드라마에서 실로 오랜만에 등장한 화제작 <열혈사제>의 초반부를 [TV삼분지계]에서 감상해봤다.



◆ 김남길과 김성균의 공조가 기대된다

SBS <열혈사제>가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순항을 시작했다. 틀은 코믹 액션 활극이나 우리 현실의 뿌리 깊은 부패와 부조리를 드라마 안에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쁜 짓은 조직폭력배 보스 황철범(고준) 같은 인물들이 도맡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뒤에서 압박하고 조종하는, 비열한 집단이 존재함을 우리는 잘 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제 손에 피 안 묻히는 더 큰 권력과 재력을 지닌 세력이 있다는 것을. 극 무대인 구담시 비리를 조장하는 구청장, 경찰서장, 부장판사, 지역 국회의원들은 어쩌면 거대 피라미드의 하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신부 김해일(김남길)과 비굴하기 짝이 없는 형사 구대영(김성균)이 이영준 주임신부(정동환)의 비참한 죽음을 계기로 의기투합해 구담시 비리 척결에 나설 모양이다.



워낙 거대 집단인지라 갈 길이 멀고 또 멀어 보인다. ‘사람 같지 않은 사람 솎아내고 사람다운 사람 지켜주는 것이 사제로서의 내 일’이라는 신부와 ‘내줄 건 내주고 내 목숨 보전하면서 두루뭉술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경찰’이라던 형사. 이 둘이 시청자가 원하는 통쾌함, 대리만족을 줄 수 있을까? 첫 주는 인물 소개와 이야기 전개를 위한 초석에 그쳤는데 주인공인 가톨릭 사제 캐릭터가 비현실적인 인물이고 성당이 주 무대인지라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다. 코미디라는 설정과 ‘본 드라마는 허구로 창작된 것이다’라는 문구를 앞세우고 있긴 해도 드라마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만큼 결정적인 왜곡은 없었으면 한다. 어쨌거나 개성 있는 배우 김남길과 김성균이 힘을 합해 어떤 어우러짐을 보여줄지, 다음 회가 기대된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더 현란해진 박재범 작가의 캐릭터 플레이

박재범 작가는 국내 드라마계에서 독특한 소재와 캐릭터를 가장 잘 활용하는 작가다. 괴짜 천재 부검의를 주인공으로 한 국내 최초의 메디컬 범죄수사극 <신의 퀴즈>,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의사와 대학병원 소아외과의 이야기 <굿 닥터>, 뱀파이어 의사가 등장하는 판타지 메디컬 드라마 <블러드>, 사기꾼 출신의 천재 회계사와 대기업 경리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김과장> 등 그의 작품 세계를 보면 하나같이 개성적인 캐릭터와 소재, 직업의 다양성을 내세운다. <열혈사제>에도 이 같은 특징이 잘 드러난다. 전직 국정원 대테러 특수팀 요원이자 분노조절장애를 지닌 가톨릭 사제 김해일은 박재범 작가의 변칙 히어로들 사이에서도 단연 화려한 설정을 자랑한다. 독특한 공간 배경은 아예 구남구라는 지역 단위로 확대됐다. 덕분에 한층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특유의 캐릭터 플레이가 더욱 현란해졌다.



권력의 충견이자 야망 넘치는 열혈 검사 박경선(이하늬), 가위바위보, 보물찾기, 숨 참기 등 하찮은 능력을 잔뜩 보유한 쫄보 형사 구대영(김성균) 등 김해일과 함께 쓰리톱을 형성하는 주인공들뿐 아니라 구담경찰서 형사들, 구담성당 식구들처럼 그냥 배경 역할을 하기 쉬운 구성원들 가운데서도 범상한 캐릭터가 거의 없다. 이들은 사회 중심부와 주변부, 정의와 불의 사이에 폭넓게 포진해 있다. 한없이 유치하고 천박하게 그려지는 ‘절대악’을 제외하면, 선악 양쪽에 조금씩 발 딛고 있고 그래서 얼마든지 반전과 성장의 가능성을 지닌 인물들이다.

겉으로는 정의로운 영웅과 거대 카르텔의 대결처럼 보이지만, 그 큰 갈등 구도 아래 군상들이 엮어가는 드라마야말로 이 드라마의 진짜 묘미다. 아직 카르텔과의 전쟁이 본격화되지 않았고 특정한 러브라인도 없는데, 이들의 캐릭터 플레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다. 보다 보면 거대한 불의 외에도, ‘일상의 작은 부패’와 싸우는 이야기라는 기획의도가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나태함이 아쉽다

가톨릭 세계관에는 죄를 짓게 만드는 근원으로 여겨지는 일곱 가지 마음이 있는데, 이를 칠죄종이라 한다. 교만, 탐욕, 질투, 분노, 음욕, 폭식, 나태가 바로 그것이다. <열혈사제>의 첫 인상은, 불행히도 ‘나태’해 보인다. <열혈사제>가 배경으로 삼은 것은 뻔한 한국 드라마 클리셰 타운이다. 호남 사투리와 충청 사투리를 구사하는 조직폭력배들과 악당들이 떼로 등장하고,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 대표, 검찰 등의 권력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카르텔을 꾸리며 평범한 서민들을 괴롭히는 클리셰 마을.

<열혈사제>는 이 위에 최근 한국 대중문화가 새롭게 사랑에 빠진 오브제인 ‘검은 수단을 휘날리며 세상을 구하는 모델 핏의 가톨릭 사제’라는 요소를 끼얹는데, 조합이 가히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다. 주인공 김해일 미카엘 신부(김남길)는 동네 깡패를 향해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 같은 대사를 던지며 인간이 반성하고 교화될 수 있다고 믿는 종교의 순기능 자체를 온몸으로 부정하는데, <열혈사제>는 이걸 ‘사회악을 처단하는 주인공의 사이다 발언’ 정도로 소비한다.



주인공을 각성하게 만들기 위해 주인공의 가까운 친구나 멘토를 사망에 이르게 만드는 한국 드라마의 악습 또한 반복된다. 이영준 가브리엘 신부(정동환)이 한없이 선량한 표정으로 화면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부터 ‘저 분은 첫 주를 넘기지 못하겠구나’라는 예감이 강하게 밀려드는데, 그 예감은 여지없이 적중한다. 여기까지만 봐도 게을렀던 대본은, 황철범(고준)을 비롯한 카르텔이 이영준 신부를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하며 뒤집어씌우는 혐의가 ‘여신도 성추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대목쯤 가면 수치심마저 잃는다.

전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가톨릭 사제들의 성폭력 스캔들이 들불처럼 타오르는 2019년에, 일평생 착하게만 살아온 신부가 거짓 성추행 누명을 뒤집어쓰고 죽은 채 발견됐다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는 그 자체로 문제를 제기한 평신도들을 향한 2차 가해로 기능한다. 진지한 태도로 가톨릭 공동체 내부의 모순을 탐구하고 성찰할 것도 아니면서, 가톨릭 사제들이 지은 가장 큰 죄를 ‘누명’으로 손쉽게 소비하는 게으름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시청률이 첫 주부터 11%가 나왔으니, 제작진도 변두리 글쟁이의 푸념 따위에 귀 기울일 리 없을 것은 잘 안다. 그럼에도 기록해둬야겠다. 게으름도 이 정도면 대죄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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