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0년 섬세하게 돌아보는 ‘기억·록’, 어디까지 뻗어갈지 궁금하다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방송사마다 대한민국이 걸어온 100년을 돌아보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MBC 특별기획 <기억·록>이 차지하는 위치는 각별하다. 2분에서 5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 동안, <기억·록>은 자료화면과 드라마타이즈, 플래시몹과 내레이션 등 다양한 장치를 동원해 한국의 오늘을 가능케 한 인물들을 ‘기억하여 기록한다’. 2019년 한국을 대표하는 셀러브리티들이 참여해 돌아본 한국의 근현대사는 어떤 모습일까. [TV삼분지계]의 세 필자들이 각자 마음에 오래 남은 회차들을 소개한다.



◆ ‘김현주X김마리아’ – 독립운동에 온 생을 바친 수많은 여성들을 생각하다

역사를 뒤흔든 1919년 3월 1일. 전 민족이 삼천리 방방곳곳에서 외쳤던 대한독립만세. 해마다 그날이 오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너는 그리 할 수 있겠느냐고. 거리로 뛰쳐나와 태극기를 흔들었던 군중 중 하나는 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체포되고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독립정신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답은 불가능. 보훈처가 선정한 2월의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지사. 교육자이기도 했던 그는 대한의 독립과 결혼했다며 평생을 이 나라의 자주 독립을 위해 바쳤으나 안타깝게도 그토록 염원하던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보지 못하고 한 해 전인 1944년 순국했다. 고문후유증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고 하니 이 얼마나 가슴 찢어질 일인가 말이다. 그런 김마리아 지사를 MBC 다큐 릴레이 <기억·록>이 배우 김현주의 담담한 시선으로 되짚어봤다.



김마리아 지사의 저고리는 앞 선의 길이가 달랐다고 한다. 모진 고문으로 가슴 한쪽을 잃어서다. 20대 여성이 반 년간의 끊임없는 악형과 고문에도 불구하고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됐을 정도로 기개가 높았다고 한다. 취조 중에도 메이지 연호 쓰기를 거부하는 등 끊임없이 항거했다니, 진정 감탄스러운 일이다. 아마 독립운동의 초석으로 물심양면 애를 썼으되 기록에 남지 못한 여성들도 부지기수일 게다. 여성이 독립운동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고 독려했던 김마리아 지사는 그들의 대표. 오늘 하루, 그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지련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신혜선X김향화’ – 불온한 기생들, 만세 운동을 이끌다

MBC <기억·록>의 탁월한 점은, 그동안 독립운동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영웅들의 이야기를 전진 배치했다는 데 있다. “첫 번째 이름은 기록되지 않은 이름들입니다”라는 김연아의 내레이션과 함께, ‘무명’의 영웅들을 주인공으로 한 ‘0회’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 데에서부터 그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뒤이은 이야기에서도 유관순(1,2회), 김향화(3회), 남자현(5회) 등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전면에 내세웠고, 유관순 편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기록에 집중했다.

특히 2회 서대문 형무소 여성 옥사에서의 만세 운동은 그동안 대중매체에서 거의 조명된 적 없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연대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이때 옥사에서 만세를 불렀던 운동가 중 1인이 3회에 다뤄진 김향화다. 개인적으로 김향화 편을 <기억·록> 시리즈 주제의식의 정수를 담은 에피소드로 꼽는 것은, 김향화야말로 잘 드러나지 않은 역사 속에서도 현미경을 들이대야만 비로소 그 존재가 드러나는 위인이기 때문이다.



3회에서 김향화는 1919년 3월, 수원에서 한 무리의 기생들을 이끌고 경찰서 앞에 선 인물로 처음 등장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모르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가질만한 장면이다. 내레이션을 담당한 배우 신혜선 역시 묻는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걸까요?” 뒤이어, 곱게 차려입은 한복 안에서 태극기를 꺼낸 기생들이 단체로 만세를 부르는 장면은 더없이 놀랍고 통쾌하다. 일본 순사들도, 지켜보던 조선 백성들도 하나같이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그들이 나라 잃은 백성들, 그중에서도 천대받던 기생들이라는 점에서, 그 만세 운동은 일제에 대한 항거와 함께 사회 전체의 통념에 맞선 저항의 의미를 지닌다.

<기억·록>은 “1919년, 수원과 안성, 해주, 토영 등에서 기생들이 주도한 만세 운동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들의 독립운동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자막을 통해, 당시의 통념이 여전히 남아 있는 현실을 환기한다. 기억은 그렇게 과거를 단순히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현재를 반성하고 교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앞으로 <기억·록>의 메시지가 어디까지 더 뻗어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한현민X심훈’ – 민족공동체에서 민주공화국까지, 대한민국 100년

<기억·록>은 회를 거듭하며 그 무대와 형식에 있어 다양한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야외 촬영을 통해 현대 서울의 거리를 보여주면서 과거와 현재의 극적 대비를 꾀하기도 하고, 플래시몹으로 3·1 운동의 한 장면을 재현해 보임으로써 2019년의 한국인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말을 걸기도 한다.

개중 눈을 끄는 시도는 모델 한현민이 참여한 14회다. 3·1 운동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검거된 수많은 무명씨들의 취조기록을 발췌해 인용한 14회에서, 한현민은 노인으로, 상인으로, 조선인 순사로, 그리고 훗날 심훈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지게 되는 열 아홉 경성고보 학생 심대섭으로 분한다. 왜 만세를 외쳤냐 묻는 일제의 질문에 “일본의 주권에서 탈퇴하고 조선만의 정치를 해 나가기 위해”(김희룡. 53세. 농민), “삶에 쪼들리고 있는 2000만 동포를 구하기 위해”(정호석. 34세. 조선총독부 순사), “씨를 뿌려 두면 반드시 그 결과로 독립될 것”(권동진. 59세. 천도교 도사)이라 답한 그 수많은 무명씨들의 목소리는, 한현민의 몸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만세를 외친 무명씨들을 재현하는 이가 한현민이라는 사실은 흥미로운 콘트라스트를 이룬다. 그들이 꿈꿨던 나라는 ‘민족공동체’의 독립국가였다. 당장 자력으로 자주를 실현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나와는 피부색과 외모가 다른, 인종간 결합의 결과로 등장한 다문화가정 2세대들을 상상한다는 건 너무 먼 미래였으리라. 그러나 그 ‘민족공동체’가 부단한 투쟁 끝에 ‘민주공화국’을 세운 덕분에, 한국은 어떻게 문호를 열고 어떻게 타자를 받아들일지를 스스로 결정하며 근대적 민족공동체에서 현대적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한현민과 내가 모두 ‘대한’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설 수 있는 오늘은, 오직 100년 전 그 무명씨들이 싸워온 결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기에 우리는 그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지점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런 시도는 <기억·록>의 목표와도 부합한다. <기억·록>은 0회에서 김연아의 목소리를 빌어 그들이 기록하고자 하는 것은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100년”이라 밝힌 바 있다. 자칫 식민지배를 경험한 국가 특유의 저항적 민족주의에 경도될 수 있었던 이 기획은, 제작진의 섬세한 접근으로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실로 탁월하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영상=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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