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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시게’ 김혜자 연기 자체가 이미 하나의 대하드라마다
기사입력 :[ 2019-03-13 16:29 ]


‘눈이 부시게’, 노년과 기억에 대한 이토록 찬란한 드라마 있었던가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놀라운 드라마다. 청춘과 노년을 대비시키되 그 둘 중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이 놀랍고, 비극과 코미디가 등을 맞대고 춤을 추는 자연스러움이 놀랍고, 타임리프물이라는 가장 최신의 트렌드로 노인의 삶을 탐구하는 발상의 전환이 놀랍다. 안 그래도 놀라운 이 드라마는, 종영을 한 주 남겨둔 지난 10화에서 잘 설계해둔 반전을 터뜨리며 또 한번 보는 이들을 경탄케 했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 또한 <눈이 부시게>를 향해 러브레터를 쓰는 데에 이견이 없었다. 김선영 평론가는 <눈이 부시게>가 노년을 다루는 성숙한 태도를 2017년 방영된 tvN <디어 마이 프렌즈>와 비교해 보았고, 이승한 평론가는 타임리프 장르를 변주해 인생의 가치를 논하는 스토리텔링에 주목했다. 정석희 평론가는 노인을 갈등 조장을 위한 장치 정도로만 소모해왔던 기존의 한국 드라마판을 둘러보며 <눈이 부시게>의 탁월함을 논했다.

* 본 글에는 JTBC <눈이 부시게> 10화의 반전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은 10화를 시청하신 뒤에 글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 눈부신 노년, 눈부신 연기

2년 전 방영된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1회는, 망상성 치매 판정을 받은 70대 희자(김혜자)가 고층 빌딩 옥상에 올라 햇빛 찬란한 풍경을 바라보며 “죽기 딱 좋다”라고 속삭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눈이 부시게> 2회는, 20대 청춘이었다가 70대 노인으로 뒤바뀐 혜자(김혜자)가 이 사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옥상에 올라 야경을 내려다보면서 죽음을 결심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디어 마이 프렌즈>와 <눈이 부시게>는 최근 한국드라마에서 노년을 가장 진지하고 성숙하게 그린 양대 작품이다. 쌍둥이처럼 닮은 두 장면은 양 드라마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희자가 “죽기 딱 좋다”고 말하는 모습을 마치 ‘풍경 참 좋다’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관조의 태도로 그려내고, <눈이 부시게>는 혜자가 뛰어내리려던 신을 신발이 먼저 떨어지는 코미디로 연결한다.



노년과 죽음은 뗄 수 없는 짝패고, 두 작품은 이를 비관적으로만 접근하는 게 아니라 희로애락이 모두 한 몸이 된 입체적 이야기로 풀어낸다. <디어 마이 프렌즈>가 노년을, 때로는 아이처럼 유치하고 청춘처럼 활기차며 현자처럼 지혜로운, 생의 다양한 풍경을 겹겹이 끌어안은 마트료시카처럼 그렸다면, <눈이 부시게>는 이를 특정 시간을 초월한 자연스러운 존재 그 자체로 그린다. 25살 청춘도, 70대 노인도 아닌 “그냥 혜자”로. 눈부신 노년을 그린 두 작품의 중심에 있는 김혜자라는 대배우의 존재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망각과 기억, 청춘과 노년, 삶과 죽음, 비참함과 찬란함, 그 어떤 극단의 이야기도 한 줄로 능숙하게 꿰어내는 김혜자의 연기 자체가 이미 하나의 대하드라마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타임리프물의 의의를 확장해 인생을 말하다

홍보관 노인들을 구출하는 미션을 마친 ‘노벤저스’는, 바다가 보고 싶다던 혜자(김혜자)의 소원을 따라 다 같이 버스를 타고 바다를 향해 간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의 모습이 어떠냐는 시각장애인 노인의 말에 혜자는 답한다. “바다 위로 석양이 지고 있어요. 석양 때문에 하늘도 바다도 다 황금빛이에요. 바다가 꼭 미소 짓고 있는 것 같아요.” 혜자의 말을 듣던 노인들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바다 위에 투사해본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저 바다처럼 눈부시던 나날, 노인들은 젊은 날의 꿈을 꾼다.



<눈이 부시게> 10화의 반전은 지금껏 우리가 이 드라마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추론을 단숨에 뒤집고 작품의 의미를 확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해석했지만, 사실 진짜 의미는 ‘그 시간을 살았던 나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시계’였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주관적이다. 기쁜 일과 슬픈 일, 시시한 하루하루가 쌓여 만든 개인의 역사야 말로 우리가 시간을 인지하는 단위이며, 그렇기에 시간을 되돌리는 일의 가장 현실적인 형태는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는 일이다. <눈이 부시게>는 “당신이 시간을 돌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타임리프물의 질문을 가져와 더 현실적이고 성숙한 답변을 내놓는다. “시간을 되돌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길은 없고, 지금 젊은 당신도 언젠간 늙는다. 그러니 지금 눈앞의 하루를 충실히 살라.”

혜자가 경험하는 시간여행의 정체 또한 <눈이 부시게>가 던지는 묵직한 화두다. <눈이 부시게>는 젊음이 훈장이 아니듯 늙음도 형벌이 아니라는 사실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10화에 들어 압도적인 크기로 증폭된다. 작품은 10화의 반전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중첩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바라볼 것을 권한다. 젊은이들에게 지금을 있는 힘껏 충실히 살아내라고 권하는 동시에 나이 드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 이해하게 만드는 작품. 더없이 아름답다.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소통과 공감으로 어우러진 보기 드문 노인 서사

“긴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꾸는 건지,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꾸는 건지.” 혜자(김혜자)의 독백이다. 이십 대 풋풋한 혜자(한지민)가 노인이 된 줄 알았더니 실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늙은 혜자의 상상이었다. 시계를 찾아 언젠가는 젊어지려니 했건만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었다니. 서글프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비로소 퍼즐이 맞춰졌다. 이처럼 젊은이의 삶과 어르신의 삶이 공존하는 드라마는 흔치 않다. 소통과 공감으로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내는 드라마는 더 더욱 흔치 않다. <눈이 부시게>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청년들이 직면한 고민거리와 애환을 살뜰히 돌아보는가 하면 누구나 겪게 될 노인의 고통에도 측은한 눈길을 보낸다. 혜자의 상상이긴 해도, 코믹 설정이긴 해도, 노인 대상 사기는 피해 규모 집계가 어려운 수준이지 않나. 그게 다 관심의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드라마에서라도 가끔씩 다뤄 실태를 일깨워주면 좋으련만.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노인은 tvN <나의 아저씨>의 지안(이지은)의 할머니 봉애(손숙)처럼 심정적으로는 의지가 되지만 실제로는 가족의 발목을 잡는 존재로 묘사되거나 아니면 재벌이 주인공인 모든 드라마 속 회장들처럼 부와 권력을 앞세워 자손들을 쥐락펴락하는 쪽이거나, 그저 갈등 조장에 필요한 장치에 불과하지 않나. <눈이 부시게>를 기점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기대해보지만, 글쎄다. 나이를 초월한 김혜자 님의 연기는 명불허전, 두 말이 필요 없다. 거기에 놀랍게 성장한 남주혁, 처음부터 끝까지 딱 제 역할에 충실해준 손호준, 그리고 혜자 친구 역의 김가은과 송상은. 자신을 아빠로 아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안내상)의 허망한 눈빛. 두고두고 떠올릴 인물이며 장면이 너무 많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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