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과제를 잘못 선정한 ‘연애 DNA 연구소 X’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N에서 선보인 4부작 파일럿 <연애 DNA 연구소 X>는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애 카운슬링 토크쇼다. 연애를 잘못해서 고민인 일반인 상담자를 스튜디오로 초대해 MC들이 과거 연애사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듣고 조언하는 연애 코칭이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하트시그널>의 영향일까, 연애감정이란 보편적 공감대를 마련하는 방식을 매력적인 일반인 출연자의 외모에서부터 찾는다. 그러면서 내세우는 셀링포인트가 헤어진 연인, 썸을 탔던 과거의 인연의 등장, 즉 과거사다. 제작진 또한 인터뷰에서 “전 남친 혹은 전 여친과 한 곳에서 토크를 이어가는 것이 이 예능만의 색다른 포인트”라고 말할 정도로 이를 강조한다.

캐스팅부터 ‘선전’적이다. 연애 문제아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겉보기에 멀쩡한 것을 넘어서 SNS나 1인 방송에서 활약하는 ‘SNS 유명인’ 이른바 인플루언서다. 일반적으로 연애를 잘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는다고 한다면 자신감이 없거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기 쉬우나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출연진의 면모는 화려함 일색이다. 1회에 나온 ‘호구녀’는 팔로워 10만 명의 모델이고, 3회 ‘대시한 남자만 300명’으로 소개된 이새미 씨도 아이돌 출신의 인기 영상 크리에이터다. 2회에 나온 주인공도 ‘Y고 김재원’으로 유명한 인물이고 4회 주인공 몸짱 한의사 또한 활발한 SNS 활동은 물론 예전 소개팅프로그램과 잡지에서 이름과 얼굴을 알린 적 있으며, 지인이 미스코리아 출신 모델이다. 그외 지인들도 대부분 훤칠한 선남선녀다.



고민거리도 연애의 기회를 갖기 어렵다거나 상처 때문에 다시 사랑을 시작하기 두렵다는 정도가 아니라 인스턴트 연애만 하게 된다거나 대시하는 사람만 하루에도 10명이라는 식이다. 나름 주목받는 삶을 사는 이들의 풍요속의 빈곤에서 콘텐츠를 가져오려면 더욱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가거나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진정성에서 우러나는 공감대가 필요할 텐데, <연애 DNA 연구소 X>는 연애를 빌미로 옛 연인을 불러서 과거사와 같은 선정적인 에피소드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더욱 특이한 것은 이 쇼의 장치이자 토크의 룰이다. 연애 관련 에피소드가 핵심 콘텐츠인데, 상담자보다는 옛 연인이나 동료, 친구들을 통해서 주로 듣게 된다. 그 이유는 일반적인 포맷인 ‘사연VCR+후토크’나, MC가 게스트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 대신, <히든싱어>나 <너의 목소리가 들려> 같은 가창 예능에서 주로 사용하는 추리를 가미한 쇼버라이어티의 설정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과거 ‘토크박스’처럼 궁금한 키워드를 내세우고 무대 뒤에 숨은 인물이 변조된 목소리로 과거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그러면 주인공이 진짜 지인이나 옛 연인인지, 제작진이 섭외한 제로맨(가짜)인지 맞추면 상금과 함께 에피소드를 자세히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토크를 이어간다.



추리와 상금까지 걸려 있다 보니 연애 상담이라는 내밀한 정서, 보편적 공감대까지 다가가기에 단계가 꽤 많은 복잡하고도 특이한 방식의 진행이다. 그래서일까. 쇼버라이어티 장치와 연애사를 접목시키려다보니 ‘하룻밤에 10명’ ‘세계 100대 부자의 프러포즈’ ‘오빠의 손맛’ ‘누나 손만 잡을게’ ‘나에게만 벗어준다’ 같은 선정적인 토크 키워드들을 내세운다.

헤어진 연인이 등장하는 방송 역사상 최초의 시도를 셀링포인트로 내세웠지만 공허한 이유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출연한 4명의 주인공 중 한 명이라도 방송에 나올 만큼 연애 문제로 고민한 사람이 있는지부터 회의적이다. 친구, 지인 심지어 옛 연인들과 함께 자신의 술자리 이야기, 연애 관련 에피소드들을 즐겁게 이야기하는 방송을 보고 있으면 정말 이들이 정말 고민이 있어서 출연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이 정말 연애 문제로 아파봤다면 그렇게 웃으면서, 또 뜻밖의 옛 연인과 재회하면서 반가워할 수 있을까.



또한 방송 기획단계에서 많은 인터뷰를 하고 섭외 과정에서 주인공의 의사가 반영된 정보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음을 시청자들도 잘 알기 때문에 추리도 진정성이 떨어진다. <선다방>같은 진지한 공기나 <하트시그널>의 설렘 같은 연애 세포를 자극할만한 요소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진정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선정적인 볼거리 뒤에서 비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빈약한 솔루션도 더욱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공감대도 솔루션도 없는 타인의 시시콜콜한 연애사를 시청자들이 비싼 시간을 들여 보고 싶을까? 제목에서부터 연애를 이야기한다고 내걸었지만 선정적인 볼거리를 셀링포인트로 잡다보니 연애라는 소재의 본질이 선명하게 와 닿지 않고 시청자들이 공감하거나 배우거나 자신을 돌아볼만한 정서적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 <연애 DNA 연구소 X>는 매우 개인적인 내밀한 연애사가 방송콘텐츠화 되려면 진정성과 공감대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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