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청원 올라오는 ‘1박2일’, 최대 위기 자초했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정준영의 범법행위가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그가 오래도록 몸 담아왔던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 또한 직격탄을 맞게 됐다. 언론이 공개한 대화방의 추잡한 내용들을 보면 대중들이 공분을 일으키고 있고, 나아가 <1박2일> 하차만이 아니라 아예 프로그램 폐지를 청원하는 일조차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이유는 <1박2일>이 2016년 이미 정준영 사건을 접하고도 약 3개월 정도 만에 복귀시켰던 전적이 있어서다. 당시 한 여성으로부터 성범죄 혐의로 피소됐다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정준영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런 동영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촬영한 적이 없습니다. 2초짜리 동영상이며, 성관계 동영상이 아닙니다. 그것조차 당일 삭제하여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당시 정준영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최근 승리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단체대화방을 통해 그가 성관계 영상을 촬영하고 유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 때와 달리 정준영은 모든 혐의를 인정했고, 연예계 은퇴 선언을 했다. 이 말은 2016년 당시의 상황들을 모두 뒤집는 것이었다. 그것이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것.



여기서 중요한 건 <1박2일> 측이나 KBS가 이러한 정준영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무혐의 처분’이 그 복귀의 근거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게다. 하지만 그 많은 성폭력 관련 사안들 속에서 대중들은 이미 ‘무혐의’가 ‘무죄’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단지 혐의를 증명할 단서가 없다는 것일 뿐. 그렇다면 <1박2일>이나 KBS 측은 법적 차원이 아닌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에서 정준영의 복귀를 쉽게 선택하지 않았어야 했던 게 아닐까.

이것은 지상파 그것도 공영방송이 갖고 있는 ‘도덕적 둔감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이렇게 복귀한 정준영은 KBS의 대표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 <1박2일>을 통해 빠르게 자신의 이미지를 세탁할 수 있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여러 예능 프로그램들에도 출연하며 연예계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잠재적) 범법자가 버젓이 활동하며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1박2일> 측은 “정준영은 잠정 하차가 아니라 완전 퇴출”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1박2일> 공식 홈페이지에도 정준영의 흔적은 모두 지워졌다. 그리고 오늘(15일) 정준영을 제외한 김준호, 차태현, 김종민, 데프콘, 윤시윤, 이용진 등이 녹화를 진행한다고 한다. 과연 이런 방송 강행은 괜찮을 걸까.



지금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1박2일>은 더더욱 출연자들 간의 끈끈한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미 사건이 불거졌던 2016년에 방송 복귀해 지금껏 그 오랜 시간을 정준영과 동고동락해온 출연자들의 모습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 진정성을 의심받게 되었다. 그 동안 정준영과 함께 해온 그 모습들은 가짜였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그의 숨겨진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출연자들과 제작진이 모두 속았던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런 중대한 사안을 별거 아니라고 치부할 정도로 둔감했던 걸까.

시청자들은 이제 과거처럼 <1박2일>을 편안하게 웃으며 볼 수 없게 됐다. 정준영은 퇴출되었지만 그가 몇 년 간 다른 출연자들과 만들어온 관계들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잔상으로 남았다. 게다가 그런 범법자에게 기회의 장을 제공했다는 사실은 결코 쉽게 씻을 수 없는 책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 강행은 무리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위기는 그 누구도 아닌 <1박2일>이 자초한 일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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