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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별’, 이나영을 향한 이종석의 잔망스러운 연하남 판타지
기사입력 :[ 2019-03-15 14:07 ]


‘로맨스는 별책부록’, 페미니즘의 탈을 쓴 안티페미니즘 텍스트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반(反)▲.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은 출판사를 배경으로 연상연하 커플의 사랑을 그린 로맨스 코미디다. 이종석, 이나영 주연의 드라마로, 예쁘고 달달한 화면에 책 만드는 직업의 세계를 보는 맛이 쏠쏠하다. 더욱이 드라마는 첫 회부터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인 여주인공이 재취업을 위해 발버둥치는 장면을 보여주며 여성주의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하지만 드라마의 전체적인 서사는 갈수록 반여성주의적인 행보를 걷는다.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줌마렐라’의 판타지보다 더 퇴행적인 판타지를 보여주는데, 가히 ‘페미니즘의 탈을 쓰고 나타난 안티페미니즘 텍스트’라 할만하다.



◆ ‘청순한 불행녀’는 누구의 판타지?

여주인공의 이름은 ‘강단이’. 이름부터 ‘경단(녀)’가 연상된다. 명문대를 졸업한 강단이(이나영)은 한 때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였으나, 결혼 후 한동안 살림에 전념했다. 현재 12살 된 딸을 두고 있지만, 1년 전 남편과 이혼했다. 집도 없고 돈도 없는 37세의 싱글 맘이 된 강단이는 필리핀에 유학 중인 딸에게 학비를 보내기 위해 재취업 전선에 뛰어든다. 경력직을 뽑는 광고회사 면접장에서 강단이는 자신이 만들었던 유명 광고의 카피를 읊지만, “7년 전의 경력일 뿐이잖아요. 그 사이 업계가 많이 바뀌었어요.”라는 쓴 소리를 듣는다.

그에게는 5살 연하의 ‘아는 동생’ 차은호(이종석)이 있다. 잘나가는 작가이자 출판사 편집장인 그에게 강단이는 가사도우미를 소개하는 척하고 자신이 직접 그의 집에 숨어들어 일을 해주고 돈을 받는다. 하지만 곧 차은호의 출판사에 고졸 계약직으로 입사한 강단이는 차은호의 집에 들어가 함께 살게 된다. 직장과 집에서 매일 만나며 차은호와 새로운 감정을 쌓아가던 강단이 앞에 잘나가는 북 디자이너 지서준(위하준)이 나타난다. 강단이는 그와도 썸을 타는 사이가 된다.



드라마 초반에 강단이의 상황은 극악하기 짝이 없다. 남편은 무책임한 ‘쓰레기’이고, 위자료도 양육비도 받지 못한 채 이혼녀가 된 강단이는 철거직전의 옛집에 숨어 자다가 아침에 벽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 노숙자처럼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다니다가 신발까지 잃어버리고, 맨발에 비까지 쫄딱 맞은 꼴이라니! 그런 강단이 앞에 신발을 들고 나타난 지서준에게 강단이는 “나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믿기엔 나이가 너무 많고,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구원을 믿지 않는다. 나는 내가 구원한다.”는 당찬 소리를 들려준다. 그러나 서사는 그의 선언과는 반대로 흘러간다.

마치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듯, 모든 면에서 환상적인 차은호가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완벽하게 챙겨주더니, 급기야 어릴 때부터 연정을 품어왔다며 고백해온다. 한편 지서준은 강단이에게 감각적인 데이트를 제안하며, 두 주인공의 연애감정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쯤 되면 이혼한 ‘경단녀’에게 두 명의 미남과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안기는 소망충족적 판타지인가 싶지만, 실상은 그보다 더 퇴행적이다.



◆ 누나를 구원하겠다는 연하남의 판타지

강단이의 사연은 극악하지만, 캐릭터는 생활의 때가 거의 묻어나지 않는 청순함을 지닌다. 이나영 특유의 비현실적인 느낌도 일조하거니와 극악한 상황에서 취하는 그의 태도가 너무 나이브한 탓이다. 남편의 사업 실패와 외도로 이혼하게 된 마당에, 강단이는 오히려 자신이 잘못했다며 울며불며 매달린다. 그뿐인가. 어렵게 잡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강단이는 정당한 자기방어도 못한 채 찍소리 없이 짐을 싼다. 스무 살 사회초년생도 아니고, 생활고의 절박함까지 지닌 그가 그토록 순진하게 떨려나오다니, 현실감 제로가 아닌가. 이 장면은 회사 밖에서 강단이의 해고 소식을 듣고 달려오는 차은호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요컨대 강단이는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이혼한 연상녀’ 이자 ‘절박한 경단녀’ 가 아니라, 남자의 구원을 받기 위해 준비된 ‘청순한 불행녀’ 에 가깝다. 즉 남성 구원서사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순백의 요정인 셈이다.



약간의 기시감이 느껴진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도 연상연하 로맨스이고, 극 초반에 직장 내 성희롱 등을 다루며 여성주의적인 인식을 드러낸 드라마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연상녀는 맹한 캐릭터가 되어가고, 연하남은 여주인공의 문제에 직접 개입하며 나대는 무리수를 두었다. 30대 직장여성이 연하남의 사랑을 받는다는 판타지인가 싶었지만, 연정을 품어 오던 친구누나에게 남자로 인정받고 싶다는 남성의 판타지의 발현이었던 셈이다. 특히 직장과 집안에서 비밀연애를 하면서 때때로 은밀한 스킨십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은 ‘친구 집에 갔더니, 친구는 없고 누나만 있더라.’ 는 야설을 떠올리게 하였다.

<로맨스는 별책부록>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보았던 문제점들을 더욱 심한 형태로 품고 있다. 두 사람은 심지어 ‘생명의 은인’이라는 범상치 않은 운명으로 엮여있고, 차은호는 천재에 가까워서 연하남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완벽한 구원을 선사할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반면 강단이에게는 완벽한 불행을 부과하여,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전락시킨다. 둘은 경제력으로나 정보력으로나 평등하지 않다. 심지어 강단이도 근황을 모르는 전남편을 차은호가 찾아내 담판을 짓고 강단이에게 돈을 보내게 한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비해, 여자는 한없이 무력하게 묘사하고 남자는 훨씬 전능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도달하는 드라마의 무의식은 ‘불행해진 누나를 내가 구원해주겠다’는 잔망스러운 연하남의 판타지이다. 이에 대해서는 정신분석학적 고찰이 필요하다.

영화 <질투는 나의 힘>(2002)에서 이원상(박해일)은 두 번이나 사랑하는 여자를 유부남인 한윤식(문성근)에게 빼앗긴다. 질투를 품고 한윤식의 주변을 맴돌던 이원상은 결국 그의 충실한 수하가 된다. 이원상이 한윤식에게 품는 감정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변형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내적인 갈등을 겪다가, 그의 승리를 인정하고 남성연대를 맺음으로써 평화를 찾는다. <질투는 나의 힘>은 남성이 여성을 매개로 다른 남성과 어떤 인정투쟁을 벌이는지를 탁월하게 그린 작품인데, 그 영화의 유명한 카피가 “누나 그 사람이랑 자지 마요. 나도 잘해요.”였다. 사실 연하남들이 연상녀에게 사랑을 품으면서 느끼는 오디푸스적인 열패감과 갈등을 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 말도 없으리라.



◆ 페미니즘의 탈을 쓴 안티 페미니즘 텍스트

각설하고, <로맨스는 별책 부록>에 어른거리는 연하남 판타지의 본질도 여기서 멀지 않다. ‘남몰래 누나를 사랑했으나 아직 소년인 탓에 누나의 남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내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도망친 누나를 고이 결혼식장까지 모셔다주기도 했던 내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멋진 남자가 되어, 잘못된 결혼으로 불행해진 누나를 구원하리라.’ 믿고 싶은 연하남의 판타지인 것이다. ‘나보다 잘난 형들(이미 취직하고 인정받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 선배들) 품으로 간 누나들이여, 몇 년도 못살고 이혼하여 불행해지면 내가 구원해줄게. 그때 나는 지금보다 훨씬 번듯해져 있을 테니까.’라는 정신승리의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는 아리랑 장단에 맞추어서.

요컨대 <로맨스는 별책부록>은 여성주의의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으나, 자신을 ‘박탈감 돋는’ 소년의 위치에 두고 “누나 그 사람이랑 자지 마요. 나도 잘해요.” 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미성숙한 남성주체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새롭게 창궐하는 남성 판타지의 현현이다.



드라마가 여성주의를 표방한 듯하나, 사실은 반여성주의적인 텍스트라는 혐의는 다른 곳에서도 확인된다. 드라마는 걸핏하면 여성들 간의 적대를 보여준다. 화장실에서 마주친 면접관이 강단이에게 “내가 어떻게 지킨 직장인데, 이제야 기어 나오는가?”라며 적의를 드러내는 장면은 뜨악하다. ‘경단녀’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굳이 막말을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보다 직장여성이 전업주부나 ‘경단녀’들에게 적의와 경멸을 품을 것이라는 생각도 ‘여성혐오’적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의 다른 판본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공한 캐리어 우먼인 고이사를 그리는 방식도 악의적이다. 고이사는 강단이를 비롯한 기혼 여성들에게 냉랭하게 군다. 직장에서는 마녀로 불릴 만큼 깐깐하지만, 그의 집은 엉망진창이다. 즉 그의 개인적 삶이 공허하다는 표시이다. “혼자라서 외롭다”고 말하는 그는 “무서워서 도망쳤다”고 회고되는 파혼경력을 가진다. 드라마는 그를 자기 확신을 가진 비혼 여성이 아니라, 이상한 결핍과 회한과 선망을 기혼여성들에게 투사하는 비틀린 인격체로 그린다. 왜 성공한 비혼 여성은 안정된 인격의 소유자로 그려지지 못하고, 온갖 내면적 결핍에 시달리는 인간으로 그려져야만 하는 걸까.



백래시는 뚜렷한 안티 페미니즘의 형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의 옷을 입고 온다는 말이 실감나는 텍스트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tvN, JTBC, 영화 <질투는 나의 힘>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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