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기적이 가르쳐준 게 인간의 의지라면 두 번째 기적은 진실인가? 각자의 진실, 누구에게나 이유는 있다. 그러니까 혼자만 그렇다고 억울해서 징징대지 말라는 거야 뭐야. 이거 머리가 나빠서 알 수가 있나.”

- JTBC <빠담빠담-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에서 국수(김범)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국수의 예감대로 두 번째 기적도 일어났다. 양강칠(정우성)과 이국수(김범), 이 두 사람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환상인지, 현실인지, 아니면 꿈속의 일인지 본인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도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19세 어린 나이에 친구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해온 강칠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감옥에서 풀려난다. 강칠의 수호천사를 자처하는 국수와 함께.

그러나 출소 한 달 전에 맞닥뜨렸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때문에 교도소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어릴 적 누명을 썼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바람에 사형 집행까지 당하게 되지만 목에 밧줄이 감기는 찰라 거짓말처럼 시간은 과거로 되돌아갔고 결국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 국수는 이 기적 같은 경험이 강칠에게 인간의 의지를 가르쳐줬다고 주장하며 앞으로 두 번의 기적이 더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들이닥친 두 번째 기적은 강칠에게 몇 가지 진실을 알려 줬다.

강칠은 알고 싶지도 않은 걸, 보고 싶지 않은 꼴을 보는 게 무슨 기적이냐며 울부짖었지만 사실 나는 두 번째 기적으로 인해 숨겨졌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내가 그 동안 이 드라마에 제대로 빠져들지 못했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으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나는 강칠과 마찬가지로 강칠의 어머니(나문희)를 오해했던 것이다. 지난 날 사고발생 당시, 아무리 허구한 날 속을 썩이는 자식이라 해도 어미가 어찌 그처럼 아들을 나 몰라라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을, 그것도 친구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아이, 길을 가는 행인이라도 붙들고 피를 토하듯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었을 이 아이를 아무도 변호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어머니마저 등을 돌리지 않았나.

어린 강칠이가 칼에 찔려 핏물이 낭자한 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을 때, 함께 일하는 아주머니가 엄마 바꿔줄 테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을 때 강칠은 분명 ‘이제 살았다’ 하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당장 달려와 자신을 구해주리라 믿었던 어머니는 피하듯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았던가. 어머니조차 포기한 녀석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곁에 편이 되어 줄 가족 하나 없이 피해자의 형이라는 형사(장항선)에게 모진 발길질을 당할 때는 하도 억장이 무너져 주먹이 다 불끈 쥐어질 정도였다.

누가 내가 안 한말을 했다고 없는 소리를 해도 분통이 터져 팔짝팔짝 뛸 마당에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고 15년 형을 살아야 했던 거다.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올 일이다. 더구나 출소 후 고향 통영으로 어머니를 찾아왔을 때 분위기를 보아하니 어머니와는 그간 대면조차 못해본 기색이 아닌가. 어머니가 면회 한번을 안 갔다는 얘기다. 해도 너무 한다 싶었다. 지나치게 쿨한 모습이 도무지 우리네 엄마 같지가 않아서.







그런데 실은 어머니가 외면했던 게 아니란다. 알고 보니 만날 술만 마시면 강칠을 개 패듯 하는 아버지가 가게 안쪽에서 술주정을 하고 있었던 터라 부러 아들의 전화를 피했던 것이다. 그리고 면회를 안 간 게 아니라 갈 적마다 속이 틀어질 대로 틀어진 강칠이가 거부했다는 거다. 맙소사, 서둘러 전화를 끊었던 게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강칠이는 15년씩이나 어머니와 반목한 채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 또한 진실을 눈치 채지 못했기에 무려 7회에 이르도록 강칠이 어머니를 삐딱하니 바라보지 않았던가. 이 어머니에게 필경 무슨 까닭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천만다행으로 강칠이는 두 번째 기적 덕에 어머니를 이해하게 됐고, 자신을 남몰래 변호해준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여인(김성령)이 바로 강칠이가 사랑하게 된 정지수(한지민)의 어머니라는 사실도, 그리고 지수가 지난 날 지수 아버지에게 처참하게 짓밟힐 때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바로 그 소녀라는 사실도. 삶에 대한 별 기대도 미련도 없었던 강칠이에게 이제는 반드시 살아야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고 어머니를 향하던 강칠의 냉소어린 시선이 거둬지자,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자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아직까지는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악의 무리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어쩌면 강칠에게 누명을 씌운 박찬걸(김준성)에게도 밝히지 못한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두 번째 기적에 따르면 누구에게나 나름 이유는 있는 법이니까.

강칠과 찬걸과 숨진 민호, 이 세 소년 사이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강칠의 아들 임정(최태준)은 왜 강칠이에게 오게 된 걸까? 국수는 왜 강칠을 살려야만 하는 걸까? 과연 그가 바라는 대로 완전한 천사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게 될까? 물음표가 가득한 드라마다. 그러나 진실을 알게 될 때까지는, 이젠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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