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갑갑해? ‘열혈사제’의 유쾌 통쾌 그 맛에 산다

[엔터미디어=정덕현] 뭐든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 갑갑한 현실에 유쾌하고 통쾌한 한 방을 주기 위해서라면 뭐든 다 끌어오겠다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 안에는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버닝썬 게이트’가 통째로 녹아들어 있다. 일찍이 이런 사태를 예상했던 거라면 놀라운 현실 인식이고, 재빨리 이 소재를 드라마 소재로 끌어왔다면 역시 남다른 순발력이다.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가 갈수록 시청자들을 빨아들이는 이유다.

<열혈사제>에서는 친절하게 캐릭터를 이용한 도표를 보여주며 이른바 ‘라이징 문’ 게이트의 전모를 설명해준다. 마약까지 유통하는 클럽 라이징 문이 있고 그 마약을 하기 위해 구담시까지 찾아오는 연예인과 재벌2세들이 있다. 그 클럽은 구담경찰서 남석구 서장(정인기)이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고 그래서 경찰의 비호를 받는다. 하지만 그 선은 강석태(김형묵) 같은 부장검사와도 맞닿아 있고 정동자(정영주) 구청장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황철범(고준)이 움직이는 조폭과도 결탁해 불법적인 일로 돈을 끌어 모으는 거대한 게이트를 만든다. 재벌2세와 검찰 같은 권력의 비호는 물론이고 그 윗선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드라마 속 라이징 문 클럽과 경찰, 조폭과의 유착 문제는 버닝썬 게이트에서도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심지어 의원과 검사까지 제거하려는 러시아 조폭들이 검거되어도 범죄인 인도조약 운운하며 자세한 사건경위도 조사하지 않고 넘겨버리는 경찰 윗선의 조치에 서승아(금새록) 같은 정의를 꿈꾸는 신출내기 형사는 “이래서 경찰을 믿을 수 있겠냐”고 항변한다.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갑한 상황을 두고 일침을 날리는 듯한 뉘앙스가 그 대사에는 들어 있다.

<열혈사제>는 재빠르게 라이징 문이라는 클럽 이야기를 끌어와 현재 벌어진 버닝썬 게이트의 현실을 비틀어 풍자하면서도, 동시에 이 드라마가 그려나가려 했던 길을 잃지 않는다. 클럽은 갖가지 불법을 통해 검은 돈을 벌어들이는 곳이다. 그리고 이렇게 모여진 검은 돈들을 세탁하기 위해 이들은 재단을 운영하려 한다. 이들이 성당이 운영해왔던 복지원을 자기들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던 이유다. 김해일(김남길) 신부가 이 모든 사건에 뛰어들게 된 촉발점이었던 이영준(정동환) 신부의 살인사건도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현실을 가져오지만 <열혈사제>는 굳이 그 현실의 리얼리티나 개연성에 집착하지 않는다. 현실이었다면 실제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갖가지 권력형 비리들이지만, 이 드라마는 김해일 같은 돈키호테 신부와 점점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구대영(김성균) 형사, 박경선(이하늬) 검사, 서승아 형사가 공조해 유쾌하고 통쾌한 사적이고 공적인 정의구현 과정을 그려낸다.

워낙 현실이 갑갑하기 때문인지 <열혈사제>의 코미디로 구현된 과장된 이야기와 캐릭터들은 시청자들을 반색하게 만든다. 공조하기로 마음을 먹은 김해일과 박경선이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코트를 날리며 걸어오는 장면이 우스우면서도 든든하고, 갑자기 영화 <옹박>의 주인공처럼 무에타이로 조폭들을 날려버리는 외국인 근로자 쏭삭(안창환)의 등장에 속이 다 시원해진다.



<열혈사제>는 그래서 강력한 사회풍자코미디이자 현실 반영 활극의 묘미를 선사한다. 매일 매일 터져 나오는 뉴스 속 갑갑한 현실 속에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이 드라마를 보는 유쾌하고 통쾌한 맛에 산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이든 끌어와 웃음으로 활극으로 풀어주겠다는 드라마의 진심이 이토록 절절하게 느껴지기는 참 오랜만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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