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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덕에 사는가”...‘해치’ 정일우 통해 던진 날카로운 메시지
기사입력 :[ 2019-04-03 10:01 ]


‘해치’가 말하는 정치, 법치, 이치

[엔터미디어=정덕현] SBS 월화드라마 <해치>가 그리고 있는 영조의 청년시절 연잉군(정일우)은 우리가 사극에서 흔히 보던 그런 왕자(혹은 왕)나 신하와는 사뭇 다르다. 김이영 작가가 예전에 썼던 <이산>이나 <동이>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이산>에서 정조는 끊임없는 암살 위협 속에서 생존해나가는 왕이었고, <동이>에서 숙종은 희빈 장씨로 인해 불어 닥치는 피바람 속에서 동이와 그 아들을 지켜내는 인물이었다. 그들은 모두 선악 구도에서 선의 역할을 자처했고, 반대세력들은 이들이 이겨내거나 제거해야할 절대 악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해치>는 다르다. 일단 연잉군이라는 인물이 그렇다. 훗날 영조가 되는 이 인물은 물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전형 리더이긴 하다. 그의 주변에 박문수(권율)나 여지(고아라), 달문(박훈) 같은 인재들이 모여드는 이유다. 하지만 연잉군 또한 어좌에 대한 욕망을 부정하지 않는다. 무수리 출신 최숙빈의 아들로 태어나, 결코 어좌를 엿볼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그는 방탕하게 시간을 보낸 인물이다. 그 누구보다 왕재를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태생으로 길이 막혀버린 그의 좌절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인 숙종(김갑수)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며 질책한다. 그 다른 선택이란 어좌에 대한 욕망을 말한다. 숙종 역시 연잉군을 왕재로 여겼다는 뜻이다.



이 천출로서 소외됐던 왕자라는 위치는 <해치>가 연잉군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포착해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 누구보다 어좌에 대한 욕망을 가진 인물이면서도 저잣거리에서 핍박받는 민초들의 사정을 잘 아는 인물. 그토록 힘겹게 살아가지만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갖은 수탈을 당하고, 심지어 죽게 되도 항변조차 하지 못하는 민초들의 심정은 어쩌면 연잉군의 ‘천출’로서 겪는 심정과 맞닿아 있었을 거라는 심증이 그것이다. 그래서 그가 양반들 앞에 나아가 “누가 누구 덕에 사는가”하는 질문을 던지는 건 민초들의 고충을 말하는 것이지만, 또한 거기에는 자신의 처지에서 우러나는 진심이 담겨있을 수 있었다.

이처럼 <해치>가 그리는 연잉군은 이미 역사의 승자이기 때문에 모든 게 선인 그런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어쩌면 왕 같은 인물은 그 자신의 노력 또한 당연히 필요하지만 시대의 공조가 만들어낸 선택의 결과라고 <해치>는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천출이었다는 그 신분이 오히려 당대의 어지러운 당파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폐되어가던 민초들의 민심을 얻게 되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소외됐던 만큼 커진 어좌에 대한 욕망은 그를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게 해주었다는 얘기다.



<해치>는 연잉군의 이런 출신의 문제가 가진 이중적인 속성을 밑거름으로 삼아, 그 욕망이 실현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사헌부 같은 감찰기관의 개혁을 중심에 세운다. 즉 노론 같은 가진 자들이 수탈하고 핍박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자행했던 그 많은 비리들이 가능했던 건 독립을 유지해야할 사헌부가 이들과 결탁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첫 회 연잉군이 과거시험장에서의 비리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등장하고, 그로 인해 박문수 같은 실력은 있지만 연줄이 없어 연거푸 낙방하게 된 인물을 알게 되는 에피소드로 시작하는 건 향후 사헌부 개혁의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한 밑그림인 셈이다.

그리고 여기에 밀풍군(정문성)이나 위병주(한상진) 같은 인물들과의 대결이 시작된다. 이들은 물론 전형적인 악역으로 그려지지만 그들 역시 그런 악당이 된 것이 저마다의 사정에 의한 것임을 드라마는 외면하지 않는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소현세자의 후손으로서 밀풍군은 어좌가 본래 자신의 것이었으나 빼앗겼다 여기는 인물이고, 위병주는 몰락한 남인의 혈통으로 당시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어 있던 당파 속에서 완전히 소외되었던 인물이다.



연잉군이 결국 행하는 정치는 그래서 사헌부 개혁이라는 법치를 먼저 세우는 일로 시작한다. 정치권력이 너무나 강해져 위법이 자행되는 시대에 이로써 죽어나가는 민초들을 위해(또 이들의 위법으로 인해 소외된 인물들을 위해) 법치를 세운다는 건 아무 것도 없던 연잉군이 새로운 지지 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가 그를 왕재로 만드는 중요한 기회요소가 된다는 것.

게다가 이러한 정치와 법치를 뛰어넘어 민초들의 지지까지 얻게 되는 건 연잉군이라는 인물이 가진 신분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이다. 노론의 실질적인 우두머리인 민진헌(이경영)은 신분질서가 ‘세상의 이치’라고 말하지만, 연잉군이 생각하는 이치는 다르다. “누가 누구 덕에 사는가”라는 질문에 그 생각이 담겨있다.

<해치>가 보기 드문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는 건, 이 작품이 연잉군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바라보는 현재적 시선의 날카로움 때문이다. 거기에는 지금 현재 우리에게도 갈급한 정치 이전에 법치, 아니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대로 굴러가는 법 정의에 대한 현실인식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그 밑바탕에는 결국 권력은 민심으로부터 나온다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세상의 이치’가 그려져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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