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편의 여행 동화, ‘트레블러’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JTBC <트레블러>는 수많은 여행 예능 사이에서 정공법을 택한 드문 경우다. 영화배우 류준열과 이제훈이 출연한다는 것만 제하면 특별한 콘셉트를 내세우거나, 편집으로 스토리라인을 만드는 예능의 작법을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 예능이라기보다 쿠바의 이국적인 아름다움, 쿠바 여행을 간접경험하게 해주는 KBS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나 EBS의 <세계테마기행>과 같은 전통적인 여행 콘텐츠에 가깝다. 소위 유명 연예인들이 출연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예능으로 꾸릴 만한 특별한 설정이 없기 때문이다.

쿠바라는 이국적인 여행 공간에서 이 둘은 각자 배낭을 짊어지고 숙소부터 알아서 찾아가며 여정을 개척한다. 바가지를 쓰기도 하고, 약속했던 사설 택시 기사가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들의 발길을 따라 함께 걷고 시선이 닿는 이국적인 풍경을 우리는 안방에서 간접 경험한다. 초저가 여행을 추구하거나 여행지 소개를 통해 대결하는 예능적 장치나, 왁자지껄한 ‘방송용 텐션’은 없다. 여행이 류준열의 주요 키워드로 알려지게 된 <꽃보다 청춘> 시리즈처럼 청춘이나 욜로라는 키워드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쿠바를 꽤 다채롭게 경험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좋은 점만 애써 조각해내지도 않는다. 오늘날 쿠바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행 초기 류준열 혼자 아바나에 머물 때, 집요한 바가지나, 흥정, 열악한 인터넷 환경 탓에 무작정 발품으로 찾아야 하는 좌충우돌 여행 에피소드가 많이 등장했다.



여행을 좀 해봤다는 류준열의 여정을 엿보는 듯한 재미는 <트레블러>의 전매특허 포인트다. 쿠바에서 숙소를 구하는 법, 이동수단을 타는 법, 도시 내에서, 혹은 도시와 도시 사이의 동선, 가봐야 할 명소, 인터넷 접속 환경과 방법, 현지에서 만난 다양한 여행자와 주민들의 모습 등 이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은 쿠바에 관심 있는 여행객들에게는 훌륭한 정보가 될 만하다.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다시 꺼내보게 해줄 자세하고 다채로운 장면이 등장한다.

지난 방송에서도 속초 산불 속보 방송 전까지 쿠바의 대표적인 여행지인 뜨리니다드를 즐기는 몇 가지 방법을 보여줬다. 워낙에 여행을 좋아하고 경험이 많은 류준열은 도착지에서 여정만 풀면 카메라만 들고 출사를 나가고, 여행 경험이 비교적 적은 이제훈은 숙소에서 머물며 일단 쉬면서 릴렉스한다. 그 다음날, 여행 에너지가 넘치고 언어에 두려움이 없는 류준열은 관광지나 어떤 목적지 순례보다는 발길 닿는 데로 걸으며 사진을 찍고,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는 여유로운 여행을 즐긴다.



반면 처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 이제훈은 혼자서 음식을 주문하고 거스름돈 받는 것조차 잊은 초보 여행가다운 면모를 보인다. 골목길 산책보다도 첫날 눈독 들인 현지 골목 마켓을 다시 찾아가 모자와 셔츠를 사는 등의 소소한 쇼핑을 즐긴다. 이처럼 언뜻언뜻 드러나는 둘의 성격과 성향을 엿보고 그에 따라 달라지는 여행의 갈래도 매력적인 볼거리다.

<트레블러>는 기본적으로 출연자의 여정을 쫓는 형식을 취한다. 카메라만 따라갈 뿐, 다른 배낭여행객들과 다른 편의나 연출 요소는 없다. 숙소부터 교통편까지 알아서 구한다. 낮과 다른 활력이 가득한 뜨리니다드의 밤거리에 이끌려 나왔다가 우연히 한국인 관광객들을 만나서 고급 정보를 얻는다든가, 한류 팬을 만나는 식이다. 전개는 실제 배낭여행처럼 자유롭게 열려 있다. 그리고 진행이나 감성적 표현은 내레이션으로 표현한다. 여정은 리얼한 예능에 가깝지만, 표현 방식은 교양국에서 제작하는 여행 콘텐츠의 형식과 전개를 따른다. 그렇다보니 이슈가 될 만한 에피소드나 볼거리 측면에서 볼 때 다소 심심한 편이다. 그럼에도 스토리텔링을 가미하지 않고 여행에 집중한다. 여행을 즐기고 있는 류준열과 이제훈의 모습을 최대한 담고, 여행이 한창 진행되면서 더욱 깊어진 류준열과 이제훈의 브로맨스와 인간미를 강점으로 미는 듯하다.



시청자들이 잔잔한 여행 예능 <트레블러>에 기대하는바 역시 <꽃보다 청춘>의 류준열과 <세계테마기행>의 호스트 사이에 있다. 쿠바를 집 안에서도 간접적으로나마 즐길 수 있는 여행 콘텐츠에 대한 기대와 함께 훈훈한 두 배우가 소박하게 다니는 여행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주는 떠나고 싶은 설렘과 힐링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제작진이 기대했던 목표나 지향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트레블러>는 여행 예능의 붐 속에서 더 자극적이거나 새로운 콘셉트로 무장해야 할 것 같은 유혹 대신, 여행 프로그램다운 품격과 설렘, 진정성으로 두른 본격 여행 콘텐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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