쏭삭부터 평택 십미호까지, ‘열혈사제’ 서민 어벤져스의 의미

[엔터미디어=정덕현] 외국인 근로자로 구박받던 쏭삭(안창환)이 갑자기 태국 왕실 경호원 출신이었다며 마치 <옹박>을 보는 듯한 무에타이 실력을 선보이더니, 이제는 주임수녀 김인경(백지원)이 이른바 ‘평택 십미호’로 불리던 ‘타짜’라는 게 밝혀진다. 그는 이제 과거 동생의 죽음으로 악연을 맺게 된 타짜 오광두(유승목)와 클럽 라이징문의 비리가 담긴 회계장부를 놓고 한 판 승부를 벌일 참이다.

이건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가 인물들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평범해 보였던 인물들이 숨겨진 능력을 보이거나 숨겨진 과거를 드러내는 방식. 그래서 이른바 ‘구담 어벤져스’는 김해일(김남길)이라는 신부로 시작해 점점 모양새를 갖춰간다. 그저 먹는 것 밝히는 인물처럼 보였던 알바생 요한(고규필)은 배가 부르면 소머즈처럼 놀라운 청력을 가진 존재로 변신해 중요한 정보를 캐내고, 평범한 신부로 알았던 한성규(전성우)는 아역배우 출신임이 밝혀지고 심지어 피도 눈물도 없는 조폭들을 눈물 흘리게 만드는 연기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고 보면 김해일이라는 인물 자체가 이런 반전 캐릭터의 시작점이었다. 우리가 흔히 보던 신부가 아니라 전직 국정원 요원으로서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그런 인물. 결국 이 드라마는 이 인물을 중심으로 하나하나 구담시에 숨겨져 있던 능력자들이 모이고, 구담시를 장악해 갖가지 비리와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다. <배트맨>의 고담시가 가진 세계관을 우리식으로 패러디한 그런 이야기.

흥미로운 건 구담시의 악당들이 정의를 지키고 민생을 돌봐야할 국회의원, 구청장, 부장검사, 경찰서장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황철범(고준) 같은 조폭을 부리며 ‘악의 카르텔’을 형성한다. 그러니 이들과 대적할 수 있는 공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도 검찰도 한 통속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들과 대적하는 구담 어벤져스가 탄생한다.



그런데 구담 어벤져스는 힘이 없어 보이던 서민들이거나 약자들이다. 구대영(김성균) 같은 인물은 형사지만 조폭들의 협박 앞에 굴복하며 살아왔고, 박경선(이하늬)도 검사지만 부패한 검찰조직 내에서 그저 제 살길만을 찾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들이 변화하는 건 김해일이라는 독특한 신부 때문이다. 최소한의 양심을 건드리는 이 신부를 통해 이들은 조금씩 제 자리와 본분을 찾아간다.

김인경 수녀가 다시는 도박판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어느 날 길에서 갑자기 비를 맞을 때 우산을 씌워진 인물을 통해 ‘비광’을 보고 ‘신의 섭리’라며 오광두와 한판을 벌이겠다 마음먹는 장면은 이 드라마가 가진 ‘한국형 판타지’의 독특한 색깔을 잘 보여준다. 구담 어벤져스가 탄생하는 그 과정은 온통 우연과 과장, 비현실이 존재하지만 바로 이 ‘신의 섭리’라는 판타지가 밑그림으로 제시됨으로써 나름의 개연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신의 섭리’란 다른 시각으로 보면 열심히 사는 서민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은 그래서 구담시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조금은 황당하게 펼쳐지는 어벤져스 캐릭터들의 향연을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인다. 그 판타지는 약하게 보이는 서민들의 힘이 실은 얼마나 큰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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