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사제’에서 만나는 한국 드라마의 특장점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드라마 <열혈사제>는 한국형 히어로물을 지상파 시장에 연착륙시켰다. 이 드라마가 대중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극본, 연출, 연기 등의 삼박자가 고루 잘 어우러진 결과지만, 핵심은 통쾌함에 있다. 할리우드를 장악한 마블이나 DC 히어로물의 세계관이 우리네 현실에 맞는 그림과 설정으로 현지화해서 나타난 콘텐츠라 볼 수 있다. 신부나 공무원 등 신분이나 직책이 ‘더티해리’나 ‘퍼니셔’ 과는 아니다. 그러나 방법론은 같다. 정의를 구현하기까지 그 복잡하고 지난하며 기나긴 인내 속에서 숱한 좌절을 겪으면서 토론하고 설득하고 고쳐 나아가는 대신, 한방에 속 시원하게 사회악을 처단한다. 그리고 주변부터 서서히 감화시킨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악이란 조폭이나 지난 정부가 만든 불량식품, 가정폭력 등의 4대악 수준이 아니다. 지난 정권과 같은 부패한 권력층이나 재벌에 맞서 싸워 정의를 구현하는 수준의 스케일이다. 철학 강의나 정치사회학 담론 차원에서는 마냥 이런 전개가 속 시원하다고 좋아할 순 없겠으나 적폐가 생각만큼 일사천리로 청산되지 않는 눅진한 현실에 지쳐가는 대중들에게는 잠시나마 갈증을 달래줄 청량음료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안방극장에 처음 찾아온 것은 아니다. OCN에서부터 시작된 마동석 콘텐츠야 말로 한국형 히어로물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열혈사제>는 어둑한 사회의 뒷골목에서 카타르시스 터지는 과격 액션이나 하류 사회를 배경으로 삼지 않는다. 느와르의 축축함이나 촘촘한 인과관계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시트콤 요소를 더한 밝고 경쾌한 코미디를 히어로물의 통쾌함에 접목했다. 그리고 이 가벼운 태도와 무거운 현실을 저글링하면서 한국형 히어로물이 우리 안방극장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리고 성공으로 올라설 수 있는 또 하나의 기둥이 공교롭게도 그간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으로 지적받던 실시간에 가까운 제작 방식이다. <열혈사제>의 경우 쪽대본으로 대표되는 특유의 작법이 특장점으로 작용된 사례다. 그간 우리네 방송 제작환경도 많이 발전하면서 점점 사전제작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오랜 관습상 여전히 많은 드라마 작가들이 극을 시작해놓고도 시청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굉장히 독특한 작법을 구사한다. 이런 작업 스타일이 그간 우리 드라마 부실의 원인이자, 노동법 준수를 할 수 없는 원흉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열혈사제>는 이런 ‘실시간 대본’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낳았다. 버닝썬 등 드라마 속으로 흘러 들어온 현실의 이슈와 극중 세계관이 맞아떨어지면서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허구의 이야기에서 동시대성을 느끼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토착왜구라든가, 라이징문, ‘라이징문은 누구겁니까?’ 등 한참 회자되는 시사용어나 이슈들이 패러디되어 등장하고, 정계와 재계와 사법기관이 결탁된 부패의 알고리즘은 현실 이슈와 순간순간 연동된다.

드라마 대본이나 소설은 그 특성상 집필과 출간·방영 사이 시차가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피드백과 현실 이슈를 반영한 따끈한 대본과 실시간 제작방식은 동시대성을 중시하는 인터넷 시대와 조우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품게 됐다. 물론, 앞서 언급한 노동 환경이나 장르적 특성, 촘촘한 인과 관계와 같은 극의 완결성과 서스펜스 등을 생각했을 때 쪽대본이 한국 드라마의 미래라고 결코 말할 수 없으나, <열혈사제>의 경우 그 덕분에 현실감이 깊어졌고 통쾌함은 배가된 것은 사실이다.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열혈사제>의 질주는 우리 안방극장에 여러 가능성을 선보였다. 높은 시청률에 대한 찬사나 김남길, 이하늬를 비롯한 주연진의 확실한 활약, 고규필, 음문석, 안창환 등 재밌는 주변부 캐릭터들의 열연 등 배우들에 대한 칭찬도 빼놓을 수 없지만 그와 함께 한국 드라마기에 가능한 제작법과 우리 사회 현실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깊어진 현실감에 주목한다. 특히 지난 수년간 신선함, 완성도, 화제성 같은 키워드와 점점 멀어진 채 간이식 수술에 중독되었던 지상파에서 일궈낸 성공인 만큼 더욱 주목할 만한 의미가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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