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사제’, 부대찌개 웨스턴의 걸작이어라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SBS 드라마 <열혈사제>는 은연중에 서부극의 플롯을 뼈대로 삼는다. 초창기 서부극처럼 열혈사제 김해일(김남길)은 구담시의 악을 물리치는 히어로 방랑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에게 카우보이모자와 권총은 없다. 대신 신부님의 사제복과 국정원에서 배운 격투기 실력이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거기에 ‘잔머리’ 능력까지 겸비했으니 멀티 히어로가 따로 없다.

하지만 <열혈사제>의 악당들은 원조 서부극처럼 구담구를 노리는 황야의 무법자들은 아니다. 그들은 이미 구담구를 갈라먹고 또 갈라먹으려는 구담구의 토착세력들이다. 구청장, 경찰서장, 검사와 깡패들이 어깨를 맞댄 이들은 거의 천하무적에 가깝다. 이들은 시스템을 장악하고 자본의 힘으로 덩치를 불려간다. 구담구의 보안관 역할을 맡은 강력팀 형사 구대영(김성균)과 서승아(금새록)는 당연히 이들 앞에 힘을 쓸 수 없다. 그들은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보안관이기 때문이다.

힘없는 보안관들과 달리 어디선가 나타난 방랑자인 김해일은 좀 다르다. 전직 국정원 출신인 그는 시스템과 권력이 얼마나 냉혹하고 비열한지 잘 안다. 그렇기에 김해일의 마인드는 사실 ‘시니컬’에 가깝다. 하지만 김해일은 시니컬하게 살기엔 인성이 너무 다혈질이다. 거기에 해일을 구해주고 그를 사제로 만들어준 이영준(정동환) 주임신부가 누명을 쓰고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 사건은 김해일의 뜨거운 가슴에 휘발유를 붓고 그를 불타오르게 만든다. 그 이후 사제 김해일은 말 그대로 ‘빡’이 돌아 결국 ‘정의구현’을 하기에 이른다.



이후 <열혈사제>는 모래사막 아닌 자본의 황금사막 구담구를 배경으로 부대찌개 웨스턴 활극의 매력을 한껏 뽐낸다. 수많은 액션 활극의 요소가 구담구 안으로 들어오고, 거기에 수많은 패러디적 요소까지 들어와 보글보글 끓는다. 이야기는 통통 튀고, 유머는 알차며, 인물들은 선인이건 악인이건 본인의 개성을 맘껏 뽐낸다. 극 중반에는 현재 대한민국을 흔드는 ‘버닝썬’ 사건을 패러디한 듯 보이는 ‘라이징문’ 클럽까지 스며든다. 맛이 없을 수가 없고 재미가 없을 수가 없는 진행인 것이다.

특히 <열혈사제>의 매력은 열혈사제 김해일이 평범한 서부극과 달리 천하무적 히어로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는 싸움도 잘하고, 잔머리도 최고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구담구 카르텔을 무너뜨리기엔 벅차다. 김해일은 종종 본인의 잔꾀에 넘어가고, 주먹만 믿고 덤비다가 왕창 깨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도 악당 카르텔은 바위처럼 단단해서 쉽게 깨질 수가 없다.



하지만 김해일에겐 콕 집어 설명하기 힘든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김해일은 그 매력으로 그의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끌어들인다. 물론 여기에는 김해일의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매력을 그대로 구현한 김남길의 연기도 한몫한다.

하여튼 김해일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구담구 카르텔과 대적할 어떤 군단을 만들어낸다. 물론 거기에는 특수팀 검사라는 권력을 지닌 박경선(이하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힘없는 주변인이다. 바위 같은 카르텔에 비해 툭 치면 깨질 계란처럼 약한 존재들인 것이다. 정의감은 넘치는데 ‘빽’은 없는 형사들, 편의점 알바생, 태국인 중국집 배달부, 사제관의 신부와 수녀. 하지만 한 알의 계란에는 사실, 한 알의 숨겨진 생이 있는 법이다.



이 약한 존재들은 김해일과 만나고 김해일과 함께하면서 무슨 X맨들인양 숨겨뒀던 비장의 기술을 뽐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쏭싹(안창환)이 무예타이의 달인으로 변신하고, 한성규 사제(전성우)는 눈물샘을 쏙 빼는 아역시절의 연기로 냉혈한인 범죄자들을 감동시킨다. 여기에 김인경 수녀(백지원)가 비광을 만난 이후 평택 십미호로 돌아가 김해일에게 가장 필요한 서류를 얻어낸다. 그리고 이들 주변인들의 연합으로 열혈사제 김해일은 구담구를 쥐고 흔드는 카르텔과 맞선다. 그러면서 황당하지만 뿌듯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열혈사제>는 최근 드라마 중 통쾌한 재미를 실시간으로 준 흔치않은 드라마다. 아마 주님도 웃길 수 있는 부대찌개 웨스턴의 걸작일 것이다. 동시에 21세기의 히어로물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도 주는 작품이다. 21세기의 히어로는 무대를 독주하는 인물이 아니다. 타인의 마음을 열고, 타인의 숨은 힘을 끌어내며, 그 타인과 연합하는 매력을 갖춘 인물인 것이다. 그렇기에 드라마가 막을 내린 이후에도 ‘열혈사제’ 김해일은 꽤 들여다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형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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