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ermedia 주요뉴스

‘미성년’, 젠더 설화사건 겪었던 김윤석의 뜨거운 반성문
기사입력 :[ 2019-04-18 14:15 ]


‘미성년’ 올해의 감독 데뷔작으로 꼽기에 손색없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미성년>은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이라는 점으로 화제를 모았다. 수년전 비공개 연극발표회에서 동명의 공연을 인상 깊게 본 김윤석은 작가 이보람과 공동 작업을 통해 시나리오로 각색하고, 직접 연출을 맡았다. 김윤석은 극단시절에 연극 연출을 해 본 경험이 있으며, 그가 출연한 영화 <남쪽으로 튀어>의 극본도 그가 각색한 것이다. 촬영장에서도 김윤석은 감독의 연출에 자주 개입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그가 감독으로 데뷔한 점은 과히 놀랍지 않다.

진짜로 놀라운 것은 따로 있다. 일단 데뷔작임에도 굉장히 뛰어난 만듦새를 보여주기 때문에 입이 떡 벌어진다. 배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뽑아낸 연기의 향연도 놀랍거니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출은 뛰어난 경지를 보여준다. 거기에 영화를 곱씹을수록 성인남자의 존재를 병풍으로 만들고 소녀들을 주체로 내세우는 진전된 관점이 놀라움을 자아낸다. 영화는 기대와 달리 지극히 페미니즘적인 관점을 갖는데, 2016년에 관객과의 대화에서 여배우 무릎 담요에 대한 실언으로 성희롱 논란에 휩싸였던 김윤석이 정중한 사과와 더불어 페미니즘 공부를 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 성인남자라는 우스꽝스런 존재

<미쓰 홍당무>나 <비밀은 없다>가 색달랐던 점은 성인남자가 사건의 중심에 있지만, 어느 순간 박아놓은 말뚝이 될 뿐, 진정한 사건과 재미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데에 있었다. 하지만 이들 영화는 마이너한 감성을 지니고 있거나,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약간의 독해력이 필요한 작품들이어서 대중들의 공감을 자아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미성년>은 그러한 괴팍함이나 난해함이 1도 없다. 누구나 보면 모든 상황이나 주제가 술술 이해가 간다. 희한한 캐릭터가 등장하거나 살인 등의 독한 설정이 전혀 없음에도, 개연성 있는 인물과 상황만으로도 주제의식을 확실하게 전달한다. 요컨대 불륜이라는 닳고 닳은 소재로부터 출발하지만, 관점의 전환을 통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전달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영화 <미성년>의 또 다른 미덕은 속도감과 짜임새가 뛰어나다는 점이다. 첫 장면부터 주리(김혜준)가 아빠를 미행하여 아빠와 미희(김소진)의 관계를 엿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느 영화였으면 도입부에 주리 가정의 평온한 일상을 한 장면정도 넣으면서, ‘지옥이 되기 전’ 중산층 가정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성년>은 일체의 씬 낭비가 없다. 곧바로 주리와 윤아(박세진)가 학교 옥상에서 만나 미희의 임신 사실을 전하고, 얼떨결에 주리 엄마인 영주(염정아)에게까지 윤아가 폭로해버리는 것까지 일사천리로 나간다.



주리와 영주가 서로 마음을 다칠까봐 눈치를 보는 반면, 윤아는 미희와 계속 낙태를 두고 대립하면서 다툰다. 상반된 모녀관계를 보여주는 것도 잠시, 영주가 미희를 찾아간 최초의 접촉에서 조산을 하게 됨으로써 사태는 급물살을 탄다. 두 사람의 불륜이 두 가족 모두에게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버렸고, 아이는 세상에 나와 버렸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성인 남성과 소녀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영화의 주제를 드러낸다. 소식을 듣고 병원에 온 대원(김윤석)은 주리를 발견하고 무작정 도망친다. 당황해서 뒷걸음질 치며 숨는 모습을 어찌나 비굴하게 그렸던지 헛웃음이 절로 난다. 하이라이트는 “아빠, 아빠” 하는 소리에 도망치다 주저앉아서 “너 누구니?”라고 물을 때다. 주리의 목소리인줄 알았다가 윤아를 보고 깜짝 놀라는 꼴이라니.



그는 잠긴 안방문 밖에서 무릎을 꿇고 너절한 변명을 늘어놓다가, 바깥에 있는 영주를 보고 다시 1절부터 중언부언 한다. (영주가 안방 문을 잠가 놓은 것은 그가 재산을 들고 집을 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아마도 대원은 영주가 충격으로 몸져누워 있다가 그의 사과를 받고 일어날 것을 기대한 모양이지만, 영주는 남편 이름으로 되어 있는 재산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영주에게 대원은 이미 용서나 사랑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대원은 ‘아는 동생이 하는 펜션’에 여행을 가자는 같잖은 소리를 하다가, 저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도피여행을 갔다가 거지꼴이 되어 온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중년 여자와 청소년들이라는 것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지점이다.

대원만 같잖은 것이 아니다. 윤아의 친부는 더욱 가관이다. 윤아의 폰에 ‘박서방’ 이라고 입력되어 있는 친부는 강원랜드에서 도박을 한다. 빚만 남긴 채 이혼했고 차도 팔아버린 신세지만, 아직도 자신에게 운이 있다고 믿으며 강원랜드 찜질방에서 먹고 자는 ‘개털’이다. 돈도 없고, 책임감도 없으며, 최소한의 염치도 없다. 오랜만에 급한 일로 찾아온 미성년의 딸에게 “카드나 만들고 가라”고 말할 정도로.



교사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접점이 없는” 주리와 윤아가 육탄전을 벌인 후, 교사는 우등생인 주리를 두둔하며 윤아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뒷다마 까지 마라. 먼저 때린 건 나다.” 라고 말하는 주리 앞에서 교사는 머쓱해진다. 그런 교사가 시험을 ‘째고’ 나가는 주리와 윤아에게 “너희 그러다 큰일 난다”라고 경고해봤자, 우습게 들릴 수밖에 없다.

윤아가 일하는 편의점의 취객도 전형적이다. 공연히 시비를 걸다가 CCTV와 경찰을 언급하니까 꼬리를 내린다. 윤아가 던져주는 콘돔을 집어가는 ‘개저씨’라니, 깨알 같은 연출이다. 그나마 어른 같은 성인남자는 상조회사 직원뿐이다. 그는 죽음이나 애도에 대한 성찰을 지닌 사람이다.



◆ 소녀들과 엄마들

주리와 윤아는 매우 개성이 다르지만, 인간으로서 책임과 윤리를 안다. 주리는 엄마를 보호하려 애쓰고, 윤아는 아기를 책임지기 위해 애쓴다. 주리는 엄마에게 상처를 준 윤아의 머리채를 잡을 정도로 미웠지만, 아이를 보러 병원에 오가며 윤아의 곁에 있어준다. 주리가 아빠와 미희의 커플 사진을 윤아에게 주고, 아이의 마지막을 윤아와 함께 해주는 것은 굉장한 의리를 보여주는 행동이다.

영화에서 윤아는 가장 윤리적인 인물이다. 그는 미희에게 아이를 낙태하라고 종용했지만, 막상 아이가 태어나자 자신이 아이를 기르겠다고 결심한다. 무책임한 대원과 미희보다 자신이 훨씬 잘 키울 수 있다면서. 그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털어 영주에게 병원비를 갚는다. 영주의 오지랖 넓은 걱정은 사양하지만, 그에게 상처준 것에 대해서는 사과한다. 무책임한 미희를 질타했지만, 뒤늦게 산모수첩을 보고 어느 정도 미희를 이해한다. 미희에게도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있었지만, 장애가 있음을 알고 일치감치 포기하는 심정이 되었다는 것을.



미희가 다소 철이 없는 인물인 것은 맞다. “여자로서 불행했다.”고 스스로 말하는 그는 대원을 폰에 ‘마지막 사랑’이라고 입력해놓았다. 미희는 찾아온 영주를 몰라보고 위로를 건넬 만큼 남자에게 상처받는 여자들의 삶을 잘 안다. 그럼에도 미희는 대원이 “그런 사람 아니”라고 믿었고, “든든한 아들”을 낳아 행복해지길 원했다. 하지만 미희는 이후 벌어진 사태를 빠르게 받아들인다. 대원은 오지 않았고, 아이는 잘못되었다. 최악의 상황이지만, 그는 자책하기보다 털고 일어나길 택한다. 정을 주지 않기 위해 아이를 아예 보지 않았다. 빠르게 마음을 정리한 뒤 정돈된 모습으로 영주를 맞은 미희는 구구한 변명 없이 “바람 한 번 피워봐. 그게 맘대로 잘되나.” 라고 말한다. 미희는 대원을 믿을 만큼 어리석긴 했지만, 혓바닥이 긴 대원처럼 비겁하지는 않다.

영주는 자존감이 추락하는 상황에서 인간으로서의 윤리와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이다. 그는 딸에게 흔들리지 않는 엄마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신발도 없이 도시락을 챙기고, 주리가 윤아와 싸운 것을 보고 “너희끼리 왜 싸우냐”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는 미희와 만난 순간 감정을 드러냈다가 사태가 급변하자,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의 고백성사에는 그가 느끼는 죄책감과 당혹감과 억울함 등이 솔직하게 담겨있다. 그는 윤아에게 어른의 입장에서 조언하려 했다가, 어른스러운 윤아의 태도를 보고 그의 입장을 존중한다. 미희를 찾아가서도 그는 자신의 모순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 누가 성년인가

<미성년>은 성년과 미성년에 대한 굉장한 아이러니를 품은 작품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성숙한 의사결정자로 존중받는 성인남자가 얼마나 한심하고 덜 자란 인품을 지니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반대편에 놓인 소녀들이 훨씬 성숙한 존재일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또한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남편 혹은 아버지를 갖기 위한 대립과 경쟁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여성들이 오히려 연민과 우정으로 연대의 감정을 나누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관계의 역전을 제시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다소 엽기적이라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첫 만남의 키스장면과 함께 동성애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도 있다. 하지만 그 장면이 그리 도드라져보이지는 않는다.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감정의 격랑을 겪으며 맺게 된 내밀한 혈맹관계를 아로새기는 길이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가여운 혈육을 존재론적으로 애도하기 위한 뜨거운 의식으로 충분히 이해되기 때문이다.



<미성년>은 그동안 마초 남성을 멋들어지게 연기해 왔던 김윤석이 성인남자로서의 자의식을 내려놓고 젠더적 자각과 자성을 담아 제출한 반성문 같은 영화이다. 2016년에 젠더 설화사건을 겪었던 김윤석이 사과와 공부를 통해 엄청난 발전을 이룬 점은 2017년에 젠더 설화사건을 겪었지만 사과와 반성 없이 여성들과 설전을 벌였던 유아인의 행보와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당시 유아인은 비대한 자의식을 뽐내며 페미니스트를 자처하였지만, 이후 페미니스트에 걸맞은 어떠한 행보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김윤석은 여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통렬한 반성을 담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증명해 보였다. 영화 속 인물들도 그러하듯이, 비슷한 사건을 겪어도 누구는 성숙을 이루고, 누군가는 미성년으로 남는다. 김윤석 감독의 <미성년>은 만듦새로 보나 주제의식으로 보나, 콘텍스트적인 맥락으로 보나, 올해의 감독 데뷔작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영화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미성년>스틸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뒤로가기 인쇄하기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