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원, 이런 ‘신비로운’ 여주인공은 난생 처음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KBS2 <브레인>에서 이강훈(신하균)이 옷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오열하는 모습은 올해의 드라마 중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 장안의 화제가 된, 마치 실성이라도 한 듯 낙망한 표정으로 어머니와의 추억을 읊조리던 독백 신보다 나는 그가 등으로 울던 그 순간이 훨씬 더 슬펐다. 나 떠나게 될 때 억지로 잡지 말라며, 그냥 가볍게 훨훨 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아들을 위해 장롱 가득 와이셔츠를 다려 놓으셨던 것.

지난 20년간 어머니를 오해하고 야멸치게 대해왔던 그였던지라 더더욱 통한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어머니 수술대 앞에서 차차 붉게 물들어가던 그의 눈, 그리고 바들바들 떨리던 그의 손을 잊을 수가 없다. 자존심을 버린 채 “또 죽일 것입니까? 교수님이 죽인 사람의 아내까지도요?”라고 애원한 덕에 숙적 김상철(정진영)에게 수술을 맡길 수 있었지만 결국 어머니는 허무하게도 세상을 떠나시지 않았나.

게다가 엎친 데 덮친다고 김상철의 외면으로 불법 투약의 책임을 떠안고 연구소를 떠나게 된 강훈. 잠시나마 인간미를 보여줬던 그는 이제 또 다시 속물근성 가득한 냉혈인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그러나 어머니는 그의 곁을 떠났지만 그에겐 윤지혜(최정원)가 남아있지 않던가. 강훈이 감정을 조금이라도 내보인 상대는 세상 천지에 어머니와 그녀뿐이었으니까.

지혜가 달려와 강훈을 붙잡고 ‘캐고 따지고 뒤집어엎기 좋아하는 사람이 왜 한 마디 변명도 없이 떠나는 것이냐’ 물었을 때 강훈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오프 언제야? 병원 앞 육교 근처 올리브 알지? 커피숍, 토요일 낮 12시. 거기서 봐. 밥이나 사려고. 그동안 어머니 간호하느라고 수고했잖아.” 이를테면 데이트 신청인 셈, 지혜는 세상이라도 다 얻은 양 팔짝팔짝 뛰며 기뻐한다. 무심한 강훈이 혹여 잊어버릴까봐 펜을 꺼내 강훈의 손등에 ‘12시 올리브’라고 적어두기까지 하면서.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면서도 왜 그리 안쓰러운 마음이 들던지.










사실 윤지혜는 이강훈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캐릭터다. 조언하고 변호하고 편들어주고, 오매불망 해바라기나 하고, 진료 중에도 수술을 앞두고도 온통 이강훈 생각뿐이지 않나. 데이트를 앞두고서야 그녀는 처음으로 다른 모습을 시청자 앞에 드러냈다. 발로 병원 곳곳을 뛰어 다녀야하는 레지던트답게 늘 머리를 질끈 묶고 흰 가운이나 푸른 수술복만 입어 왔던 그녀가 옷을 고르고, 머리를 풀어 내리고, 거울을 보며 웃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마치 딸아이의 첫 데이트를 지켜보는 것처럼 내 가슴이 다 두근거렸다. 그러나 빨간 스커트에 모처럼 하이힐까지 신은 그녀가 우리의 기대대로 강훈을 만나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강훈 선생에게는 마침 중차대한 다른 볼일이 생겼으니까.

지혜만이 아니라 연적이라 할 수 있는 장유진(김수현)도 처지는 마찬가지다. 대학병원에 돌아가려면 나를 이용하라는 유진,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화송그룹 회장을 연결해달라고 요구하는 강훈, 그녀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강훈을 보조하기 위해 존재하는 인물이니까. 그러나 숨겨둔 어린 딸, 심지어 형부까지 등장하는 유진과 달리 윤지혜의 개인사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이렇게 신비로운(?) 여주인공은 난생 처음이다. 단 한차례지만 열렬한 키스도 나누었고, 자신의 뇌사진을 보이며 나름 프러포즈도 했으니 이젠 진도가 나갈 법도 하건만 어찌 이리 지지부진한지. 폭풍 키스 장면과 서로 툭탁거리는 뇌사진 장면만 없었다면 여느 드라마에나 항상 감초처럼 등장하는 친구 역할이라 해도 믿겠다.

주인공 이강훈의 매력이 부각되면 될수록 여주인공의 존재감이 점점 아쉬워진다. 남은 건 단 6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직 태산 같은데 과연 그녀는 자신의 또 다른 면면을 드러낼 수 있을까? 악조건 속에서도 고군분투 중인 연기자 최정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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