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밴드’, 정점에 도달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향한 기대와 우려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한국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기세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사람마다 ‘가장 몰입하며 본 오디션 프로그램’은 제각각이겠지만, 그 기폭제가 되었던 순간이 Mnet <슈퍼스타K2>에서 장재인과 김지수가 선보인 ‘신데렐라’ 무대였다는 건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각자의 색깔이 강한 두 참가자가 제 색깔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와의 협연으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낸 그 마법 같은 순간은, <슈퍼스타K2>의 초반 버즈량을 견인했을 뿐 아니라 그 해 국내 통기타 판매량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는 산업적인 결과까지 낳았다. SBS [K팝스타4‘의 정승환·박윤하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무대나 Mnet <고등래퍼2> 김하온·이병재의 ‘바코드’ 무대와 같은 순간들은, 내심 장재인·김지수의 ‘신데렐라’를 재현하고자 싶었던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야심이 꽃을 피운 순간들이었으리라.

JTBC <슈퍼밴드>는 기획 의도에서부터 그 마법을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이미 전작인 <팬텀싱어>를 통해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남성 보컬리스트들이 중창단을 결성하는 과정을 그렸던 제작진은, <슈퍼밴드>에서는 각기 다른 악기와 장르를 추구하던 이들이 모여 밴드를 결성하는 과정을 담아내기 위해 카메라를 바짝 가져다 댄다.

주요 참가자들이 어느 정도 두각을 드러내고 첫 미션을 앞둔 시점에서, [TV삼분지계]가 <슈퍼밴드>를 들여다보았다. 정석희 평론가는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모두의 성공’을 추구하는 쇼라 평했고, 김선영 평론가 역시 전혀 다른 장르를 추구하는 참가자들이 ‘경쟁’이 아닌 ‘매칭’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평했다. 이승한 평론가는 이와 같은 호평에 공감하면서도 참가자들이 남성으로 제한된 것에 조심스레 의문을 제기한다.



◆ 사람을 얻어가는 오디션, 모두의 성공 아닐까

방송은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 JTBC <슈퍼밴드>는 모든 이들이 감정을 공유하게 만들었다. 어느새 예능의 필요악이 된 갈등 설정 따위가 없다 보니 그냥 음악을 즐기면 된다. 오디션 프로그램 회의론으로 마음의 빗장을 내린 내가 바이올린 선율이며 드럼 박자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게 될 줄이야. 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음악의 세계가 작다 못해 먼지 수준에 불과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또 다른 세상의 문이 열린 느낌이랄까? 방구석 아티스트부터 거리의 음악가, 자연에서 음악을 배운 싱어송라이터까지, 재능 있고 개성 넘치는 음악가들이 어쩜 그리도 많은지.

우리나라 음악의 미래는 진정 밝다. 첫 회에는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눈에 띄는 참가자들을 전진 배치했으려니 했다. 그런데 2회에도 여전히 실력파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다음 회는 또 어떤 음악을 듣게 될지 궁금할 밖에. 심사위원들도 흥미진진해하는 눈치다.

참가자들은 대부분이 외로워서, 같이 만들어가는 것에 대한 갈증 때문에 지원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를 보는 시선들이다. 프로듀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참가자가 자신의 음악적 이상형을 찾아 다양한 형태의 밴드를 결성할 예정이라는데,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전개인지라 앞으로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짐작이 아니 된다. 오디션 프로그램 성격 상 합격과 탈락 절차가 있을 테고, 그 점은 매우 아쉽지만 사람과 배움을 얻어 가고 그걸 토대로 새로운 음악이 시작된다는 점에서는 모두의 성공이 아니겠나.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 JTBC 오디션 프로그램의 정점

<팬텀싱어>는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획기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참가자들의 뛰어난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뮤지션들이 직접 팀을 구성하는 형식의 독특함에서 오는 힘이 굉장했다. K팝 싱어, 성악가, 뮤지컬 싱어 등 이미 한 분야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뮤지션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장르를 초월해 음악적 지향점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과 팀을 만들어 나가면서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 나갔다. 오디션 프로그램 스토리텔링의 핵심이 성장에 있다면, <팬텀싱어>는 그 성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한경쟁과 서바이벌이 아니라 조화와 교감이라는 점을 일깨워준 프로그램이다.



같은 제작진이 만든 <슈퍼밴드>는 <팬텀싱어>의 이러한 장점을 더욱 진화 시켰다. 하모니를 맞춰야 하는 대상은 보컬 장르보다 더욱 다양한 장르의 악기 연주자들이다. <팬텀싱어>는 적어도 일 볼로 같은 세계적인 크로스오버 보컬 그룹이라는 롤 모델과 ‘4인조 중창단’이라는 최종 그림이 있었지만, <슈퍼밴드>는 아직 숫자도, 포지션 배치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조화와 합의 결과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팀과 음악이 탄생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에게도 기존의 음악적 세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엄청난 도전이 된다.

<슈퍼밴드>의 이러한 미덕을 잘 보여준 결정적 한 장면을 꼽으라면 2회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디폴의 연주 장면을 들 수 있다. “조이스틱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신세계”를 보여준 디폴의 퍼포먼스는 다른 참가자들과 프로듀서들에게도 신선한 자극과 영감을 주었다. 개별 경연이었다면 단순히 이색적이고 신기하다는 차원에 그쳤을 수도 있었을 연주가, 이 프로그램에서는 다른 장르와 매칭한다면 어떤 음악이 나올까에 대한 기대 요소가 된다. 오디션 프로그램 마니아들에게도 기존의 틀을 깨는 새로운 경험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슈퍼밴드>는 <팬덤싱어>가 열었던 오디션 프로그램의 새 지평을 더욱 확장시킨 프로그램이라 할 만하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 엄청난 가능성의 바다를 항해하다. ‘여자’라는 가능성만 빼고.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초반엔 훈훈한 분위기로 시작된다. 예선 단계에서부터 “반드시 우승할 것”이라거나 “쟤는 이겨야 한다” 같은 마음을 품고 오는 참가자들은 드물고, 대체로 자신의 실력이나 색깔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더 무게를 두기 마련이니까. <슈퍼밴드>의 대기실은 그 분위기가 보다 더 각별하다. 디폴처럼 혼자서 음악하는 외로움을 호소했던 참가자나, 케빈 오처럼 이미 다른 오디션에서 우승을 거뒀음에도 동지가 필요하다는 마음에 다시 오디션 무대에 오른 참가자, 퍼커션에 대한 세간의 편견과 생소한 인상을 깨고 더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펼치고 싶은 정솔 등이 추구하는 방향은 ‘우승’이라기보다는 음악적 동반자를 찾는 여정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은 같은 제작진의 전작인 <팬텀싱어>의 유산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대중적인 기반이 상대적으로 넓지 않은 크로스오버 장르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팬텀싱어>는 장르 자체의 소비층을 넓히고 동시에 같은 필드에서 활동하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서로 교류하며 협업하며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슈퍼밴드>에 들어서면 그 장점은 더더욱 극대화된다. 일렉트로니카부터 실내악 첼로, 프리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추구하던 이들이 서로의 무대를 보며 ‘저 사람과 협연하면 재미있고 새로운 게 나오겠다’는 눈빛을 번뜩이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도 덩달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음악적 지평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다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은, 이 엄청난 음악적 여정에 참가할 이들이 왜 전원 남성으로 한정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남성’ 사중창단을 만든다는 목적이 뚜렷했던 <팬텀싱어>나, 상대적으로 씬에서 조명을 덜 받던 여성 래퍼들을 모아 그들이 주목받을 수 있는 경연의 드라마를 쓴 Mnet <언프리티 랩스타> 시리즈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다양한 색깔을 지닌 아티스트들이 협연을 통해서 새로 팀을 만들고 시너지 효과를 얻는 ‘밴드’를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굳이 성별에 제한을 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꼭 정치적 공정함이나 성비의 문제뿐 아니라 쇼의 가능성 면에서도 남는 장사는 아니지 싶다. 성별에 제한을 두는 순간 더 다양한 조합으로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는 여지가 반감되지 않겠는가?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영상·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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