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의 ‘전국고민자랑’, 이 배틀 시스템 괜찮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아빠가 먹는 게 좀 아까웠나 보죠?” KBS 예능 프로그램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역대급 무책임한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자 패널들은 물론이고 방청객들도 인상을 찌푸렸다. 이 아버지는 이혼 후 두 딸을 기초생활수급자인 어머니에게 맡긴 후 단 한 번도 지원을 해준 적이 없었다. 착한 첫째 딸은 고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대학진학도 포기하고 취직을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월급날만 되면 지인까지 데려와 밥을 사달라고 했고, 심지어 성년이 되는 날 자신이 쓸 수 있는 신용카드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본인은 신용불량자라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다며.

하지만 자신의 무책임은 아랑곳없이 “먹는 게 아까웠냐”는 식으로 욱하며 말하는 아버지에게 이영자는 “너무 욱하시는 것 같다”며 “그게 아닌 거 아시잖아요?”라고 되물었고, 딸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트렸다. 그런데 이 아버지의 문제는 무책임만이 아니라 그게 무슨 잘못이냐는 ‘뻔뻔한 태도’에 있었다. “신용카드야 딸이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거나, 오히려 “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모습이 그랬다.



답답한 패널들은 일제히 그 아버지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었다. 유재환은 법적으로 남의 명의를 도용해서 신용카드를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말했고, 이영자는 재차 딸의 입장을 들여다보라고 조언했다. 심지어 유재환은 아버지라고 해서 그저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며 그만한 걸 해줘야 그런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고, 유희승은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그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닮았다며, “진심으로 사랑을 주지 않으면 아버지는 딸에게 신용불량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너무 뻔뻔하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서 과연 저건 진짜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타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또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한 말을 끊임없이 내뱉는 상황은 진짜라면 이런 예능 프로그램에 나올 일이 아니라 정신과 심리상담이 필요할 정도였다. 물론 그런 일을 지금껏 계속 당해온 딸들 역시 그 만만찮은 상처를 치료받아야 할 상황.



패널들이 일제히 분통을 터트리고, 방청객들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그 상황을 어떻게 잘 인지조차 하지 못하며 그렇게 버젓이 뒷목 잡는 이야기만 꺼내놓을 수 있었을까. 집안에서야 그렇게 지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이야기가 무슨 자랑이라고 이렇게 방송까지 나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야기하고 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전국고민자랑’이라는 부제가 붙은 <안녕하세요>는 때때로 그 고민이 과연 자랑할 일일까 싶은 심각한 사연인 경우가 있다. 저 정도면 치료를 받아야지 ‘고민 자랑’을 할 때가 아닌 상황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고민 자랑’을 해서 우승을 하면 상금을 받는 이런 경쟁적 구조는 과연 괜찮은 걸까. 소통을 통한 문제해결이 프로그램이 하려는 진정한 목적이지만, 그 경쟁적 구조 속에서 고민은 때론 과잉이거나 과장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할 지점이다. 이 날 결국 우승은 이 무책임 아버지에게 돌아갔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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