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보통 사람 이야기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 예능]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어느 날, 용산으로 나선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그 곳에서 유재석과 조세호는 누굴 만나고 무엇을 이야기했을까. ‘라 비 앙 로즈(장밋빛 인생)’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슬쩍 스케치해서 보여주는 이 날 이 곳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만난 사람들의 면면은 훈훈함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거기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거나 지나쳤을 식당 아주머니도 있고 건강원 아주머니, 철도원, 방앗간 사장님 등의 모습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담겨 스쳐간다. 아마도 매일 출퇴근하며 마주쳤을 그 분들은 저마다 그 곳에서 자신들만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었을 게다.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용산이라는 특유의 공간이 주는 느낌 때문일까. 용산에 있는 한글박물관에서 유재석과 조세호가 만난 정기훈씨부터 이 날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역사전공자로서 이 곳에서 청년 멘토로 일한다는 정기훈씨는 “역사란 뭐라 생각하시냐”는 질문에 “역사는 한 공간 안에서의 시간의 축적”이라는 의미심장한 답을 남긴다. 그런데 그 답변은 마치 이 날 이 프로그램이 찾아간 용산의 오래된 골목길에서 만날 분들에 대한 복선 같았다.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축적하며 살아오신 그 분들.



용산은 재건축이 이뤄지며 거대한 랜드마크가 들어섰지만, 그 뒤편에는 마치 시간을 뒤로 되돌린 듯한 개발이 되지 않은 옛 거리가 남아있다. 유재석과 조세호는 고층 건물들 아래 여전히 자리한 그 골목을 걸어 나간다. 랜드마크는 시간을 밀어내고 미래를 쌓아올렸지만, 그 골목에는 여전히 시간과 거기 축적된 역사들이 옛 모습 그대로 반가운 얼굴을 내민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다보면 닮아가기 마련이라던가. 비 오는 날이라 손님이 뜸한 감자탕집 사장님 부부는 얼굴부터가 닮았다. 집안일에는 도움이 안되지만 집 바깥 일 봉사 같은 데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아내 앞에서 반은 겸연쩍고 반은 미안한 남편은 시종일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웃으며 연중무휴 가게를 지키느라 해외여행 한 번 못 가봤다는 아내는 남편이 자신은 몇 번 갔었다는 말을 금시초문이라는 듯 들으면서도 연실 웃음을 지어 보이신다. 어차피 자신은 식당을 비울 수 없다며 웃는 그 모습에서 그간 이 분이 살아오신 삶의 무게 같은 게 느껴진다. 그런 아내가 못내 안 쓰러운지 퀴즈 대결에서 돈을 벌면 아내 여행자금으로 주겠다 말씀하시는 남편에게서는 잘 드러내지 않았을 아내 사랑이 느껴진다.



한쪽에 거대한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어 개발이 되지 않는 곳은 그 그림자에 가려지고 있는 이 골목은 감자탕집 사장님 말씀대로 “장사를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장님은 동네가 활성화되어 다 같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며 “더불어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사장님은 “사람도 정서가 없어지고 옛날 그런 게 없어지니까 어딘가 한 군데는 예스러운 게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야기 배경으로 슬쩍 깔린 영상은 지금도 이런 곳이 남아있을까 싶을 철길과 건널목 풍경이다. 워낙 예스러운 거리라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했던 용산 백빈 건널목의 광경.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과 아이유가 퇴근길에 건너다녔던 그 건널목이다. 지친 하루의 발걸음이 집으로 향하는 시간, 땡땡 소리를 내며 기차가 지날 동안 내려져 있는 건널목 차단기가 잠시 동안이나마 모두를 멈춰 세우며 쉬어가라 말하는 듯 했던 그 공간이다.



길을 가다 우연히 들르게 된 자전거 가게 사장님은 속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장님은 자동차여행은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게 많고 도보여행은 진행 속도가 너무 느려서 세계일주를 하려면 10년에서 15년이 걸릴 거라고 했다. 반면 자전거로 하면 3년이면 세계일주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느리지만 그렇다고 아주 느리지도 않은” 그 자전거의 속도가 좋다고 했다. 그 이야기에서 문득 삶의 속도를 떠올려본다. 우리는 어떤 속도로 달려가고 있을까. “개발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감자탕집 사장님의 말씀이 다시금 들려오는 듯 하다.

슬쩍 보여줬던 백빈 건널목을 찾아온 두 사람은 드라마에 나왔던 장면을 떠올리며 그 ‘땡땡거리’라 불리는 곳에서 상근하시는 철도원 아저씨에게 인사한다. 2~3분마다 기차가 지나간다는 그 곳은 아마도 살기 그리 좋은 곳만은 아니었을 게다. 하지만 유재석이 말한 것처럼 이런 곳이 이제는 “점점 귀한 곳”이 되어간다. 맛난 닭갈비에 막국수 그리고 밥까지 볶아 든든히 배를 치운 유재석과 조세호는 다시 길을 나서고 그 곳에서 39년째 방앗간을 한다는 아저씨와 드라마 같은 그 삶을 듣는다.



10남매가 사는 시골집에서 농사짓는 게 힘들어 어린 나이에 무작정 집을 나와 상경했다는 아저씨는 어느 식당에 갔던 게 인연이 되어 50년 넘게 방앗간 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홀로 상경해 느꼈을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그 어린 소년을 식당 주인이 방앗간에 소개했고, 그곳에서 13년 동안 든든히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행복해서 일을 배우게 됐다는 사장님은 그 후 독립해서는 부러울 게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새벽 3시 반이면 나와 일을 한다는 사장님이 그 50년 넘게 부대끼며 살아왔을 방앗간에서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어느 길거리라는 공간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지만,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보여준다. 그 시간은 작아보여도 위대한 저마다의 역사들이다. 때론 공간들이 밀려나고 사라져도 그 사람들이 기억에 담고 있는 시간들은 여전히 남는다. 유재석과 조세호라는 유쾌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느껴지는 어떤 훈훈한 정서는 바로 그 곳에 사는 분들이 그 삶의 이야기로 전하는 온기 때문이다. 퀴즈가 전면에 세워져 있고 유재석과 조세호 같은 베테랑 예능인들이 나서고 있지만 진짜 주인공은 바로 그 분들이다. 그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삶의 역사만큼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