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풍’, 적시에 찾아온 보물 같은 드라마인 이유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지금까지 왜 이런 드라마가 없었을까. MBC 월화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근로감독관을 주인공으로 삼은 코믹 히어로물이다. 노동문제를 위주로 한 사회고발이 이루어지고, 정의로운 주인공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악당들을 혼내주는 과정이 통쾌하게 그려진다. 선악의 구도나 인물과 사건의 배치만 놓고 보면 대단히 익숙하다. 하지만 드라마의 내용은 매우 신선하다. 노동문제가 TV드라마에서 다루어진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임금체불, 야근, 성희롱 등은 알바부터 정규직까지 누구나 겪을 수 있고 다른 어떤 사안보다 피부에 직접 와 닿는 문제인데 어째서 지금까지 다뤄진 적이 없었을까. 그것은 노동문제가 마치 특별히 과격하거나 불우한 처지의 사람들이나 겪는 예외적인 문제인양 백안시해온 반노동적 정서가 한몫했을 것이다.

김반디 작가는 전작 <앵그리 맘>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문제에 대한 고발을 깔고, 독특한 전사와 개성을 지닌 주인공을 내세워 호쾌한 문제해결을 그려나간다. 그런데 한번도 다뤄진 적 없는 노동문제를 드라마로 풀어나가는 것이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당장 근로감독관이라는 생소한 직함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고,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일부터 쉽지 않다. 또한 주인공이 공무원인 만큼, 판타지와 현실의 적정한 수위를 맞추는 것도 고민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성실한 취재와 고증을 바탕으로 인물과 사건을 생생하게 그려 넣었으며, 액션을 포함한 연출의 수위도 리얼리티를 해치지 않는 적정선을 지킨다.



◆ ‘공무원-히어로’ 라는 특이한 존재

드라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철밥통인 공무원이 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공무원이 되었다는 조진갑(김동욱)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그가 특별한 뜻이 있어 근로감독관이 된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첫 주 만에 그가 평범함을 벗고 개심하는 모습과 그에게 범상치 않은 전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는 유도선수 출신의 체육교사였으나, 학교폭력 사건에서 권력에 맞서다 파면된다. 이후 무수한 낙방 끝에 9급 공무원에 합격한 그는 밥그릇이나 보존하며 살려했지만, 완전히 떨치지 못한 정의감과 과거의 인연들과 만나면서 변모한다.

조진갑은 “억울한 내 편에서 싸워줄 어른이 필요했다”는 청소년 노동자와 “아버지가 부끄럽다.”는 어린 딸과 과거 지켜주지 못했던 제자 김선우가 또다시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고, ‘공무원-히어로’ 가 되어 출격한다. 그는 히어로지만, 특별한 능력이나 착장은 없다. 장풍은 별명일 뿐이고, 몸싸움에 밀리지 않는 다부진 체력과 목에 걸린 공무원증이 전부이다.



그는 공무원답게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세부적인 일처리는 불법 흥신소와 공조한다. 드라마는 조진갑의 과거 제자였던 천덕구(김경남)과 그가 운영하는 흥신소 직원들을 희극적인 톤으로 그린다. 특히 해킹, 촬영, 잠입에 몸싸움까지 능한 여성 캐릭터 오대리(김시은)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조진갑이 근무하는 노동지청의 공무원들도 나름 입체감 있게 그려진다. 이들은 대체로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있지만, 비리공무원에 근접한 상급자도 있고, 그와 조진갑 사이에서 절묘한 이중스파이 노릇을 하는 이동영도 있으며, “칠 때는 치고, 빠질 때는 빠진다”를 모토로 조진갑의 겁 없는 행보를 말리는 듯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든든한 뒷배 역할을 해주는 지청장도 있다. 드라마는 조연들을 활용하여 코믹의 강도를 유지하며, 결코 가볍지 않은 노동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낸다.



◆ 이것은 매우 익숙한 개미지옥의 세계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 그리는 노동 실태는 충격적이지만, 모두 사실에 바탕을 둔다. 버스요금 3100원을 횡령했다며 버스기사를 부당 해고한 사건은 조금 알려진 일화이지만, 그밖에도 바지 사장을 내세워 회사 수익을 빼돌리고 문제가 생기면 폐업해버린다거나, 배달 알바를 고용해놓고 개인사업자로 등록시켜 각종 명목으로 비용을 떼어간다거나, 다단계 하도급이나 불법파견으로 헐값에 노동자를 부려먹고는 근로계약서도 없으니 프리랜서였다고 발뺌하는 일 등이 도처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겪어도 그냥 참는다. 노동자의 권리를 배우지 못한데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은 있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노무사나 근로감독관이라지만,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를뿐더러, 고용주가 아닌 노동자의 편에서 일해주리라는 믿음도 없다.



드라마는 이러한 난망함을 대사로 잘 드러낸다. 특히 현실의 근로감독관이 적극적인 문제해결에 나서는 것이 수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서두에 밝힌다. 요컨대 조진갑 같은 근로감독관이 판타지적인 존재라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정말로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동법을 준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근로감독관이 있다면 이런 식의 해결법도 가능하다는 것을 예시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굉장히 골치 아프고 가슴 아픈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시종 유쾌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서사의 전개 상 ‘고구마 구간’이 필요하지만, 가능한 이를 길지 않게 그린다. 아예 편집을 통해 ‘고구마 구간’을 뛰어넘고 나중에 몇 장면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는 시청자들이 덜 고통스럽게 드라마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읽힌다. 중앙정치에서 일어나는 거대 악을 다룬 드라마들과 달리, 생활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자잘하고 비루한 일들을 담은 드라마에서 고구마 서사가 길어지면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맛보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버렸을지 모른다. 그만큼 드라마 속 상황이 내 일처럼 실감되기 때문이다.



◆ 노동문제는 ‘갑질’로 환원될 수 없는데

다만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이 각종 노동문제를 담은 에피소드를 보여주면서도 큰 줄기에서 학교폭력 사건의 구원(舊怨)과 망나니 재벌의 갑질 문제로 연결 짓는 시도는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는 학교폭력과 노동문제가 비슷한 발생과 구조를 지닌다고 보는 듯하다. 즉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권력을 가진 갑이 잔혹한 ‘갑질’을 해대고, 권력이 없는 을이 억울한 수모를 겪는 것이 노동문제의 본질이라고 이해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은 노동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으로 보기 힘들다.

노동문제는 권력적 위계에 의한 폭행이나 망나니 자본가의 ‘갑질’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즉 매우 신사적이고 합법적인 고용관계라 해도 착취는 일어나며, ‘갑질’을 전혀 하지 않는 ‘착한 자본가’라 할지라도 노동문제는 발생한다. 즉 노동문제의 본질은 자본의 속성에 있는 것이지, 자본가의 인성에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노동문제를 자꾸만 망나니 자본가의 ‘갑질’로 치환하려는 듯 나란히 그리는 것은 분노를 모으기는 쉬우나, 노동문제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려는 모처럼의 시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약간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대단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일단 진보를 표방하면서도 반노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노동문제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평범한 사람 누구나 겪는 보편적 문제임을 환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현재 노동관계 법과 제도가 어떻게 되어 있으며, 노동자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는 무엇인지 알도록 해주는 공익적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공무원이 법과 양심에 따라 열성적으로 일한다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알려줌으로써, 시민과 공무원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시야를 넓히는 기능을 한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일수록 노동이슈와 젠더이슈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적시에 찾아온 보물 같은 드라마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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