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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열의 스케치북’ 소박한 10주년 특집, 그리고 유희열의 진가
기사입력 :[ 2019-04-27 13:31 ]


‘유희열의 스케치북’, 관객과 무대 사이 거리를 좁혀온 10년에 찬사를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10년을 버티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도, 좋은 심야 라이브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도, 어렵지만 아주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심야 라이브 프로그램을 10년 동안 유지하는 일은 매우 어렵고 극히 드문 일이다. 그 험준한 고지에,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올랐다. 지난 26일 방영된 440회로 방영 10주년을 맞이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부터 시작해 내려오는 KBS 심야 라이브 프로그램의 계보 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장르와 세대를 막론하고 좋은 음악을 선보인다는 목표 하나로 10년을 달려온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이제 같은 회사의 <가요무대>, EBS <스페이스 공감>과 함께 명실공히 지상파 정통 음악 프로그램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가장 든든한 이름이다.

정석희 평론가는 볼빨간사춘기와 같은 음원 강자도 지상파에서 자기 노래를 들려줄 무대가 <유희열의 스케치북> 정도만 남은 현실을 지적하며 프로그램의 존재이유를 짚었고, 이승한 평론가는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이 구성된 10주년 특집이야말로 프로그램의 장점과 지향하는 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기획이었다고 평했다. 김선영 평론가는 KBS 심야 음악 라이브 프로그램의 계보에서 <유희열의 스케치북>만이 지니는 특장점으로 ‘유희열의 아이덴티티’를 꼽으며 점점 멀어져가는 무대와 관객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MC 유희열의 가치를 다시 돌아봤다. 다음은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가 10주년을 맞이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내는 인사다.



◆ 자신의 곡을 들려줄 무대가 필요한 모든 뮤지션을 위해

요 몇 년 새 볼빨간사춘기의 ‘우주를 줄게’를 참 많이도 들었다. 주로 어딘가로 향하는 중에 들었다. 차에서, 지하철에서, 심지어 비행기 안에서도. 그런지라 ‘우주를 줄게’를 들으면 추억의 장소들이 머릿속에서 마치 폭죽 터지듯이 떠오르곤 한다. 추억 하나를 잡아서 곱씹어 보고 사진첩도 뒤적여 보고, 그러다보면 시간이 금세 간다. 이 노래를 소개 받은 곳이 바로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다. 이젠 아이돌의 통과의례인 JTBC <아이돌룸>에도 나오게 된 볼빨간사춘기지만 2016년 처음 <유희열의 스케치북> 무대에 올랐을 때만 해도 그저 생경하기만 했다. 그래서 무심히, 감기는 눈을 비비며 바라보다가 ‘Cause I’m a pilot anywhere, Cause I’m a pilot anywhere‘란 대목에서 눈이 번쩍 했던 기억이 난다.

하도 많이 들어 이젠 남 같지 않아진 볼빨간사춘기가 마침 이번 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초대됐다. 그간의 히트곡을 메들리로 들려줬는데 당연히 첫 곡은 ‘우주를 줄게’. 주로 이어폰을 통해 듣다가 라이브로 들으니 좀 낯설고 새롭기까지 했다. 볼빨간사춘기 같은 음원 강자조차 자기 곡을 들려줄 무대가 없는 것이 우리네 방송의 현실이 아니겠나.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근자에 심심하면 한번씩 <유희열의 스케치북> 폐지론이 돌 때마다 팬들의 반대로 무산되곤 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가성비가 낮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게다. 허나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들의 음악을 알리고 급부상한 음악인이 부지기수가 아닌가. 440회 동안 무려 950팀이 소개됐다고 한다. 늘 그 나물에 그 밥인 여느 예능 프로그램들과는 격이 다른 <유희열의 스케치북>. 부디 최장수 음악 프로그램으로 남아 많은 이에게 기회를 주기를.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daum.net



◆ 꾸준하게 지켜온 440번의 무대

“오늘이 스케치북 440번째 녹화입니다. 그 동안 만난 뮤지션이 무려, 놀라지 마세요. 950팀을 만났거든요, 저희가?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아직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뮤지션들이 아직도 셀 수 없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도 계속해서 좋은 이야기와 좋은 음악들 소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유희열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프로그램의 톤 역시 평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스케치북>)은 10주년을 화려한 이벤트 없이 늘 하던 대로 무대에 집중하는 것으로 차분하게 기념했다.

하고자 하면 더 화려한 특집으로 기념하지 못할 것도 없었으리라. 그러나 <스케치북>은 “계속해서 좋은 이야기와 좋은 음악들 소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에 충실한 쪽을 택했다. 데뷔 30주년을 맞이했지만 <스케치북>에는 처음 출연하는 김현철과 대화를 나누고, 크러쉬와 함께 처음으로 화음을 맞춰보고, 자신들이 ‘낳고 기른 가수’라 자부하는 볼빨간사춘기를 초대해 그간의 성장을 되짚은 뒤, 아직 낯선 얼굴인 포크 듀오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를 소개했다.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이 구성은 역설적으로 <스케치북>이 지난 10년을 버텨온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한다. 음원차트 최강자인 볼빨간사춘기도 한때는 지금의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처럼 낯선 얼굴들이었고, 월드투어를 다니는 크러쉬도 처음 <스케치북>에 나왔을 때는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 것도 기억 못 할 만큼 떨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 신인들을 대중에게 선보이고, 이젠 ‘복면가왕 아저씨’로 더 널리 알려진 데뷔 30년차 중견 프로듀서가 다시 한번 가수로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공간. 숨죽이고 봐야 하는 실험적인 무대와 다 함께 박수치며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무대가 공존하는 라이브 프로그램으로서의 가치 말이다.

그 단순하지만 중요한 목표를 흔들림 없이 추구해 온 꾸준함이야말로 <스케치북>이 걸어온 10년의 힘이다. 음악감독 강승원과 사전MC 딩동을 비롯한 스태프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엔딩 또한, 그 꾸준함을 가능케 했던 동료들에 대한 유희열의 헌사일 것이다. 이 여정에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함께 걸어가자고.

칼럼니스트 이승한 tintin@iamtintin.net



◆ 유희열이라는 단단한 가교

“유희열이 갖고 있는 아이덴티티가 크다.” <유희열의 스케치북> 10주년 기념 간담회에서 담당 PD는 이 프로그램에서의 유희열의 존재감을 이렇게 설명했다. 유희열 자신은 ‘<전국노래자랑> 같은 프로그램에도 송해 선생 이름이 안 붙는데 죄송하고 부끄럽다’고 겸양을 표하지만, PD의 말대로 이 프로그램이 그냥 <스케치북>이 아닌 <유희열의 스케치북>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사실 MC 이름을 앞세우게 된 유래를 따지자면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부터 시작된 KBS 심야 음악 토크쇼의 전통이 먼저다. 이후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까지, 뚜렷한 개성을 지닌 아티스트를 MC로 내세우고 이들의 컬러를 프로그램의 색깔과 연결시키는 것은 이 계보의 일관된 제목 스타일에 그대로 드러난다. <유희열의 스케치북>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유희열의 아이덴티티’가 크다고 말하는 것은, 선배 프로그램들보다 ‘MC’의 역할이 한층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선배 프로그램들이 ‘심야 음악 토크쇼’로서 좋은 음악을 소개하고 감상하게 하는 방향으로 소통을 추구했다면,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라이브계의 버라이어티, 오감 만족 뮤직 토크쇼”를 표방하면서 ‘함께 즐기는’ 무대를 통해 소통을 확대하고자 한다. 갈수록 획일화되어가는 대중음악 시장과 다양성이 실종되어가는 방송 생태계를 생각하면, 훨씬 어려워진 과제다.



유희열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그가 점점 벌어지는 무대와 관객, 시청자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최적의 MC라서다. 그가 우스갯말로 “옛날 가수”로 소개한 최고의 프로듀서 김현철, ‘트렌디한 음악의 최전선’에 있는 크러쉬, 낯설고 신선한 음악을 들려준 신인 듀오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 등이 등장한 440회만 봐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드넓은 스펙트럼에 걸쳐져 있는 뮤지션들은 유희열과의 자연스러운 토크를 거쳐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간다. 이 시간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낯선 뮤지션으로 남았을 지도 모를 이들이 누군가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순간, 그것이 유희열이라는 단단한 가교와 이 프로그램의 빛나는 가치다.

칼럼니스트 김선영 herland@naver.com

[영상,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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