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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하숙’이 담는 건... 먹방도 장사도 아닌 삶의 비의
기사입력 :[ 2019-05-04 10:52 ]


‘스페인하숙’, 어째서 이 소소한 반복에 빠져드는 걸까

[엔터미디어=정덕현] 무려 25인분의 닭볶음탕을 준비한다. 손님이 몇 명이 올지 모르지만 마음만은 그만큼의 기대감이 음식을 준비하는 차승원의 손길에 담긴다. 엄청나게 큰 스페인 닭 몇 마리를 손질해 놓자 마음까지 푸근해진다. 거대한 들통에 먼저 우려내놓은 빨간 국물과 거기 수북하게 담기는 닭고기들은 그래서 미각보다 먼저 마음을 데운다. 저렇게 넉넉하게 준비된 닭볶음탕을 먹고 다시 기운 낼 순례자들에 대한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설비부 유해진은 박과장과 또 무언가를 뚝딱 뚝딱 만들어낸다. 뭐든 주문하면 뚝딱 만들어내는 설비부에 차승원이 ‘이런 건 못하겠지’ 하며 요청한 와이파이를 만드는 것. 합판 위에 와이파이 문양을 그리고 전기코드를 재활용해 하트모양으로 자른 합판과 연결한 이른바 ‘샘나?π’는 실용성(?)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작품’에 가깝다. 애초 진짜 기능을 갖춘 와이파이를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이보다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마음과 마음을 따뜻하게 연결해주는 유머 가득한 와이파이.



tvN 예능 <스페인 하숙>은 어찌 보면 하릴없어 보이는 일들을 매일 반복한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새벽같이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고 하숙집 구석구석 청소를 한다. 치우면 또 떨어지는 나뭇잎을 매일매일 치우는 그 반복들. 손님을 기다리고, 맞이하고, 대접하고 또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며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손님의 숫자는 그 때 그 때 다르고 예측 불가다. 25인분의 닭볶음탕을 준비했지만 저녁 시간까지 단 한 명의 손님도 오지 않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할 건 없다. 손님 없으니 하숙집 사람들의 회식(?) 자리가 벌어진다. 설비부에 승진(?)한 박과장이 회식의 명목이다. 박과장과 함께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이 둘러 앉아 손님을 위해 만든 닭볶음탕과 회식을 위해 새로 준비한 삼겹살 볶음을 먹으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낸다. 지금껏 촬영하느라 스페인식 식사만 해온 제작진들은 손님이 없어 잔뜩 남은 닭볶음탕으로 오랜만의 한식을 즐긴다. 그간 차승원은 그 제작진들이 밟혀 일부러 음식을 많이 해왔다.



기분이 좋아진 유해진은 박과장에게 괜한 호언장담을 한다. 이참에 김치냉장고로 ‘IKEYO’가 아닌 ‘IKHYEOYO(익혀요)’를 만들어보는 건 어떻냐는 농담. 뭘로 만드냐는 차승원의 물음에 유해진은 당당하게 “합판”이라고 답한다. 그 농담이 우스워 회식은 화기애애한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는 줄 알았는데, 조금 늦은 시간 잔뜩 지쳐 보이는 순례자가 하숙집을 찾는다. 무려 100킬로를 쉬지 않고 걸어왔다는 그 순례자에게 부랴부랴 따뜻한 밥과 국을 만들어 내놓는다. 벌써 네 번째 순례길이라는 순례자는 처음에는 두 달이 걸렸다며 여기가 너무 좋다고 말한다. 하루 100킬로를 걷고 걷지 못할 정도로 힘든 그 길을 왜 그는 걷고 또 걸었을까. 그리고 그 고행이 왜 좋다고 말할까.

<스페인 하숙>은 굉장한 먹방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더 많은 손님을 받으려는 장사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음식은 물론 차승원의 정성이 가득하고 스페인이라는 외지에서의 한식이라는 특별함이 있지만 대단히 놀랍거나 새로운 건 아니다. 또 25인분을 준비해서 대부분은 회식을 하고 그 날 한 명의 순례자에게 대접하는 그 광경이 먹방이나 장사의 묘미를 담을 리 없다.



순례자가 늦은 밤에 차승원이 차려준 김치볶음밥과 계란국을 먹는 장면에서 ‘리액션’은 그다지 담기지 않는다. 대신 화면이 전환되며 어둑해진 밤하늘에 이런 자막이 더해진다.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이 길을 걷고 있는가... 이 길의 끝에서는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고단했던 하루 그 하루도 끝이 났다.’

매일의 일상이 반복되는 <스페인 하숙>의 풍경들은 그래서 소소한 반복이 만들어내는 재미와 의미가 담긴다. 사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몸을 바쁘게 놀리고 저녁에 돌아와 따뜻한 한 끼로 그 피곤을 풀어내는 삶을 반복하는지 알 수 없다. 살아가기 위해서일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도 우리는 늘 그렇게 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소소한 반복이 다 똑같은 반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깔깔 웃던 웃음이 있었고, 누군가와 나누던 훈훈한 소통이 있었고, 또 때론 지쳤다가도 그 피로를 풀어주는 따뜻한 밥 한 끼가 있었다. 그것이 <스페인 하숙>이 그 멀리까지 가서 포착해내려는 삶의 비의가 아닐까. 그 멀리까지 가서 굳이 힘겨운 순례길을 걷는 이들이 찾아내려는 그것.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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