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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이 전봉준이 아닌 거시기를 주인공으로 세웠다는 건
기사입력 :[ 2019-05-04 17:08 ]


‘녹두꽃’, 거시기 조정석의 개과천선에 기대감 커지는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그는 ‘거시기’로 불린다. 분명 ‘백이강(조정석)’이란 이름이 있지만 스스로 그 이름을 버리고 살아왔다. 아버지 백가(박혁권)가 본처의 여종을 겁탈해 태어난 자. 돈을 위해서는 어떤 짓이든 하는 악명 높은 이방 백가 밑에서 핍박받으며 그 일원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밥값으로 죄 없는 양민들을 괴롭혀왔다. 그가 스스로를 거시기라 부르게 내버려둔 건, 그 삶이 백이강이라는 자신의 삶이라는 걸 어쩌면 받아들이기 어려워서였을 지도 모른다.

고부군수 조병갑(장광)의 금곡령으로 도저히 살길이 없어진 민초들이 동학군으로 봉기해 마을을 접수했을 때 거시기는 죽을 위기에 처한다. 워낙 한이 맺힌 이들이 넘쳐나는데다 그는 백가의 앞잡이 역할을 해왔던 인물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 전봉준(최무성)은 거시기의 오른손을 칼로 내려찍으며 말한다. 이제 “거시기는 죽었다”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거시기가 죽고 그 안에 감춰져 있던 백이강이 살아나기 시작한 건.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은 동학농민혁명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주인공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아니라 거시기로 불리는 백이강이다. 이 지점은 역사적 인물을 정면으로 다루는 것을 피함으로써 좀 더 자유로운 이야기를 더할 수 있는 선택이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주인공이 전봉준 개인이 아니라 그와 함께 한 무수한 이름 모를 ‘거시기들’이었다는 걸 담아내기 위한 선택이다.



백이강이 전봉준에 의해 다시 살아가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는 건, 그저 생존하기 위해 살아오던 민초들의 삶에 대한 각성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두드려 팼던 양민들이 자신과 다를 바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버지 백가가 자신의 대를 이어 시키려는 이방짓을 더 이상 안하겠다고 선언한다.

백이강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되는 건, 그 동안 보이지 않던 민초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 또한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개처럼 살아온 자신이었기에 세상은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물어야 하는 그런 곳으로 여겼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자신을 살려준 전봉준을 통해 그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된다.



백이강의 어머니 유월이(서영희)가 전봉준이 그를 살린 이유에 대해 말한 것처럼, 그는 죽어 마땅한 인물이었으나 개처럼 살아온 그 삶이 불쌍해 또 다른 삶이 주어졌던 것이었다. 거시기로 불리는 개가 아닌 사람의 삶에 대한 기회가 주어지면서 드디어 보게 된 사람의 가치. 그것은 동학의 뜻이기도 했다.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인 세상. 태생이 어떻든 누구나 거시기가 아닌 하늘이라는 것.

<녹두꽃>은 그래서 녹두장군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와 함께 했던 민초 즉 ‘녹두꽃’들의 이야기다. 키가 작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녹두장군’이라는 호칭처럼, 이들은 작아보여도 함께 모여 흐드러진 꽃으로 피어난다. 백이강이라는 인물의 개과천선은 그래서 그 작아서 별 가치 없어 보였던 민초의 삶들이 하나하나 모여 꽃이 되고 하늘이 되는 그 과정을 담아낸다. 그리고 그것은 신분사회를 넘어 모두가 인간으로서 저마다의 권리를 갖는 근대를 열어가는 변화과정이기도 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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