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몽’의 김원봉은 어째서 매력이 느껴지지 않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 드라마] 약산 김원봉은 이제 더 이상 우리네 대중에게 낯선 인물이 아니다.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가 김원봉 역할을 해내며 그 존재감을 알렸고, <밀정>에서도 이병헌의 연기로 짧게 등장하지만 묵직한 아우라를 드러낸 바 있다. 의열단을 조직하고 일본 고관과 친일파 암살, 관공서 폭파 등을 주 임무로 삼았던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1948년 월북함으로써 우리네 역사에서는 좀체 다뤄지지 않았다.

MBC가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몽>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한다고 했을 때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던 건, 이념적인 문제 때문에 이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에서 그간 도외시해왔던 이 중요한 인물에 대한 재조명이 사뭇 기대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8회까지 방영된 현재 이런 기대감은 기대한 만큼의 실망감으로 돌아오고 있다. 물론 드라마가 아직 초반이라 섣부른 예단을 하긴 어렵지만 지금까지 방영한 분량이 갖고 있는 스토리나 연출, 연기까지 뭐 하나 만족스러운 걸 찾기가 어려워서다.



<이몽>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한 스토리다. 물론 일제강점기의 상황 자체가 한일 간의 대립구도라는 걸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청자들이 이런 단순한 한일 대결구도로 시선을 집중할 거라는 건 오산이다. 심지어 지나친 애국주의적 시각은 좀 더 내적인 완성도로 몰입하고픈 지금의 시청자들에게는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몽>은 이런 애국주의적 시각을 전면에 드러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김원봉(유지태)과 이영진(이요원)이라는 두 인물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동력에 저마다의 인간적인 욕망과 선택을 담아내지 않고 그저 행동만 보여주기 때문에 그 행동의 이유에서 애국주의 그 이상의 이유를 찾아내기가 어렵게 된다.



<이몽>의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역시 제목에 담겨 있듯 똑같이 항일운동에 나서고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의 차이가 부딪치는 지점이다. 외과의사지만 밀정 역할을 하는 이영진과 의열단 단장 김원봉의 대립하면서도 한 지점을 향해 나가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공적인 임무와 사적인 감정 사이를 오가는 그 관계 또한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하지만 이런 구도를 구체화시키는 건 역시 섬세한 심리묘사가 담기는 상황들과 그 표현을 통해서일 수밖에 없다. <이몽>은 이 부분에서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저 액션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이런 섬세한 심리들이 포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족한 스토리를 연출이 채워줘야 하지만, <이몽>의 연출은 어떻게 된 일인지 200억이라는 제작비가 무색할 정도로 톤 앤 매너를 찾기가 어렵다. 최근 드라마의 연출에서 그 드라마만의 분위기나 뉘앙스를 일관된 색감과 조명 등을 통해 구현해내는 톤 앤 매너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몽>은 너무 밝은 조명 아래 어설픈 CG, 게다가 세트인 게 거의 훤히 드러나는 영상으로 드라마에 사실감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대본과 연출 속에서 연기에 대한 몰입을 기대하기도 어려워진다. 김원봉이라는 역할이 워낙 무겁긴 하지만 유지태의 연기는 대본상 액션에만 거의 집중되어 있어 그 감정을 깊이 있게 느끼기가 어렵다. 상하이 청방에 납치된 이영진을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뛰어 들어가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대목에서도 감정이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 이영진 앞에서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있는 김원봉이지만, 그 감정을 시청자들에게까지 숨길 필요가 있을까. 액션이 감정 없이 등장할 때 시청자들이 느끼는 건 그 움직임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물론 이제 겨우 시작한 드라마를 속단하는 건 이르다. 하지만 이 초반의 부족한 대본과 연출, 연기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이몽>이 빠져 있는 난관은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원봉이라는 존재감 넘치는 인물을 재조명하면서 역사에서마저 느꼈던 그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되지 않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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