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착한 코미디의 신화를 버려야 산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개그콘서트>가 1000회를 맞이했다. 1999년, 그 무렵 대학로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코미디 공연’을 TV로 옮겨온 지 20년만이다. <개콘>은 새로운 형식과 20대 초중반 신인 코미디언들의 신선한 활기로 인해 처음부터 대박조짐을 보였다. 연평균 16%대로 시작한 시청률은 2000년대 초반 무려 30%대까지 육박했다. 이후 완만한 하락세를 탔지만 관찰예능의 시대로 접어들기 전인 2012년까지 평균 20%대의 높은 시청률을 유지했다.

그리고 지금, 평균 5%대의 초라한 성적을 어렵게 유지하고 있다. 화제성은 줄어들었다기보다는 아예 사라진 정도다. 흥행 지표였던 유행어, 스타의 명맥은 끊겼고, 지난 몇 년간 <개콘>이 가장 많이 언급된 장은 예능 관련 커뮤니티가 아니라 ‘<개콘>이 재미없어진 이유’와 같은 정치 뉴스 댓글일 정도다. 한때 주말의 대미를 장식하는 의식으로써 우리 일상에 들어왔지만, 지금은 동시간대 방영중인 <미운 우리 새끼>와 사이즈 비교조차 민망하다. 사실상 공영방송의 관성이 없었다면 존속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1000회라는 금자탑 앞에 사람들은 박수갈채 대신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점은 내부 진단이다. 제작진은 “못생긴 걸 못생겼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어쩔 수 없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 제작진과 개그맨들이 더 힘들어졌다”고 진단했다. 신봉선, 황현희 등 <개콘> 선배들도 <개콘>이 영광을 잃고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하나같이 사회가 변화하면서 나타난 ‘소재 제약’을 꼽았다. 한두 군데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것으로 보아 내부적 공감대가 두텁게 쌓인 듯하다. 그런데 과연 사실일까?

일단 오해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변화가 아니라 발전이다. 그간 슬랩스틱이란 이름하에 자행되어온 여성·외모 비하, 가학, 인종차별 등의 개그가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했기 때문이다. 한층 향상된 인권의식과 성인지 감수성은 코미디와 반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후다. <개콘>의 진짜 문제는 품위를 따지는 공영방송에서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하는 착한 코미디, 온 가족 콘텐츠를 지향한다는 데 있다. TV가 가족 엔터테인먼트로써의 기능을 다한 오늘날에도 <개콘>은 여전히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건전한 웃음에 매진한다. 소재의 제약은 여기서부터 비롯된 파생 과제이자,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한계일 뿐이다. 항해의 목적지가 잘못 설정되어 있는데 항해사들은 배의 성능을 탓하고 있다.



우선 착한 코미디의 신화다. 해학과 풍자를 주요 코드로 삼는 코미디는 애초에 착한 것, 정치적 바름과는 거리가 먼 성질을 갖고 있다. 편향과 비꼼, 놀림, 자학, 의도적 무식을 무기 삼아 맥락을 비틀고, 다소 가학적인 코드로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영역이 훨씬 크다. 미국 코미디 산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스탠딩 코미디 소재나 우리 코미디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일본 간사이 지방 스타일 코미디 대부분이 아이들이 봐도 괜찮을 만큼 착함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편이다. 코미디의 본질이 그러한데, 온 가족을 위한 착한 코미디를 20년째 파고드니 아무런 메시지가 없거나 얕은 대신 즉각적이거나 낮은 차원의 휘발되는 웃음을 집중적으로 캐게 된다.

미드 관련 기록을 전부 갈아치운 <왕좌의 게임>에는 장애 및 외모 비하 성적인 농담과 같은 개그가 즐비하다. 하지만 티리온의 농담이 불쾌하단 사람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19금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 불쾌함과 웃음 사이의 줄타기가 개그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성숙한 사회라면 성인이라면 맥락 속에서 농담과 비하를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우리도 팟캐스트, 유튜브의 시대를 거치면서 ‘대놓고 하는’ 코미디가 낯설지 않고, 이미 미국 스탠딩 코미디언들이 할 법한 코미디나 캐릭터를 우리나라의 경우 BJ나 유튜버들이 일정 부분 맡아서 하고 있다. 하지만 <개콘>은 기나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품위 있는 공영방송이란 성 안에 머물며, 대중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착한 코미디’ 라는 해자를 두르고 있다.

오늘날 예능은 웃음과 코미디를 뛰어넘어 훨씬 다양한 가치와 방법을 품게 됐다. 착한 코미디로는 착한 예능과 승부가 애초에 불가하다. 일상성, 정서적 교감, 가족 관계를 내세우고 점점 더 드라마처럼 변화해가는 관찰예능에 경쟁 우위를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건전한 코미디란 ‘넌버블 코미디’처럼 공연 형태에 적합하게 변형되거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유치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코미디의 해학으로 승부를 하고 싶다면 온 가족 콘텐츠에 대한 환상부터 버려야 한다.

타깃을 명확히 하면 나아질까? 20대 초반에 눈높이를 맞춘 <코빅>을 보면 그 답은 참고 가능하다. <개콘>보단 훨씬 자유롭고 완성도가 높고 객석과의 소통이나 시청자 반응도 좋지만 공개 코미디의 형식 자체가 대중적 콘텐츠로 나아가는 데 여전히 걸림돌이 된다. 스토리텔링, 정서적 관계, 좋은 사람을 만나면서 빠져드는 ‘요즘 예능의 결’과, 짧은 순간 에너지와 재기를 바탕으로 웃음을 터트려야 하는 ‘공개 코미디의 문법’이 어긋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네 공개 코미디란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방송 예능 콩트를 계승해 1990년대 말 대학로 소극장에서 정립한 라이브쇼 양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변화는 없다. ‘갈갈이 패밀리’로 <개콘>의 전성기를 열었던 박승대 사단이 지난 4월 새롭게 <스마일 킹>을 런칭했지만 역시나 마찬가지다. 관객의 반응을 현장에서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말장난(유행어)과 단순 반복되는 가학적 슬랩스틱, 과장된 분장과 외모 등으로 즉각적인 웃음을 추구하고 현장 분위기를 이끌 수 있는 에너지를 앞세운다. 대중의 기호가 변하고, 예능의 범위는 대폭 확대되었지만 코미디만큼은 그때 그 시절의 개념과 형식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 과거 <개콘> 코미디언들의 유행어는 오늘날 화사의 먹방과 같은 문화, 행위의 영역으로 넘어왔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공개 코미디 자체가 문제일까? 토크 콘서트의 김제동이나 최근 스탠딩 코미디로 대박을 낸 유병재의 사례도 있다. 그보단 메시지, 금기나 현실에 대한 해학과 풍자 없이 에너지를 앞세워 웃기는 콩트 형식의 휘발성 개그가 문제다. 무엇으로 웃길까보다, 어떤 이야기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를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 그러니 전향적 사고의 전환과 용기가 필요하다. 전유성은 1000회를 맞이해 후배들에게 초심을 강조했지만 지금 처음으로 돌아가면 큰일 난다. 방식 자체의 변화 없이 에너지, 절박함, 노력에 기대어 만들어내는 웃음은 안쓰럽게 보일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한다. 엔터테인먼트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광대패에서 서커스와 악극단을 거쳐 1960년대의 희극인은 1980년대 TV예능인이 됐다. 그리고 1990년대 공채 코미디언들은 지금까지 예능 MC라는 이름으로 활약 중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개콘>은 20년간 같은 자리에 머물며 변화에 적응하기를 등한시했다.

개그맨들의 손발을 묶는 건 소재의 제약이 커져서가 아니라 온 가족 콘텐츠 지향, 공개 코미디의 형식의 고수 등과 같이 기존에 주어진 코미디의 개념과 환경을 도그마처럼 삼는 사고방식이다. 좋은 게 좋은 거고, 눈치를 보고, KBS니까 지킬 것은 지키고 그런 태도만으로는 아무리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다고 해도 갈수록 어려워질 뿐이다. 지금 현실을 스스로 희화화 할 정도의 각오가 아니라면, 논란 유발 자체를 코미디의 일부로 삼을 배포가 없다면 차라리 타깃 연령을 대폭 낮추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코미디가 죽은 것이 아니라, 희극인 시절부터 이어져온 형태의 코미디의 시대가 저물었다.

지금과 같이 매체와 콘텐츠가 다양한 세상에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콩트 코미디가 과연 매력적일까? 그러니 사회가 발전하면서 생겨난 소재의 제약을 탓하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먼저 변화를 모색하고 한계를 깨는 용기가 필요하다. <개그콘서트>는 1000회를 맞이해 축하의 박수만큼이나 커다란 숙제를 받아들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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