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엄마와 10대 아들이 그려내는 스릴러라니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은 학교폭력에 멍든 10대의 세상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다. 오히려 혼수상태에 빠진 박선호(남다름)의 엄마 강인하(추자현)의 대사처럼 어른들의 잘못으로 멍들어가는 세상을 보여주는 드라마에 가깝다.

드라마는 박선호를 괴롭힌 세아중학교 10대 학생들의 부모를 통해 어른들의 이기심이 10대의 아이들을 변질시켰다는 뉘앙스를 계속해서 풍긴다. 하지만 <아름다운>은 단순히 어른들을 반성하게 만드는 교훈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오준석(서동현)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 또 하나의 밑밥을 깐다. 박선호 쪽이 밤고구마 같은 휴머니즘 스토리라면, 오준석 집안의 이야기는 일상에 스며드는 스릴러에 가깝다.



오준석의 엄마 서은주(조여정)는 옥상에서 추락한 박선호 사건을 자살로 위장한다. 당시 사건현장 옥상에 아들 오준석이 홀로 있었기 때문이다. 오준석은 엄마 서은주를 보면서 사고라고 실수였다고 울부짖는다. 서은주는 아들을 달랜 이후, 옥상에 박선호의 가짜 신발을 올려두면서 의도적으로 자살로 분위기를 몰아간다. 또 세아중학교 보안관 신대길(김학선)을 통해 현장 CCTV를 모두 교체하도록 종용한다.

서은주는 아들을 믿고,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이 죄를 안고 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후 서은주는 아들에 대한 의심과 공포, 혐오가 점점 자라나기에 이른다.

서은주는 박선호 사고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과연 박선호의 사건이 사고인지 의심한다. 어쩌면 아들 오준석이 박선호를 떠밀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순진한 아이라고 생각했던 아들에게 느낀 공포의 감정은 나날이 그녀를 옥죈다. 더구나 서은주의 남편인 이사장 오진표(오만석)는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냉혈한에 폭력적인 인물이다. 서은주는 자신의 아들이 그 아빠에 가깝게 자라는 것이 아닐까 점점 두려워진다. 더구나 오준석이 어쩌면 같은 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했을지도 모른다는 정황까지 드러난 상태에 이른다.



한편 오준석 역시 엄마에 대한 감정이 달라진다. 엄마가 나를 믿어주는 존재가 아닌 나를 의심하고 무서워하는 인물로 느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엄마에 의지하던 오준석은 어느 순간 엄마를 나약하고 신경질적인 존재로 여기게 된다. 오히려 남자답게 본인의 잘못을 잊어버리라는 아버지 오진표를 따른다. 그런 까닭에 오준석은 학교에서 폭력적인 아버지처럼 센 척하고, 군림하고, 본인의 잘못을 떠넘기려는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아름다운 세상>은 오준석을 폭력적인 아버지의 기질을 이어받은 아이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준석은 오히려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눈치 보며 자란 아이였다. 오준석은 엄마 서은주와 갈등이 폭발하는 순간 엄마 때문에 숨 막혔다고 토로한다. 엄마가 아빠 때문에 기죽어지내기 때문에,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느라 악착같이 공부했다고 말한다.

발톱을 드러낸 아들 앞에서 서은주는 안타까움과 공포를 함께 느낀다. 더 이상 품안의 아이 아닌, 사나운 남자로 자라나는 10대의 이 남자애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지만, 내 새끼라도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면 무섭기 마련이다.



10대의 남자아이 역시 엄마가 보여주는 복잡한 감정의 표정 앞에서 실은 공포를 느낀다. 엄마는 엄마이지 자식에게 공포를 느낄 수 있는 타인이란 생각을 그 또래 남자아이가 하기는 힘들다.

엄마와 아들과 달리 드라마에서건 현실에서건 엄마와 딸은 종종 서로 부딪치고 싸운다. 하지만 서로를 감정적으로 할퀴는 한이 있더라도 엄마와 딸은 서로에게 막막한 공포를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상대의 감정선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소년이 된 아들과 엄마 사이에는 벽이 자라나는 순간이 도래한다. 엄마와 아들은 서로를 벽 너머의 존재로 느끼는 그날부터 멀어지고 은연중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오준석은 휴대폰을 꺼놓고 엄마의 연락을 외면한 채 길거리를 방황한다. 그러다 노숙자를 시켜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오게 한다. 하지만 이때 편의점 알바생인 고교생 한동수(서영주)에게 들키고 만다. 센 척 해봤자 중학생인 오준석은, 고교생인 한동수에게는 한주먹거리다. 그런데 한동수는 오준석을 한 대 후려치려다 그만두고 그를 다독인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어와서 돈 내고 뭐라도 먹으라고 말한다. 그 순간 울 것 같던 표정의 오준석은 한동수를 밀치고 다시 도망친다.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아름다운 세상>은 남자애들 세계에서 벌어지는 단순명료한 위로의 방식 역시 보여준다. 확실한 서열 정리, 오글거리지 않는 위로 “밥은 먹고 다니냐?” 하지만 위로받는 것이란 창피하고 약하다고 생각하는 남자애들은 또 멀리로 도망치고 만다.



<아름다운 세상>이 종종 숨 막힐 듯 답답해도 좋은 드라마인 건 그래서다. 모성애만이 아니라, 엄마가 아들을 두려워하고 멀어지는 그 순간들을 포착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갈등하는 10대 남자애의 허세 밑에 숨겨둔 두려움들을 집어내는 작품 역시 많지 않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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