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1000회 웃음과 시대 정서 사이, 개그적 허용 어디까지

[엔터미디어=정덕현] 간만에 빵빵 터졌다. KBS <개그콘서트>가 1000회 특집으로 마련된 무대는 무려 20년 간 웃음을 줬던 개그맨들과 그들의 코너들을 다시금 떠올리는 시간이었다. <비상대책위원회>의 김원효가 “안돼!”를 외칠 때 그 과거의 향수가 현재로 소환되었고, 김준현이 “고뤠?” 하고 유행어를 던질 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감초처럼 등장해 오랜만의 수다를 쏟아냈던 수다맨 강성범과 만만찮은 수다 실력을 보여주는 김원효가 한 자리에 서 있는 것도 반갑고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사랑의 가족>에 역시 오랜만에 얼굴을 보인 갈갈이 패밀리, 박준형, 오지헌, 정종철은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웃음을 줬다. 사실 대사가 그리 많지도 않은 개그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관객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고, 여지없이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이어진다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게까지 느껴졌다. <개그콘서트>를 보며 이런 웃음을 터트려본 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개그콘서트> 1000회 특집은 레전드 코너들로 대부분 채워졌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으로 정경미, 안영미의 망가지는 개그를 재연했고, <씁쓸한 인생>으로 김준호 자리에 김대희가 앉아 부하들에게 사정없이 당하는 개그로 웃음을 줬다. <봉숭아학당>은 정종철의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라는 유행어와 갸루상 박성호의 “사람이 아니무니다”, 하니 김지혜의 “가슴이.. 가슴이..” 그리고 왕비호 윤형빈의 “포에버!” 같은 유행어를 다시 들을 수 있는 코너로 대미를 장식했다.

간만에 빵빵 터진 무대였지만, 어딘가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그래서 ‘개그적 허용’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무대이기도 했다. 이를 테면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김준현에게 “돼지야!”라고 놀리는 대사는 과거처럼 편히 웃기가 쉽지 않았고, <씁쓸한 인생>의 레슬링복을 입은 김대희에게 볼링공과 얼음을 옷 안에 채워 넣는 개그는 가학적인 느낌도 준 게 사실이다. 정종철의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나 김지혜의 “가슴이.. 가슴이..”도 외모와 몸매를 대상으로 하는 개그의 뒷맛이 영 편하지만은 않았다.



<사랑의 가족>에 출연한 갈갈이 패밀리 박준형, 오지헌, 정종철은 이 코너 자체가 얼굴 외모를 갖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지금의 정서와 부딪치는 면이 있다는 걸 코너 안에서도 담아냈다. 자신들이 하는 것이 “외모비하개그”가 아니냐고 스스로 질문한 것. 하지만 박준형은 여기에 대해 “외모비하가 아니라 팩트”라고 말해 웃음을 줬다. 현재 달라진 대중정서 때문에 소재적 한계가 있다는 걸 드러내면서도 이를 피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사실 딜레마가 느껴지는 1000회 특집 무대였다. 그 어느 때보다 빵빵 터지는 코너들로 채워졌지만, 그 대부분이 지금의 시대 정서와는 맞지 않는 요소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건 시대가 그만큼 바뀌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때는 웃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웃기만 할 수는 없는 그런 정서적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과연 개그는 그 ‘표현’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 걸까. 웃음을 줄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 되었다. 웃음 자체가 외모비하나 가학을 무분별하게 허용한다면 그건 자칫 비뚤어진 생각들을 웃음의 소재로 쓴다는 윤리적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또 그런 소재들은 외모지상주의나 폭력성을 둔감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웃음을 위한 표현의 자유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런 잣대가 지나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개그를 그저 한바탕 웃기 위한 개그로 봐야지 그 이상의 것으로 확대해석하면 사실상 표현할 수 있는 소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까지의 ‘개그적 허용’이 가능한 걸까. <개그콘서트> 1000회 특집은 마치 그 딜레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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