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ermedia 주요뉴스

‘스페인’, 나영석 전매특허 스토리텔링 없이도 대박 낸 비결
기사입력 :[ 2019-05-20 14:44 ]


‘스페인 하숙’은 ‘윤식당’의 재탕이 아니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tvN 예능 <스페인 하숙>의 마지막 영업은 ‘공쳤다’. 일반적으로 방송에서 마지막을 이렇게도 허무하게 끝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평범한 예능이라면 어떻게든 그림을 만들기 위한 작전에 돌입하겠지만 전적으로 손님의 의지에 의지하는 <스페인 하숙>은 주어진 상황을 별 말 없이 받아들였다. 나를 포함해 일부 시청자들이 무언가 깜짝 에피소드와 같은 반전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끝끝내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마지막 날 스케치는 담백하다 못해 간단했다. 아무리 한국에서 소회를 푼다고 하지만, 떠나기 전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추억도 곱씹고 며칠 동안 지내온 공간과 석별의 정을 나눌 법 한데도 스페인 하숙과의 작별은 아침에 현관을 나서며 인사하는 장면이 전부였다. 그간 장을 보러 매일 들르며 친해진 동네 상회 주인들과의 인사도 순례길의 인연들이 그러하듯 가볍게 마무리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계속 그래왔다. <스페인 하숙>은 인생의 짐을 잠시 내려놓는다는 순례길을 무대로 택했지만 순례객의 이야기나 하숙집의 에피소드에서 코엘료처럼 인생의 연금술이 있다고 광고하지 않았다.



대신 삶을 간결화해 행복의 본질을 제시한다.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 일명 ‘차배진’의 <스페인 하숙>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아침을 하고, 침구 관리 및 빨래, 객실과 식당 청소를 한 다음 아침운동을 나간다. 점심 무렵엔 그날 저녁 만찬을 위한 장을 보러 다녀오고 몇 명 올지 모를 손님에 대비해 한나절 내내 식사를 마련한다. 그 사이 남는 시간에 유해진은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여 합판을 갖고 ‘이케요’ 제품을 만든다. 손님을 맞을 시간이 되면 접객을 하고, 따뜻한 한 끼 밥상에 주목한다. 매일매일 찾아오는 손님의 얼굴과 수, 국적만 다를 뿐, 별다를 일 없는 날들의 반복 그리고 또 반복이다. 고민이나 갈등, 난관, 즉 특별한 이야기는 없다.

손님이 없어 한가로운 시간에는 ‘이케요’를 두고 유해진과 박 과장이 소소한 장난을 친다. 이 둘은 아무도 오지 않은 마지막 날은 주방에서 초조히 요리준비 중인 차승원을 위한 영어 몰래카메라까지 합작했다. 배정남과 차승원도 하루 종일 붙어 있지만 인생 이야기 같은 별다른 진지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오로지 반복되는 일상에 그저 재미를 느끼고 성심껏 매진한다.



그럼에도, 이처럼 별다른 특징이 없어 보임에도, <스페인 하숙>에 시청자들이 몰려든 이유는 우리를 현실 밖으로 데리고나가 다른 세상의 모습과 다른 방식의 삶에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는 자극 지점이 두 가지였다.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서 이국적이고 예쁜 알베르게를 차린 차배진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재미와 함께 세계 각국에서 날아와 순례길을 걷는 평범한 이들을 통해 순례길 문화와 생활을 간접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한 것.

<스페인 하숙> 또한 현실을 벗어난 이국적이고 예쁜 공간에서 나영석 사단의 핵심 주제인 슬로라이프, 소소한 일상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윤식당>과의 비교를 많이 받았다. 물론, 장소 설정의 유사함, 장사, 인테리어 등등 분명 비슷한 점이 여럿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순례객의 존재다. <윤식당>은 한식을 접한 외국 손님들의 대화를 엿듣는(듯한) 재미가 큰 지분을 차지하지만, <스페인 하숙>은 짧은 시간 영업이 불가한 알베르게의 특성상 애당초 얼마나 장사가 잘 될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듯하다. 대신 찾아주는 순례객들을 통해 산티아고 순례길의 매력을 정말 담백하게 소개한다.



인생의 답을 뚜렷하게 찾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걷고 자고 또 걷는다. 두 발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아무런 걱정 없이 맛있는 한 끼나 따뜻한 잠자리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간 잊고 살았던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길 위에서 만나는 좋은 사람, 좋은 인연이 지친 몸을 다시금 이끌고 나갈 힘이 되어준다. 과장, 찬사가 없으니 목가적인 풍경과 ‘도전’이란 것만으로 가슴을 끓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무언가 무리를 하지 않고, 서로 위하고 주어진 상황들에 감사할 줄 아는 ‘차배진’ 쪽도 마찬가지다. 반복되는 일상을 즐기고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흐뭇해졌다. 서로의 포지션을 확실히 하고, 선을 넘지 않으면서 서로를 위했다. 함께 무언가를 이룩해나간다는 예능의 스토리라인, 예를 들면 목표금액이라든가, 손발이 점점 맞들어 가는 원활한 모습 같은 성장스토리에 굳이 올려 태우지 않고 반복된 하루에 열중하는 세 사람의 모습을 집중한다. <스페인 하숙>은 차승원의 마지막 인사말 ‘평온하고 건강하길’의 예능 버전이었다.



특별한 에피소드를 만들지 않고 요란법석을 떨지도 않으며 나영석 사단의 장기인 스토리텔링은 매우 자제된 채 진행되지만 그래서 금요일 밤마다 시청자들은 스페인의 작은 시골 마을로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나마 행복감을 함께 누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뒤로가기 인쇄하기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