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나들’의 따뜻함, 파일럿 첫 회부터 호평 이어지는 건

[엔터미디어=정덕현] ‘인생은 진작 마스터했지만 한글을 모르는 할매들과 한글은 대략 마스터했지만 인생이 궁금한 20대 연예인들의 동고동락 프로젝트.’ MBC 일요일 밤 새 예능 프로그램 <가시나들>은 이 짧은 소개 글만으로도 어딘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할매들과 청춘들의 ‘한글’을 매개로 하는 동고동락의 시간이라니. 세월의 차이를 훌쩍 뛰어넘는 따뜻한 인간애가 그 기획만으로도 물씬 풍겨난다.

경상남도 함양군의 다섯 할매들과, 학생과 선생으로 마주하게 된 문소리와, 그 할매들과 짝궁이 된 청춘 소녀들과 함께 서로의 이름을 적어가며 알아가는 시간은 그리 특별할 것도 없지만 어딘지 뭉클한 무언가가 공기처럼 흐른다. 구구절절 사연을 얘기하지도 않지만, 한글을 배울 틈도 없이 살아낸 세월이 소녀들이 만지작대는 할매들의 두툼한 손에서 느껴지고, 얼굴 가득 피어난 주름 꽃에서 묻어나기 때문이다.



소개 글에서 묻어나듯, <가시나들>에서 사실 주말 밤의 자극적인 웃음의 코드를 찾아내긴 어렵다. 또 한글 실력 일취월장으로 놀라운 실력을 보여주는 할매들의 모습을 애써 기대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다만 뒤늦게 한글을 배워가며 자신의 이름을 적는 것만으로도 흡족해 하시는 할매들이 조금 더 행복하셨으면 좋겠고, 하고픈 이야기들을 짧게나마 한글로 적어 전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먼저 갖게 된다.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들’의 줄임말이기도 한 <가시나들>이라는 제목은 그런 점에서 이 예능 프로그램이 담으려는 것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뒤늦게 한글을 배워가는 그 과정도 흥미롭지만, 우리가 아무렇게나 쓰는 이름이나 단어 또는 시 한 줄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나태주의 ‘풀꽃’을 할매가 읽어주며 “나는 우리 영감님의 꽃이었었다”고 말하고 “우리는 꽃이 졌고”라고 덧붙이자 옆에 앉은 짝꿍 소녀가 “할머니도 꽃이지”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미소가 피어난다.



할매들이 한글을 배우는 과정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늘 하던 ‘웃음의 코드들’을 차용하지만, 그것은 일찌감치 인생을 마스터한 할매들이 하고 있기에 전혀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배우고 그 할매들의 집에서 청춘 소녀들이 함께 지내며 서로를 알아가는 이야기는 그저 ‘만남’ 그 이상의 의미들을 담고 있어서다. 거기에는 세월을 뛰어넘어 소통하려는 여전히 ‘꽃’인 할매들이 있고, 그 할매들을 ‘꽃’이라 불러주는 청춘이 있다.

올 초 극장가에 잔잔한 감동으로 열풍을 만들었던 다큐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예능 버전으로 만들어진 <가시나들>은 그래서 일요일 밤의 새로운 웃음을 예고한다. 어떻게 하면 더 빵빵 터트릴까를 고민하는 그런 웃음이 아니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피어나는 그런 웃음이다.



도시와 시골, 할매와 청춘,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이런 이질적인 요소들이 한 자리에 모여 본래 그것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고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 그것이 다르지 않은 이유는 우리 모두가 누구나 ‘꽃’인 사람이라는 걸 드러내주는 그런 예능이라니. <가시나들>이 파일럿 첫 회부터 호평이 이어지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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