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부활 구슬, 흥미롭지만 분명한 한계

[엔터미디어=정덕현] tvN 월화드라마 <어비스>에는 연쇄살인범 오영철(이성재)이 등장한다. 그는 엄산동 살인사건의 유가족인 박기만(이철민)에 의해 살해당하지만 차민(안효섭)이 가진 영혼 소생 구슬 어비스에 의해 늙은 얼굴로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는 살해를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차민까지 죽이고 그 구슬을 갖게 된다.

이 정도로 연쇄살인범이 무차별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상황이라면, 드라마는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야 되는 게 정상적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비스>는 연쇄살인범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녀도 그다지 긴장이 되지 않는다. 물론 장희진(한소희)처럼 오영철에 의해 죽다 살아난 인물은 소스라치게 놀라 벌벌 떨지만, 그런 긴장감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지 않는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것은 이 드라마에 판타지 장치로 등장하고 있는 어비스라는 구슬이 가진 양면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이 영혼을 소생시키는 구슬로 인해 꼬이는 사건들을 재미의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지만, 바로 그 죽은 자를 부활시킨다는 구슬의 전지전능한 힘으로 인해 그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다. 누군가 죽었다고 해도 다시 구슬이 부활시킨다는 사실 때문이다.



실제로 차민은 두 차례나 죽었다 부활한다. 처음에는 결혼식 전날 잠적한 약혼녀 장희진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다 때마침 날아 들어온 외계인에 부딪쳐 죽게 된다. 그 외계인이 어비스를 이용해 그를 되살리고, 얼굴 천재로 부활한 그는 엄산동 살인사건을 추적하던 고세연(김사랑->박보영)이 살해당하자 그 또한 되살린다. 하지만 그 사건을 함께 추적하다 차민은 연쇄살인범 오영철에게 살해당하고, 고세연은 기지를 발휘해 구슬을 가진 오영철을 차민의 시신 앞에 오게 만들어 그를 되살린다.

이처럼 <어비스>는 이야기 구조가 죽어도 부활시키는 구슬을 두고 벌어지는 엎치락뒤치락하는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그 판타지는 그러나 한 번 벌어질 때는 신기하고 흥미롭지만, 반복되어 벌어지게 되면 드라마 전체의 긴장을 흩트리는 면이 있다.

사실 드라마에서 죽음이란 극의 중요한 동력이 된다. 죽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야말로 극성이 올라가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 안에서 인물들은 생존을 위해 뛰고, 그 욕망이 극을 보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죽음은 그 긴장이 풀어지는 극의 끝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틀을 깨는 시도가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틀을 깨는 판타지를 가져왔다면, 삶과 죽음의 이야기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아내야 한다. 그게 빠져버리면 자칫 극은 죽음 앞에서도 긴장감이 없는 게임처럼 되어버린다.

<어비스>는 여러 조건들이 따라붙은 영혼 부활 구슬을 놓고 벌이는 게임이 되어가고 있다. 누가 그 구슬을 갖고 누구를 살릴 것이고, 또 죽은 자를 어떻게 부활시킬 것인가를 두고 벌이는 두뇌게임. 물론 이것도 흥미롭지만, 갈수록 긴장감이 빠져버리는 게임만으로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판타지라도 그것이 반추하는 현실의 어떤 지점이 존재해야 한다. 부활이라는 판타지가 우리네 현실적 삶에 어떤 의미를 던지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한번쯤 해봐야 하지 않을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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