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달인’은 어쩌다 맛집 소개 프로그램으로 변질 됐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SBS <생활의 달인> 제작진이 동치미 막국수 가게 조작 논란에 대해 결국 사과했다. 한 네티즌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생활의 달인 40년 전통 막국수 가게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글로 “주인이 바뀐 지 4년이 됐는데 수십 년 된 달인으로 비춰지고 있다”며 문제제기를 했고, 이것이 논란이 되자 제작진이 공식 사과문을 게재한 것.

사과문의 내용을 보면, 그 장소에서 영업을 해온 창업주 할머니는 몇 년 전 몸이 아파 아들에게 운영을 넘겼고, 2009년부터 이번 방송의 출연자가 합류해 막국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2016년 5월에 이 출연자가 해당 가게를 인수받았고, 아들은 원주 시내로 이전해 새 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결국 방송에서 ‘40년 된 집’이라고 소개한 건, 물론 실제로 그 집이 그렇게 오래도록 막국수 장사를 해온 사실이기도 하지만, 마치 출연자가 40년 간 운영해온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제작진은 그래도 이 출연자가 이 가게에서 일하기 전부터 막국수를 만들어왔고 그 경력이 40년에 이른다며 해명했지만, 이런 해명이 시청자들에게 공감이 갈 지는 의문이다. 결국 이런 논란이 벌어지지 않고 그냥 지나치게 됐다면, 그 출연자는 그 곳에서 40년 동안 막국수를 해온 ‘달인’으로 굳어졌을 테니 말이다.

조작 논란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지만, 그것보다 <생활의 달인>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언젠가부터 이 프로그램이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맛집 소개 프로그램처럼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한 회에 네 명 정도의 달인이 소개되는데, 그 중 셋은 모두 음식을 만드는 인물들이다. 어쩌다 이 프로그램은 애초 취지를 이어가지 못하고 우리네 사회 속에 달인들이 마치 대부분 음식의 달인들뿐인 것처럼 보여주게 된 걸까.



초창기 <생활의 달인>은 그 취지는 물론이고 출연자들의 면면만으로도 시청자들이 지지할 수밖에 없는 좋은 프로그램으로 꼽혔다. 소소하게 여겨질 정도로 작게 보이는 일들이지만, 힘들게 한 평생을 던져 한 업을 해왔던 분들이 그래서 갖게 된 ‘달인’ 수준의 놀라운 기술을 소개하는 것이 그 본래 프로그램의 내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문배달을 오래 해서 어디서든 정확히 원하는 곳에 던져 넣는 달인이나, 좁은 골목길에 1미리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틈으로 정확히 주차를 해내는 달인, 또 머리 한 가득 음식을 이고 나르는 달인 같은 진짜 생업의 무게가 느껴지는 출연자들은 그 기예에 가까운 기술이 주는 즐거움, 재미와 더불어 먹먹한 감동까지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먹방, 쿡방 같은 것들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면서 <생활의 달인>은 다양한 우리네 일상과 생활 깊숙이 숨겨져 있는 진짜 달인들이 아닌, 맛의 달인들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결국 이런 조작 논란까지 생겨나게 된 것도 이런 <생활의 달인>이 초심을 잃어버린 것과 무관하다 보기 어렵다. 어쩌다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 되어버리면서 프로그램의 ‘진정성’도 희석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초창기의 <생활의 달인>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굳이 이런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 <생활의 달인>이란 이름을 붙일 가치가 있는 걸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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