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디즈니의 고집스런 리메이크에 담긴 빛과 그림자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디즈니 고전 애니메이션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계획에 대해서는 언제나 냉소적이었고 지금도 특별히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여기에 대한 내 입장은 ‘부서진 게 아니라면 고치는 게 아니다’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즈니는 꾸준히 이 영화들을 실사로 리메이크 중이며 이는 막을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할 것이다. 좋은 이야기들은 영화사 시작부터 꾸준히 리메이크 되어 왔다. 지금 디즈니처럼 집요하게 자기 영화들을 다시 만드는 건 여전히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모든 작품들은 언젠가 리메이크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런다고 원작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나온 작품들은 결과가 어땠을까? 대부분 무난하거나 심심한 수준이다. <미녀와 야수>는 원작의 각본에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어서 (시간의 흐름 같은 것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를 보완하면 좋을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그걸 보완한 실사판은 이미 원작에서 짧은 러닝타임 안에 해치운 드라마를 별 내용 없이 길게 늘린 것 같고 추가한 노래나 장면은 영화관을 나오는 즉시 증발되어 버린다.



원작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체한 작품들은 조금 더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말레피센트>는 원작의 선악구조를 180퍼센트 바꾼 도전적인 각색이었고, <덤보>는 서커스 코끼리의 성공담이었던 원작에 절반 정도의 새 이야기를 더해 서커스의 동물 학대에 반대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변하는 시대 흐름에 맞추어 새로운 가치에 편승하는 이야기들이 나온 것이다. 이 가치들은 페미니즘, 다양한 문화의 수용, 인종차별 반대, 환경운동, 동물복지 등등이다.

이를 냉소적으로 보는 건 무의미하다. 동화책들은 늘 그 시대의 가치관에 맞게 수정되어 왔고 이는 <그림동화>와 같은 유명한 책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단지, 이 각색들이 이 새로운 재료들의 가능성을 충분히 활용했는가는 의심이 간다. 디즈니 리메이크 영화는 원본과 현대적 가치가 어색하게 싸우고 있는 불안한 현장처럼 보인다.

<알라딘> 이야기를 해보자. 이 영화는 개봉 전까지 늘 걱정과 놀림의 대상이었다. 감독인 가이 리치의 최근 실적은 계속 별로였다. 개봉 전에 풀린 윌 스미스의 지니 스틸은 끔찍해보였다. 무엇보다 원작에 굳이 뭔가를 더할 필요가 있던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가이 리치의 <알라딘>은 의외로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은 영화이다. 기대치를 낮추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원작에 대한 주석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솔직히 원작만큼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작품도 아니다.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CG는 어색하고 그렇게 예쁘지도 않다. 그리고 가이 리치는 액션 영화감독으로는 괜찮지만 영화에 음악과 노래가 삽입될 때는 한계를 보인다. SNS 여기저기에서 많이 지적했듯, 리치는 <알라딘>을 원작을 따라잡는 온전한 뮤지컬 영화로 만들기엔 ‘흥’이 부족하다.

그러나 멀쩡하게 좋은 영화를 다시 만들 수밖에 없는 핸디캡을 고려해보면 <알라딘>의 결과는 나쁘지 않다. 파랑 CG 스틸이 끔찍하긴 했지만 윌 스미스는 기본이 있는 스타이고 이 영화에서도 그렇다. 무엇보다 <미녀와 야수>보다는 빈자리를 더 잘 채운 느낌이다. 이 영화에서는 자스민 공주의 비중이 커졌는데, 영화는 단순히 활달하고 매력적인 여자주인공 역할을 넘어서 정치적 야심이 있는 보다 묵직한 존재로 이 캐릭터를 그려내고 있다. 알라딘과 자스민의 로맨스도 초반부터 짜놓아서 스토리와 관계 묘사가 더 유기적이다.



이게 시대배경과 맞지 않는다느니 하는 반박은 듣지 않기로 한다. 원작 자체가 <아라비안 나이트> 이야기인 척하는 시리아 이야기꾼의 창작물을 불어로 번역한 중국 배경의 이야기가 아닌가? 여기 어디에 원본이 있는가? 과연 ‘머나먼 중국에서...’로 시작되는 원작의 디즈니 이야기보다 더 믿음이 가는가? 그냥 스칸디나비아의 왕자가 서남아시아 사막 나라 공주에게 청혼 올 수도 있는 그런 세계의 이야기라고 믿고 넘어가면 안 되나?

문제가 있다면 내용이 아니라 스타일이다. 원작 애니메이션 <알라딘>은 막 부흥기에 접어든 1990년대 2D 애니메이션의 세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유로웠다. 하지만 지금 리메이크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그 자연스러움이나 자유로움을 획득하지 못한 것 같다. 자신의 현대성을 입증하려고 애를 쓰느라 무리하느라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연스러움에 도달하지 못한다. 아무리 주제 면에서 진취적이더라도 스타일면에서는 원류로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스타일 도약은 안정감을 찾은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알라딘><미녀와 야수>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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