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갑자기 시트콤 같은 이 분위기는 뭐지

[엔터미디어=정덕현] 다른 배우도 아니고 감우성과 김하늘이다. 두 배우가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JTBC 월화드라마 <바람이 분다>는 기대작이었다. ‘멜로 장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두 배우가 아닌가. 하지만 어째 애초 기대했던 만큼 <바람이 분다>가 그만한 작품이 될 지는 미지수다. 이제 겨우 2회가 방영됐을 뿐이지만,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엉뚱한 결과물로 흘러가고 있어서다.

첫 회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건, 아이를 원하는 이수진(김하늘)과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아이를 갖지 않겠다며 심지어 ‘묶어버렸다’고 말하는 권도훈(감우성)의 갈등이 어딘지 과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2회 앞부분에 권도훈이 이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이유가 알츠하이머라는 게 밝혀지지만, 그런 사정없이 보여진 첫 회는 권도훈과 이수진 모두 어딘지 과한 캐릭터로 보이게 만들었다.

아이를 갖고 육아를 한다는 사실이 이제 한창 회사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맞벌이 부부에게 부여하는 무게가 큰 건 사실이다. 권도훈은 아이를 갖게 되면 아내 이수진의 경력이 끊어질 것을 걱정한다. 또 지금껏 누려오던 여유로운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될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권도훈과 이수진이 사는 모습을 보면 그 정도로 여유가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권도훈의 “묶어버렸다”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반대로 이수진이 굳이 아이를 갖겠다고 그토록 나서는 모습도 그리 공감대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아이가 생기면 가질 수도 있지만, 굳이 아이를 갖지 못하면 이혼까지 불사한다는 태도는 어딘지 지금의 여성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어쩔 수 없는 의무로서 엄마가 되기보다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여성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 아닌가.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망은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이혼을 요구하고 바람을 피겠다고 말하는 건 어딘지 과하다.

하지만 첫 회의 이런 과함은 2회에서 권도훈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어느 정도는 이해될 수 있는 면이 있었다. 그런 오해와 진실 사이에서의 줄다리기가 드라마의 극성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2회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는 건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과한 상황과 설정을 이어가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 만든다.

즉 권도훈과 이혼하기 위해 ‘귀책사유’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에 따라 이수진이 영화제작사를 하는 브라이언 정(김성철)과 손예림(김가은)의 도움으로 특수분장을 하고 권도훈을 꼬신다는 설정이 그렇다. 이수진 스스로도 말하듯 그게 과연 통할 수 있는 일일까. 설령 통한다고 해도 그건 권도훈이라는 인물도 또 이수진이라는 인물 또한 조금 이상한 캐릭터로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시쳇말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는)’라고 표현하지만 이 드라마는 어딘가 ‘갑자기 분위기 시트콤’ 같은 느낌을 준다.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 때문에 아내를 사랑하지만 사랑한다 말 못한다며 절규하는 권도훈의 모습은 절절한 비극적 정조를 보여주지만, 그러다 갑자기 아내 이수진이 분장을 하고 권도훈을 꼬시려 접근하는 모습은 현실감 떨어지는 시트콤처럼 보인다.

비극과 희극은 동전의 양면이라지만 그것을 하나로 묶어놓을 때는 보다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바람이 분다>는 그 정교함과 섬세함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갑자기 분위기나 정조가 바뀌거나 과해질 때 그것은 희비극의 결합이 아닌 개연성 부족으로 느껴지게 된다. 이런 대본으로는 감우성이나 김하늘이라고 해도 요령부득이 될 수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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