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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추앙받던 자동차 사브는 어쩌다 멸망했나
기사입력 :[ 2019-05-31 10:04 ]
사라져 버린 그 이름, 사브 멸망기 (1)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지금 보면 20세기말은 자동차 업계의 지각변동이 가장 극심하던 시기였다. 끝없이 밀어닥치는 신차 개발, 생산가격 압박에 시달리던 자동차 회사들이 마침내 도달한 ‘공통적 깨달음’이 일으킨 대격변이랄까.



◆ ‘그냥 덩치를 키워 브랜드 여러 개를 굴리면 되는 거 아닌가?’

다수의 브랜드가 한 개의 플랫폼과 엔진을 만들어 공유하고, 모듈화된 단일부품을 백만 단위로 구매하며 단가를 쳐낸다는 발상이 이때 나왔다. 몇 년이 지나자, 규모의 경제를 완성시키는 것은 생존과 직결된 일이 되어버린다. 덩치 불리기에 나서지 않았다가 혼자 말라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업계를 휩쓸었다. 경제위기 탓에 몇몇 회사가 휘청거리자, 공포는 혼자 살을 붙이며 달려 나갔고, 제휴와 합병이 어지러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고급차 회사가 대중차 브랜드를 삼켰고, 그 반대의 경우 또한 비일비재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크라이슬러가 합병되었으며, 포드가 볼보와 재규어를 사들이고, BMW가 로버의 차를 만들었다. 지금 보면 전부 망한 짓거리일 뿐이지만 당시에는 하나같이 미래를 향한 결단으로 받아들여졌다. 10년 뒤면 고작 서너 개의 자동차 연합체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논리가 지배하던 시대, 업계 최대의 공룡 GM이 빠질 수는 없는 노릇. 이들이 손에 넣은 것은 사브와 스바루였다.



1948년대 태동해 스웨덴을 대표하는 자동차로 버텨왔지만, 1980년대에 이른 사브는 성장동력이 꽤나 떨어져 버린 상태였다. 피아트에서 받아온 플랫폼으로 근근이 연명 중이던 1989년 GM은 6억 달러를 들여 스카니아 그룹으로부터 사브 오토모티브의 지분 절반을 사들인 뒤, 오펠의 엔진과 플랫폼을 가져다 라인업을 싹 현대화한다. 2000년에는 발렌베리 가문이 들고 있던 나머지 절반까지 사들여 아예 GM의 방계 브랜드화 작업을 마친다. 늘 한수 밑이던 포드가 볼보를 주무르던 시절, 볼보의 시장 경쟁자를 한식구로 들이는 것은 나름 합당한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스바루는? 스바루는 사브의 경우와는 조금 달랐다. 스바루, 그러니까 후지중공업은 원래 닛산과 오랜 유대관계를 이어오던 회사였지만, GM과 덜커덕 이어진 것은 본인들의 뜻이 아니었다.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몰린 닛산이 가지고 있던 스바루 지분 20%를 던졌고, GM이 그것을 냉큼 가져가 후지중공업과 자본관계를 만든 것이다. 사브와 스바루, 생뚱맞게 다른 이 두 회사를 이을 나름의 복안이 GM에게는 있었다.



◆ 뭐 하러 차를 새로 만드나?

자신의 유럽차 브랜드를 따로 모아 PAG(프리미어 오토모티브 그룹)을 구성하고 생산품의 이미지를 보호하려 한 포드와 달리, GM은 ‘효율성과 라인업 확대’라는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9-3과 9-5 달랑 두 라인을 가진 사브의 급선무는 라인업 확대였지만, 브랜드 정체성이랍시고 또 새 차를 스웨덴에서 만드는 건 GM에겐 돈 낭비로 보였다. 1990년대 말 경제위기 시절, 환율이 널뛴 탓에 몇몇 시장에서 꽤 손해를 본 GM은 생산기지를 고수하느니 그냥 위험성을 분산시키는 게 낫다고 보았다. 스웨덴 차지만, 최대판매시장은 미국이었던 사브의 차는 미국에서 잘파는 계열사에 맡기면 될 일이라 여긴 것이다. 브랜드 정체성 같은 건 개나 줘버리는 이 안이한 결정을 GM은 그대로 밀어붙인다. 그들의 ‘북미 시장 전용’ 사브 확장 계획은 이러했다.

* 9-2X : 9-3 아래에 위치할 준중형 크로스오버. 북미형 스바루 임프레자 기반으로 스바루가 생산. 북미만 판매
* 9-6X : 9-5 위에 위치할 중형 SUV. 스바루가 새로 개발하고 생산. 북미만 판매
* 9-6C : 사브 최초의 V8쿠페. 호주 개발 생산. 홀덴의 모나로 쿠페에 범퍼만 바꾼 차. 이미 폰티악 GTO로 미국 판매중이였던 만큼, 유럽 전용.
* 캐딜락 BLS : 이건 사브에서 팔 차는 아니었지만 사브의 가동률을 높이는 데에는 영양가 높은 결정이었다. 9-3 기반의 소형 캐딜락은 스웨덴에서 개발하고 생산한 뒤 ‘유럽’에서만 팔았다.





이런 계획은 스바루에게는 달콤한 제안이었다. 의외였던 것은, 있는 거 살짝 만져서 팔 수 있는 9-2X보다 내 돈 들여 만들어야 하는 9-6쪽을 더 좋아했다는 것이다. GM의 제안은 채산성 문제로 손을 대지 못하던 스바루의 숙원, 중형 SUV 시장에 마침내 진입할 수 있음을 뜻했다. 수십 년째 북미 스바루 딜러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음에도 아웃백 같은 ‘변종 땜빵’밖에 주지 못하던 상황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게 된 것이다. GM의 현지생산 판매정책을 지원할 인디애나주의 공장도 막 가동을 시작한 참이었다. 스바루는 사브와 공동으로 쓸 신형 SUV 개발에 나서는 한편, 사브 9-2의 개조작업에 착수한다.



◆ 9-2X, Saabaru(사바루)의 탄생

•사브의 디자인팀에게는 자괴감이 느껴질 일이었다. 이미 양산중인 타사의 완성차를 붙잡고 앉아 최대한 사브처럼 보이게 만들어야 했으니까. 2세대 스바루 임프레사 왜건에 전면 및 후면 스타일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변경하는 작업이 진행된다. 인테리어 변경도 잠시 검토되었지만, 돈이 많이 들자 그냥 있는 그대로 내보내기로 한다.

고정식 헤드 레스트 대신 사브의 능동형 헤드 레스트가 달린 시트가 변화의 전부였다. 추가 방음작업과 함께, 보강재를 잔뜩 집어넣고 하체도 손본다. 알루미늄 서스펜션암에 더 단단한 부싱을 넣고 스티어링 비를 15:1로 빠르게 만든 차는 사실 스바루의 스포츠버전인 STI의 것을 그대로 끌어넣은 것이었다. 변속기는 5단 수동과 4단 자동 그대로, 엔진 또한 스바루의 수평대향 2.5 리터 자연흡기 모델과 2.0 리터 터보가 그대로 들어갔다. GM은 이 차를 미국의 공장에서 생산하기를 원했지만, 임프레사는 북미판매분 또한 일본 군마의 공장에서만 만들던 차였다. 2004년, 첫 번째이자 실제로는 마지막이 될 생산분이 일본에서 만들어져 선적을 시작한다.



◆ 배지 엔지니어링의 결과

GM이 간과한 것은 사브가 그들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정체성이 강한 브랜드였다는 점이다. 독특하지만 기능적인 디자인, 안락한 시트와 운전 위치, 도로 상황이 나빠도 화살처럼 똑바로 달리는 직진 안정성과, 언제든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힘을 조합한 차는 스웨덴의 남다른 엔지니어링 노하우가 담긴 차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GM 산하로 편입된 회사가 만든 9-3과 9-5는 그 남다른 선명함이 희석된 차들이었다.

이 상황에 다른 회사의 차들이 엠블럼만 바꿔 단 수준의 차, 이른바 ‘배지 엔지니어링’으로 투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전통적인 팬의 반발은 물론이고, 신규 고객마저 이 차를 외면했다. 안팎으로 보아도 임프레자로 밖에 보이지 않는 차의 가격은 시작가격이 27,000달러로, 임프레자 왜건보다 4,000달러 이상 비쌌다. 웃돈을 더 주고 살 이유를 찾기가 힘들었다.



어딜 봐도 임프레자의 그릴과 테일램프를 바꾼 수준의 차 판매량이 좋을 리가 없었다. 초기 밀어내기가 끝나고 나자 판매량은 수직낙하를 시작한다. 월 판매량이 50대까지 떨어지는 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결과가 이리 나오자 GM은 잽싸게 정리를 시작한다.

2005년 10월 GM은 스바루의 주식 8.4%를 토요타에 매각하고 남아있는 11.4%의 지분을 후지중공업에 바이백 거래로 처분하기로 결정한다. 후지와 GM 간의 제휴가 끝나자, 9-2X은 곧장 단종된다. 총 만대가량의 사브 9-2X가 생산되었지만, 재고를 모두 털어낼 때까지의 기간을 제외하면 실제 판매기간은 1년이 조금 넘는 정도였다. 스바루는 ‘남편’ 없이 SUV 트리베카를 혼자 처리하느라 내내 고생해야 했다. 잠깐 한눈을 팔았던 GM은 사브를 도로 본처에게 던진다. GM의 트럭 플랫폼 GMT360을 이용한 중대형 SUV, 사브 9-7X가 급하게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2부에 계속됩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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