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꽃’, 조정석과 윤시윤이 그리는 동학혁명의 진면목

[엔터미디어=정덕현] “니 안의 도채비 내가 죽여줄텐게, 니 안의 백이현으로 다시 살더라고.”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에서 백이강(조정석)은 백이현을 때려눕히고 그가 총을 쏘던 오른손을 돌로 내려치려 하며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망설인다. 그 돌을 들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이 전봉준(최무성)의 칼에 찍혀 못쓰게 된 그 상황을 마음속으로는 사랑하는 동생이 겪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백이현은 마치 도와달라는 것처럼 “그냥 망설이지 말고 그냥 찍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연모하고 혼인을 약속했던 황명심(박규영)의 오라비 황석주(최원영)가 신분이 낮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전장으로 내보냈다는 사실을 알고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와 욕망에 휘둘린다. 그는 일본에서 배웠던 총을 들고 동학군들을 저격하는 ‘도채비(도깨비)’가 된다. 그들을 향해 총을 쏘고는 있지만 그는 그것이 엇나간 욕망 때문이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전봉준(최무성)이 폐정개혁안을 전제로 전라도관찰사 김학진(남문철)과 화약을 맺으려하자 그에게 한양행을 약속하며 전봉준을 저격하라는 명을 받은 도채비 백이현이지만, 그는 결정적인 순간 자신이 토사구팽 당할 꼭두각시라는 걸 알게 된다. 어떻게든 성공해 황석주가 보란 듯이 황명심을 찾아가겠다는 욕망에 뛰어든 도채비의 삶이지만, 그는 깨닫는다.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걸.

오른손을 내려치려는 형 백이강에게 “그냥 망설이지 말고 그냥 찍어”라고 백이현이 말하는 건, 그래서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이 욕망을 누군가 끊어내 주길 내심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다. 하지만 백이강은 결국 백이현의 손을 내려치지 못한다. 대신 그에게 엄포 섞인 충고를 한다. “도채비 말여 니가 싸워서 이겨봐. 다시 도채비로 만나불면 그 때는 죽여분다 잉.”



이 짧은 시퀀스는 왜 <녹두꽃>이 전봉준을 주인공으로 하지 않고 대신 백이강과 백이현이라는 형제를 주인공으로 세웠는지가 정확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한 때 ‘거시기’로 불리던 백이강은 전봉준이 그 민초들을 핍박하던 손을 칼로 찍으면서 백이강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서자로서 포기하듯 살아왔던 그는 동학군의 별동대장이 되어 민초들을 위해 그 손을 쓰게 된다.

그렇게 거시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름을 찾은 백이강은 이제 그 손으로 동생 백이현의 도채비 손을 내리치려 한다. 그것을 통해 그가 도채비가 아닌 백이현으로 되돌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백이강이 핍박받는 일을 내면화하며 버텨냈던 삶을 벗어나 자신들을 불행한 삶으로 이끄는 세상과 대결하는 혁명을 꿈꾸게 한 것처럼, 노력해도 올라설 수 없는 신분의 벽 앞에서 분노하던 백이현이 그걸 벗어나 개혁의 꿈을 꾸게 되는 그 과정을 <녹두꽃>은 담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새로운 시대의 혁명과 개혁에 대한 열망을 동학이 추구하고 있었고, 그것은 과거의 삶을 살아오던 이들이 그 삶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 것들이었다. 그래서 동학농민혁명은 전봉준처럼 전면에 등장하는 영웅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소한 민초들이 스스로의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는 이야기가 된다. ‘거시기’를 버리고, ‘도채비’를 버린 그들이 비록 당장은 무너질지라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그런 이야기.

그래서 <녹두꽃>은 이제 겨우 꽃망울이 피기 시작한 시대의 혁명과 개혁을 요구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진면목을 제대로 그려낸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일개 영웅담이 아닌 민초들의 의식이 깨어나는 과정을 배다른 형제의 애틋한 정과 서로 부딪치고 성장하는 모습으로 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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