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달 연대기’ 제작진은 정말 열심히 만들지 않은 걸까
대작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서사를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최고의 연출가와 작가진이 투입되어 만든 웅대한 450억 원짜리 상고사 판타지 작품’이란 기대와, ‘한 주 151시간 30분 촬영, 안전사고 속출, 그래 가며 만든 게 겨우 <왕좌의 게임> 카피작’이라는 비판을 모두 샀던 2019년 최고의 문제작 <아스달 연대기>가 첫 방영을 시작했다. 회당 25억~30억이 투입되는 12회짜리 시즌이 총 3시즌 만들어질 예정인 탓에, 기대하는 쪽도 비판하는 쪽도 모두 작품이 그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는지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결과는 어땠을까? 호평과 혹평이 엇갈리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는 사람들의 기대치를 실망시키며 출발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월요일 아침 KOSDAQ 개장 직후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의 주가가 전일 대비 10%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했다는 것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들은 아스달 땅에 처음 방문한 소감이 어땠을까? 정석희 평론가는 모처럼 “빤한 구성과 설정이 아니라는” 점에 의미를 두면서도 “아스달로 끌려가는 이아르크 인들을 보고 있자니 눈이 튀어나올만한 수치의 엄청난 제작비와 스태프 혹사 논란이 동시에 떠올랐다”고 꼬집으며 또 뻔한 러브스토리로 빠지지는 않을지를 근심했다. 이승한 평론가는 작품이 서사를 잘 구성하고자 하는 의지와 역량이 있어야 할 자리를 상업적인 성공을 노리는 자본의 조바심으로만 대체했다며 혹평했고, 김선영 평론가는 김영현 작가가 꾸준히 선보여 온 꿈의 서사가 대작을 향한 야심에 짓눌려 초라해졌음을 안타까워했다.



◆ ‘러브스토리 인 상고사’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면서 생물의 종류는 반 토막이 난 반면 사람과 사람의 생존을 위한 가축과 농작물의 양은 비정상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인간이 저 살겠다고 포유동물과 식물의 절반을 파괴한 셈인데 tvN <아스달 연대기>는 바로 인간이 생존과 번영을 위해 무차별 파괴행위를 시작하는 지점의 얘기다. 뇌안탈과 아스달의 혼혈로 우여곡절 끝에 이아르크에서 살게 된 은섬(송중기)은 지금껏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도토리를 땅에 묻나 하면 말을 길들일 생각을 하여 씨족 어머니 초설(김호정)을 긴장 시킨다. 이아르크 씨족 어머니에게 대대로 전해왔다는 세 가지 경고 중 ‘씨앗의 지혜를 배우되 기르지 마라’와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되 길들이지 마라’에 정면으로 맞서는 행위였으니까.



심지어 은섬은 ‘대흑벽을 넘지 마라‘는 첫 번째 주문에도 해당되는 인물이 아닌가. 대흑벽 너머 아스달에서는 이미 그 모든 것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아르크 씨족 어머니들은 결국 인간이 세상을 망치리란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침략을 당해 아스달로 끌려가는 이아르크 인들을 보고 있자니 눈이 튀어나올만한 수치의 엄청난 제작비와 스태프 혹사 논란이 동시에 떠올랐다. 힘을 가진 자들의 만행. 잘못 꿴 단추를 바로 잡자면 머나 먼 상고사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모양이다.



또 하나, 능력치와 피 색깔, 가치관이 서로 다른 세 종이 자신들의 이익과 야망을 위해 엎치락뒤치락 싸움을 벌이고 그 안에서 사랑이 꽃 필 예정이라지만 어째 ‘러브스토리 인 상고사’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 드라마 판에 차고 넘치는 빤한 구성과 설정이 아니라는 점은 반가우나 모처럼의 도전이 지나친 사랑 타령으로 퇴색되지 않기를.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daum.net



◆ 열심히 안 한 게 아니라 ‘열심히’의 방향이 틀렸다

마늘과 쑥을 재배하고 곰을 숭상하는 토착부족의 여자가 외래부족의 남자와 혼인해 낳은 자식이 훗날 건국의 주체가 된다는 <아스달 연대기>가 노리는 게 무엇인지는 선명하다. 한국의 상고사가 빈 칸으로 남아있다는 점을 십분 활용해, 그를 배경으로 장대한 판타지 서사를 써보겠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쉽게 증명할 수 없는 지점에 창대한 민족의 기원을 상상해 그려넣는 모든 행위는, 결국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국수주의적 쾌감이라는 한계를 만난다.

김영현·박상연 작가가 이를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해서 <아스달 연대기>의 초반부는 팽창주의 정책을 고수하며 주변 부족들을 학살하고 인종주의적인 욕설들을 내뱉는 아스달 사람들의 잔인함과, 그에 희생되는 뇌안탈과 와한족의 모습을 다루는데 집중한다. 작품이 그 자체로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만회하기 위해, 그것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로 포문을 연 것이다.

문제는 이 모든 설정들이 자연스레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들의 전작인 SBS <뿌리 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등은 사전배경으로 소비할 만한 역사적 기록이 탄탄하기에 그 안에 종종 ‘밀본’ 같은 가상의 음모론적 조직을 슬며시 밀어넣는다 해도 그 맥락을 이해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없는 배경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는 <아스달 연대기>로 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해족의 압도적인 과학기술이나 뇌안탈들의 대외정책, 꿈을 꿀 수 있는 뇌안탈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따위는 모두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내레이션, 자막의 힘을 빌어 설명된다.



설상가상 각본의 빈칸을 채워줘야 할 화면과 연출은, 자꾸 HBO <왕좌의 게임>을 비롯한 해외 판타지 콘텐츠에서 많이 본 듯한 비주얼을 전시하는 것에만 몰두한다. 스토리 전개 안에서 자연스레 설정을 보여주며 서사를 이끌어 갈 역량과 의지가 <아스달 연대기>에는 부재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게임, 관광, VR, 굿즈 상품 등 IP 사업 확대”를 목표로 삼는 자본의 조바심이다.

첫 방송 이후 김원석 감독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전작인 tvN <미생>의 대사를 빌려 “난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한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아프니까.”라는 글을 올렸다. 450억 원짜리 드라마를 만들며, 촬영 스케줄을 많게는 일주일에 151시간씩 운용하며 스태프들을 혹사시켰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연출자가, 안 좋은 평들이 쏟아지자 가진 것 하나 없는 장그래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는 것도 희한한 지점이지만, 정말 열심히 안 한 게 문제인 걸까? ‘열심히’의 방향이 잘못된 게 문제가 아니고?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 망상이 된 꿈의 서사

김영현 작가의 사극은 늘 꿈에 관한 이야기였다.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최초의 여성 어의라는 꿈을 향해 가는 여인의 성장기 MBC <대장금>에서부터, 역시 불길한 운명을 거슬러 이상적인 군주로 성장한 한민족 최초의 여왕 이야기 MBC <선덕여왕>을 거쳐, 망국의 시간을 끝장내고 새로운 나라를 꿈꾼 여섯 인물의 건국기 SBS <육룡이 나르샤>까지, 모두 꿈을 품은 자들의 서사다.

tvN <아스달 연대기>는 이 ‘꿈의 테마’에 대한 시원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말하자면, ‘꿈’이 아직 특별한 존재들만 만날 수 있는 ‘영능’으로 여겨졌던 시대, 최초로 꿈을 꾸기 시작하는 인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난해한 이야기라는 지적에 대해 “2회까지만 보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답했던 제작진의 말은, 실제로 2회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조차 모르는 은섬(송중기)이 탄야(김지원)로부터 “네 이름은 꿈”이라고 새롭게 명명되는 순간에 명확한 의도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러한 꿈의 테마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시원 설화를 재해석해 대한민국 최초의 고대 인류사 판타지 대작을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장대한 야심 앞에서 급격히 초라해진다. 사실은 꽤 심플하고 보편적인 주제를 원대한 대서사 판타지로 부풀리는 동안, 시청자들이 목격한 것은 칸모르의 전설처럼 한참 전에 저만치 앞서 나간 대작들의 아류적 풍경이었다. 방영하기도 전부터 휘말린 ‘<왕좌의 게임> 표절’ 논란을 비롯해, <브레이브 하트>, <아포칼립토>, <아바타> 등 유사한 느낌을 주는 대작들이 줄줄이 소환되는 것은 그러한 과욕이 빚은 결과다. 무엇보다 그 ‘장대한 야심’ 위로 초유의 노동 착취에 시달린 스태프들의 어두운 꿈의 그림자가 겹쳐진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그리는 ‘꿈의 서사’에 더 몰입하기 어렵게 만든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영상·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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