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블유’, 임수정의 대사 하나하나가 사이다가 된 까닭

[엔터미디어=정덕현] “지금 이 순간 저는 권력과 손잡고 여론을 조작하고 은폐하는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이 썩어빠진 회사에서 제 스스로 퇴사합니다.” tvN 수목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에서 배타미(임수정)는 징계위원회에서 일방적으로 해고통보를 받자 준비해갔던 사직서를 던지며 그렇게 말한다. “자리에 돌아가 앉지?”라고 나인경 대표(유서진)가 명령하자 “명령하지 마세요. 이제 그쪽 직원 아니니까.”라고 받아치고, 한때 자신이 따랐던 사수지만 지금은 배타미를 도와주지 않는 무력해진 송가경(전혜진) 대표이사에게 톡 쏘아붙인다. “그리고 그쪽은 사표나 수리하세요. 송가경 이사.”

<검블유>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아마도 많은 직장인들에게 시원한 사이다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현실에서 이런 장면을 만나기는 어려울 테지만, 이런 상황을 겪는 일들은 적지 않다. 포털업체 유니콘 배타미 본부장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나오게 된 ‘○○○ 불륜’이라는 검색어가 나인경 대표이사에 의해 지워지게 되자 그 문제점을 따졌던 인물이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고 이 문제로 청문회가 열리게 되자 회사는 그를 총알받이로 내세운다.



하지만 이 만만찮은 인물은 그 자리에서 주승태(최진호) 국회의원의 미성년자 성매매 사실이 담긴 게시판의 글을 공개하는 핵폭탄(?)을 날린다. 결국 유니콘은 청문회 이슈에서 지워지고 대신 국회의원 성매매가 이슈로 떠오르게 됐지만 정치권에 압력을 받는 유니콘은 결국 배타미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좀 과장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런 일들은 실제로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회사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소신도 명분도 버리는 현실들. 그 속에서 희생되는 무고한 직원들.

배타미가 성매매 사실 폭로 때문에 검찰에 참고인으로 갔을 때 복도에서 만나게 된 주승태 의원과의 설전도 통쾌한 사이다를 안긴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물지도 않고 대들지도 않고 지 욕망에만 눈 멀어서 제 살 길만 강구하는 개 같은 새끼들...”이라는 주승태 의원의 막말에 배타미는 “왜 그럼 안돼? 내가 개새끼면 안돼? 내가 욕망에 눈이 멀면 왜 안되는데?”라고 대꾸한다. 주승태 의원이 “뭐가 널 이렇게 만들었을까”하고 비아냥대자 배타미는 “뭐 부모님 원수를 갚거나 전 남편한테 복수하거나 그런 이유를 기대하는 거야? 내 욕망엔 계기가 없어. 내 욕망은 내가 만드는 거야. 상상도 못했겠지만. 근데 니 욕망은 불법이야.”

배타미의 이 말은 심지어 불법이면서도 뻔한 계기로 휘둘리는 저들의 욕망에 한 방 날리는 통쾌함을 안긴다. 배타미는 욕망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욕망이 저들의 속물적이고 심지어는 불법적인 욕망들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은 누군가에 의해 부추겨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얼마나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솔직한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는 회사를 떠나 경쟁사인 바로로 옮기게 됐다는 걸 알리며 자신과 함께 해왔던 팀원들에게 일종의 선전포고를 한다. 하지만 그 선전포고는 정정당당한 한 판 대결을 하자는 의미를 담는다. “내가 간 이상 난 반드시 유니콘을 업계 2위로 주저앉힐 생각이다. 그러니까 니들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해. 나한테 배운 거 하나도 빠짐없이 다 써먹고. 내 약점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해.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니들이니까. 맥없이 밀리지 마. 내 이상을 해내. 알았어?” 경쟁업체로 가지만 팀원들을 아끼는 마음이 담긴 조언이다.

하지만 경쟁업체 바로의 TF팀 팀장으로 가는 일은 시작부터 쉽지 않다. 경쟁업체로 있을 때 각을 세웠던 바로의 차현(이다희)은 배타미를 팀장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그 이유로 배타미가 청문회에서 했던 행동들이 “양아치” 같은 행동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배타미는 그런 질타에도 차현에게 “같이 일하자”며 손을 내민다. 바로 그렇게 직설적으로 자신을 견제하고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자신이 어떤 질타를 받아도 오로지 유니콘을 주저앉히고 바로를 업계 1위로 올리겠다는 그 의지가 차현의 마음을 움직인다.

<검블유>가 그리고 있는 배타미라는 인물은 정글 같은 업계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캐릭터다. 그런데 특이한 건 주승태 의원이 얘기했듯, 선악이나 세상의 기준 같은 어떤 틀에 박힌 구도 안에서 휘둘리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세우고 거기에 충실하게 나아간다. 심지어 퇴사 후 경쟁업체로 가는 그의 다소 거친 행동에도 그것이 오히려 당당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게다가 배타미는 일뿐만이 아닌 사랑에 있어서도 자기 욕망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처음 만난 남자 박모건(장기용)과 술과 분위기에 취해 잠자리를 하게 되고 그것이 자신을 설레게도 만들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는 않는다. 또한 누가 봐도 당당한 걸크러시의 모습을 보이지만, 박모건이 자신을 그가 관리하는 어장(?) 속에 들어가겠다고 말하자 그는 솔직하게 이렇게 말하며 그의 가슴에 안긴다. “백수일 때 보니까 좀 의지하고 싶다.”

때론 싸움닭 같고 때론 지나치게 솔직하지만 심지어 멋있게 느껴질 정도로 당당하다. 걸크러시를 보여주는 캐릭터지만 괜찮은 남자 앞에서 설레는 그 욕망에 또한 충실하고, 그래서 그 모습은 토한 러블리하게 다가온다. 임수정이라는 배우가 연기해내고 있는 이 당당함과 러블리함을 함께 아우른 배타미라는 캐릭터의 매력. 이 드라마가 어딘지 기대 이상으로 잘 될 것 같은 예감을 주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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