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블유’, 변명하지 않는 여성의 욕망을 그리다

[엔터미디어=TV삼분지계] ◾편집자 주◾ 하나의 이슈, 세 개의 시선. 각자의 영역을 가지고 대중문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정석희·김선영·이승한 세 명의 TV평론가가 뭉쳐 매주 한 가지 주제나 프로그램을 놓고 각자의 시선을 선보인다. 엔터미디어의 [TV삼분지계]를 통해 전문가 세 명의 서로 다른 견해가 엇갈리고 교차하고 때론 맞부딪히는 광경 속에서 오늘날의 TV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는 단초를 찾으실 수 있기를.

특별히 착하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더 정의로운 주인공이, 조직이 저지른 범죄를 혼자 뒤집어쓰고는 버려진다. 청운의 꿈을 다 바친 조직에게 버림받고,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파트너에게 배신당한 주인공은 경쟁 조직으로 넘어가 처절한 복수를 꿈꾼다. 그러나 넘어간 조직의 라이벌은 주인공을 곱게만 보지 않고, 복수를 위해 멋없고 더러운 수단까지 손 댈 수 있노라 말하는 주인공의 앞날 또한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 신작 느와르 영화 시놉시스냐고? 아니다. tvN 새 수목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 이야기다.

포스터에서는 ‘아주 많이 다른 세 여자의 리얼 로맨스’를 표방했고, 기획의도에서는 ‘성공에 대한 욕망으로 똘똘 뭉쳐 서로를 이기기 위해서 몸을 불사르는 세 여자’의 드라마를 표방했지만, <검블유>의 진짜 장르는 아마 오피스 느와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의 경쟁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오피스 느와르물인 <검블유>는, 히어로부터 빌런, 최종빌런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요인물들이 여성으로 캐스팅된 본격 여성 호모소셜 서사이기도 하다.

정석희 평론가는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지켜내는 주인공” 배타미(임수정)를 칭찬하며 세 주연 여성이 회사를 창업해 1위를 먹어버리는 판타지를 상상했고, 김선영 평론가는 <검블유>가 여성들이 “욕망과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그리기 위해 굳이 “성별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려 넣지 않았다는 점에서 통쾌함을 느꼈다. 이승한 평론가는 영화 <신세계>나 <불한당>이 그랬던 것처럼 <검블유> 또한 호모소셜 서사가 호모섹슈얼 로맨스의 경지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며 흥미로워했다. 다음은 [TV삼분지계]의 세 평론가의 감상평을 검색한 결과다.



◆ 떨치고 일어나 스스로를 지켜내는 여성 주인공

일부 학자들은 인간이 AI나 생명공학을 통해 자신을 너무 많이 변화시킨 결과 얼마 안 있어 데이터가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고 데이터를 다루는 소수 권력자에게 부가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무심히 입력하는 검색어가 누군가의 부와 권력 축척에 가속도를 붙이는 셈이라는 얘기. 마치 침략자들에게서 총 한 자루, 실탄 몇 알 받고 드넓은 땅덩어리를 내준 과거 아프리카 원주민들처럼 우리는 편리함을 얻는 대신 하루에도 수십, 수백 차례 검색어를 입력한다.



tvN <검블유>의 주인공 배타미(임수정)는 포털 사이트 유니콘의 서비스 전략 본부장인 만큼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입력하는 검색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정보인지 잘 안다. 그래서 모두가 예측하지 못한 대선 결과를 검색어의 흐름을 통해 꿰뚫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도 데이터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에 불과하다더니 권력에 의해 배타미는 희생되고 만다. 그간 검색어 조작에 반대해온 배타미가 유니콘의 검색 조작을 묻는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가게 된 것. 누구도 생각치 못한 대담한 답변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지만 유니콘의 발전과 도약을 위해 청춘을 바친 배타미로서는 자괴감이 들 밖에. 하지만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지켜내는 주인공.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배타미를 청문회장으로 떠밀면서 하기 싫은 걸 안 할 수 있는 걸 권력이라 한다며 이죽거리던 유니콘 이사 송가경(전혜진). 알고 보니 그 또한 권력의 알고리즘에 불과했다. 배타미의 사수이자 롤모델이었으나 결혼으로 입지와 역할이 바뀌어 버린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배타미처럼 떨치고 일어나 스스로를 지켜낼까? 아니면 자멸해버릴까? 마음 같아서는 배타미, 송가경 그리고 유니콘 경쟁업체인 바로의 소셜 본부장 차현(이다희), 이 셋이 힘을 합해 새 회사를 만들어 업계 1위로 올라서면 좋겠다. 뭐 드라마를 보며 하는 상상은 자유니까.

정석희 방송 칼럼니스트 soyow59@daum.net



◆ 그곳엔 유리천장이 없다

<검블유>는 유리천장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처럼 보인다. 드라마 속 최고 권력자인 KU그룹 장희은(예수정) 회장을 비롯해서, 대한민국의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공룡 포털 유니콘의 대표이사 송가경(전혜진), 실세 본부장 배타미(임수정), 유니콘의 라이벌업체 바로의 소셜 본부장 차현(이다희) 등 권력과 실력을 갖춘 주요 인물은 모두 여성이다. 그들의 욕망과 성취는 성별의 한계로 인해 제지받지 않는다. 세 주인공 가운데 유일한 기혼인 송가경과 그의 시어머니 장희은의 대립조차 고부 갈등이라기보다 가치관의 차이에 바탕을 둔 대결로 그려진다.



영화 <아가씨>가 레즈비언으로서의 정체성 고민을 전혀 거치지 않고 사랑에 빠지는 두 주인공을 통해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그려냈듯이, <검블유> 역시 성별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 없이 여성들이 욕망과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과 여성들끼리의 정치 싸움을 스스럼없이 그림으로써 통쾌한 느낌을 준다. 이는 남성 일색인 대통령 후보들이 정책 토론회에서 벌였던 원색적인 폭로전과 같은 질 낮은 정치 싸움과도 대조를 이룬다.

그러한 기존 정치를 대표하는 주승태(최진호) 의원 앞에서 배타미가 “내 욕망엔 계기가 없어. 내 욕망은 내가 만드는 거야. 상상도 못했겠지만”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여성 서사로서 이 작품의 특징을 말해주는 결정적 신이다. 그곳이 설령 “개쎄보이기 위해” 여전히 립스틱이 필요한 세계일지라도, 기존의 남성 중심 서사가 ‘상상하지 못한’, 아니 애써 상상하지 않은 세계를 그려내는 것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김선영 칼럼니스트 herland@naver.com



◆ 호모섹슈얼의 경지에 도달한 호모소셜의 가능성

적어도 지금까지 tvN <검블유>에 등장한 주요인물 중 레즈비언인 인물은 한 명도 없다. 송가경(전혜진)은 호스트바에서 권력을 휘두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배타미(임수정)는 박모건(장기용)과의 밀고 당기는 러브라인을 부여받았다. 아직 본격적으로 전개되진 않았지만, 송가경과 차현(이다희) 또한 남자 캐릭터와의 로맨스가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검블유>의 첫 주차 방영분을 본 수많은 사람들은 작품 속에 흐르는 여성 캐릭터 간의 성적 긴장감에 주목했다. “1차(원 텍스트)가 다 해서 2차 창작이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대체 이유가 뭘까?



그건 <검블유>가 선명한 권력의지와 욕망을 지닌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충돌하는 호모소셜(동성사회성, 같은 성별을 지닌 사람들 간의 강력한 유대관계를 이르는 용어, 흔히 남성집단과 그 집단 내 사회관계를 설명할 때 쓰인다.) 서사이기 때문이다. 동성집단 내에서 ‘알파’로 인정받는 일이 중요하고, 동성친구와 맺은 우정과 의리를 끝까지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숭고한 것으로 평가받으며, 동성 간의 배신과 오해가 빚어낸 애증관계가 주인공들을 파국으로 몰고가는 동성집단 내의 서사 말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호모소셜은 호모섹슈얼리티와 그 경계가 흐릿해지는데, 이런 현상은 영화 <영웅본색>이나 <신세계>처럼 여성이 부차적인 존재로 등장하거나 거의 생략되어 있는 느와르물에서 주로 발생하며, <불한당>처럼 아예 대놓고 그 경계의 흐릿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멜로물의 경지로 간 작품들도 있다.



물론 여성 호모소셜을 그린 작품들이 전에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여성 호모소셜 서사가 왕을 중심으로 모여 앉아 서로를 음해하는 궁중 내 비빈들의 암투를 그리거나, 서로의 외모나 행실을 음침하게 지적하는 뒷담화의 스펙터클에 집중했다면, <검블유> 속 여성들은 제 욕망을 표현하고 과시하기 위해 에둘러 돌아가거나 남성을 놓고 경쟁하지 않는다.

배타미에게 중요한 건 박모건과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이 청춘을 다 바친 ‘유니콘’에 복수하는 것, 그리고 한때 존경했으나 이젠 환멸의 대상이 된 송가경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송가경에게 “왜 이렇게까지 해요, 나한테?”라고 외치는 배타미에게서, 강사장(김영철)에게 “말해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고 묻는 <달콤한 인생>의 선우(이병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에 비하면 박모건은 부수적으로 딸려오는 트로피에 가깝다.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로 화면을 채우니,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호모소셜 느와르의 재미가 여성 서사에서도 폭발한다. 거봐, 하면 된다니까.

이승한 칼럼니스트 tintin@iamtintin.net

[영상·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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